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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종편집 : 2019.4.20 토 06: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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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1. 개 같은 날의 오후(199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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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행 2019.02.07  17:33: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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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씨와 사람의 심리는 연관이 많다. 학자들의 논문을 보지 않더라도 그것은 일상생활에 큰 영향을 미친다. 미세먼지가 심한 날은 괜히 우울해지고 심란한 마음은 더 심해진다.

더위도 마찬가지다. 연일 찜통 속에 열대야까지 기승이면 짜증은 배가 되고 참을 수 있는 것도 주먹다짐으로 번진다. 농작물은 타들어 가고 변압기가 터지면 울화통도 같이 터진다.

작은 접촉사고에도 고성이 오가고 공중전화의 뒷줄에 있는 사람은 기다리지 못하고 수화기를 잡아챈다. 지하철도 고장 나기 일쑤이고 분노한 사람들은 역사의 유리창을 깬다. 이런 상황에 살인이 일어나지 않으면 이상하다.

얼음물에 발 담그고 돈이 다 무슨 소용이냐고 배달 가기를 거부하는 음식점 사장님(윤문식)의 마음도 이해할 만하다. 이런 상황인데 아내를 심하게 구타하는 찌질한 남자가 있다.

고시 공부를 한다는 날건달이 집에 오자 아내가 없다. 의처증이 발동한 그는 침대에서 터럭 하나를 집어 들고 조심스럽게 관찰 한 후 라이터로 태운다. 찌지직, 그것이 탈 때 그의 적개심도 이글거린다. 때 맞춰 들어온 아내는 곧 만신창이가 된다.

나를 골방에 가둬놓고 화장품을 팔러 다니면서 하는 짓거리는 보지 않아도 알겠다는 듯이 냅다 하복부를 가격하는 남편. 악, 소리를 지르면서 아내는 그러지 말라고 애원한다.

실컷 때린 남자는 지쳤는지 그제서야 너를 사랑한다고 난데없는 사랑 타령이다.

이제 여자가 반격한다. 이렇게는 더는 살지 못하겠다고 악다구니를 쓴다.

때리고 사과하는 것이 처음이아니고 반복되는 상황에 아내는 질렸다.

그 순간 남자의 태도가 급변한다.

어떤 놈이야, 나보다 센 놈인가. 이혼이라도 하재? 빈정거리면서 푼 혁대를 오른손에 말아 쥔다. 연속 타격이다. 급기야 아파트 마당까지 끌고 가서 내동댕이치는데 모여 있던 남자들은 남의 집 불구경이다.

아내는 비명을 지르고 저러다 맞아 죽겠다 싶었는지 여자들이 나서서 남자를 말린다. 말린다고 들을 남자가 아니다.

더 거세게 몰며 내 여자 내 마음대로 하는데 무엇이 잘못됐느냐는 식이다. 여자들이 떼로 몰려든다. 남자는 쓰러진다.

남자 대신 배달을 나섰던 음식점 여자의 철가방이 결정타를 날린다. 신고를 받고 기동대장( 정보석)이 달려온다. 여자들은 구급차에 실려 가던 남자가 죽었다는 소식을 듣고 모두 옥상으로 도망간다.

그때부터 여자들과 경찰의 대치가 시작된다.

순순히 내려 오지 않는 여자들에게 경찰이 할 수 있는 일은 확성기로 자수를 설득하는 일밖에 없다. 그 전에 아들 내외의 학대로 자살을 결심한 할머니가 옥상에서 투신자살했으므로 경찰도 섣불리 행동하기 어렵다.

할머니의 죽음은 남자의 죽음과는 무관했으나 아들은 어머니가 죽기 전에 늘 아버지에게 폭행당했다고 말해 할아버지의 폭행 때문에 할머니가 자살한 것으로 오해된다. 순교자라고나 할까.

영화는 살인을 중심으로 작은 사건들이 몇 개 겹쳐 지면서 활력을 더한다.

두 명의 도둑(이경영, 김민종)이 빈집을 털고 전파사 수리공이 홀로 사는 여자와 바람을 피우며 트랜스젠더가 한 남자의 사랑을 받고 술집 여자(정선경)가 등장하고 부녀회장( 김보연)이 여러분을 외치며 재미를 더한다.

어쨌든 쉽게 해결될 것 같은 현장은 녹록치 않다.

기동대장은 마치 시위대를 진압할 듯이 기세등등하지만 일은 더욱 꼬이고 제보를 받고 현장 취재에 나선 기자는 불볕더위에 대치 중인 여성들과 경찰들을 인터뷰하기에 바쁘다.

세간의 관심은 서민들이 사는 장미 아파트에 집중되고 언제 사선이 풀릴지 조마조마하다. 도둑은 빈집에 들어 가는데 어렵게 성공한다. 하지만 턴 물건을 가지고 밖으로 나오지 못한다. 계단을 점령한 경찰들이 죽치고 앉아 있기 때문이다.

옥상에서는 대책회의가 열린다. 말끝마다 여러분을 외치는 부녀회장은 주민들을 모아놓고 작전을 짜지만 별다른 뾰족한 수가 나오지 않는다.

그 사이 옥상의 한켠에는 전파사 사장과 바람을 피우던 여자가 비키니 차림으로 선탠을 하고 있다. 처음에 여자들은 그 여자를 아니꼽게 보지만 나중에는 그 여자까지 농성에 참여해 힘을 보탠다.

여자들은 여자라는 이유만으로 그동안 멸시와 천대를 받은 것에 대해 분노를 터트린다. 경찰은 선도차를 앞세우고 버스로 병력을 실어 나르지만 많은 병력이 사태를 해결해주지는 못한다.

기동대장은 옥상을 향해 구타당한 남자가 사망했다는 사실을 거듭 강조하면서 살인 현행범으로 모두 체포하겠다고 목소리를 높인다. 5분의 기회를 주고 안 내려오는 강제 연행하겠다는 것.

기동대장은 이 같은 말을 반말로 부하하게 하듯이 지시하는데 옥상에서는 우리는 학생이 아니니 반말을 삼가고 여기 있는 사람 가운데는 네 어미 뻘도 있다고 호통을 친다.

사다리차가 동원되고 옥상문을 밀치기도 해보지만 모든 작전을 실패로 돌아간다. 급기야 기동대장이 아는 줄타기 전문가를 불러 들이지만 위에서 퍼붓는 똥물을 맞고 나동그라 진다.

그동안 옥상은 나름대로 저항한다. 각구목과 항아리를 아래로 던진다. 지독한 오후가 끝나가고 옥상에 어둠이 물들기 시작한다.

자신을 소개하는 자리가 자연스럽게 마련된다. 술집을 나가고(정선경) 밤무대 가수로 활동하고 혼자 살고 이혼녀의 신분이 드러난다. 그러면서 작은 소동도 일어난다.

간통녀에 대거리를 하고 술집 여자를 깔보고 여자가 되고 싶었던 남자를 비웃기도 한다. 그러다가 우리는 모두 여자라는데 인식을 같이 하고 우리의 행동은 살인이 아닌 정당방위임을 주장하기에 이른다.

한편 아래쪽은 겉으로는 여유가 있다. 고기를 굽고 파티를 연다. 변변히 먹을 것도 없어 고생하는 옥상의 여자들은 물건을 집어 던져 불판을 박살 낸다.

화난 경찰에게 이거나 먹으라고 종주먹을 들이대고 치마를 펄럭이며 속옷을 보여준다. 으슥한 밤. 특공대원의 작전 같이 걸쇠가 걸리고 밧줄을 타고 검은 옷의 사람이 옥상으로 들이 닥친다.

경찰아닌 먹을 것을 가지고 온 여성 전사들. 그들은 서로 내 인생의 빵이니 쥬스니 하면서 게걸스럽게 먹으면서 기운을 차리고 전열을 가다듬는다.

이 때 어디선가 소양강 처녀를 부르는 취한 목소리는 두 도둑이 목청껏 부르는 노래다. 노래를 들으며 여자들은 신세 한탄을 하고 머슴처럼 살았던 과거를 후회하고 다시는 그러지 말자고 다짐한다.

다음 날 아침 경찰의 구보 소리에 잠을 깬 옥상의 여자들. 그러기를 벌써 3일째다.

기자는 짐차로 위장한 사다리를 타고 옥상에 진입해 농성자들의 인터뷰에 성공한다. 돌아가면서 각자는 자신이 하고 싶었던 평소 말과 여자의 행복에 대해 이야기 한다.

그런가 하면 우리의 싸움은 외롭고 힘들지만 성차별 없는 세상을 위해 끝까지 싸우겠다고 다짐도 한다. 인터뷰를 거치면서 여성들은 중요한 건 우리가 하나 되는 것이라는데 공감대가 형성한다.

전사로 거듭나는 순간이다.

마침 트랜스잰더의 23번째 맞는 생일이다. 넌, 오늘부터 진짜 여자로 태어났다며 험한 말을 했던 술집 여자는 자신의 말을 사과한다. 그리고 종이비행기를 접어 아래로 날려 보낸다.

아내 없는 음식 장사는 힘들다. 이놈의 여편네가 없으니 눈코 뜰 새가 없다고 남편은 불만을 쏟아낸다. 여성단체들은 농성에 찬성하는 성명을 내고 관계기관은 모여서 대책회의를 연다.

세상이 미쳤다고 아래는 위를 보고 위는 아래를 보면서 말한다. 타협의 기미는 보이지 않는다. 그때 한줄기 비가 시원하게 쏟아 진다. 더위를 물리치는 비다. 더위는 한 풀 꺾였고 사건은 해결됐다.

여자들은 경찰이 마련한 자살 방지용 매트리스로 하나둘씩 뛰어내린다. 여성 단체들은 펫말을 들고 떼로 몰려온다. 술집 여자와 기동대장이 악수를 한다.

도둑은 그 틈을 타고 큼직한 자루를 하나씩 메고 유유히 인파속으로 사라지면서 개같은 날의 오후는 막을 내린다.

국가: 한국

감독: 이민용

출연: 정선경, 정보석

평점:

: 많이 좋아지기는 했지만 지금도 트렌스젠더에 대한 사회의 시선은 여전히 곱지 않다. 그러니 영화가 나올 당시는 말 안해도 어땠을까 짐작이 간다.

자신도 사회적 약자이면서 여자인 남자를 대하는 술집 여자의 태도는 너무 심해 보는 관객의 가슴이 다 미어질 정도다.

자신의 성 정체성을 밝히자 진짜 사내새끼가 맞는지 보자며 자빠트리고 속옷을 찢는 장면은 충격 그 자체다. 그녀는 울면서 말한다. 난 여자예요, 속인 거 아닙니다. 난 언제나 내가 여자였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러자 그를 쓰러트렸던 여자가 받는 말이 더 가관이다.

남자가 뭐가 부족해서 여자처럼 사느냐고. 우리가 누구 때문에 이 고생이냐고. 빨리 내려가라, 나쁜 자식아. 그러자 옆에 있던 여자도 맞다고 동조한다. 우리 싸움의 선명성이 해체됐다. 질질 짜지 말고 뛰어 내리든지, 없어져 이 새끼야, 고함을 지른다.

그때 맞아 죽은 남편의 아내가 조용히 말한다. 우리가 이해하고 받아주자. 내 생각만 하느냐. 지금 이 남자의 절박함, 외로움을 생각하자고 다가가서 안아준다. 바람녀도 한마디 한다.

혼자 사는 여자의 문제는 겪어 보지 않은 사람은 모른다고. 이 옥상에는 깨끗하고 잘 난 여자만 있느냐고 항변한다. 우리끼리 분란은 저 아래 남자들이 바라는 바다. 지금 우리는 남녀의 성 문제를 떠나 외롭고 소외된 사람은 받아 줘야 한다고 다독인다.

이 영화는 웃음이 넘친다. 무거우면서 사회적이고 페미니즘 요소가 가득하다. 여성들이 이긴 것처럼 혹은 악수 했으니 적어도 비긴 것처럼 보이지만 끝마무리는 조금 아쉽다.

아내들을 학대했던 남편들의 진정한 사과나 반성, 이런 것들을 담아내지 못했기 때문이다.

한편 대머리 독재자를 연상시키는 기동대장의 언행은 남자의 권위가 어느 정도 인지 가늠하게 한다. 이제 세월은 흘러 맞고 사는 여자는 흔하지 않다.

성 평등은 좀 더 가까이 왔고 우리는 여편네니 쌍년이니 계집년이니 하는 영화적 대사를 터부시하는 시대를 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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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약뉴스 이병구 기자  |  bgusp@newsm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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