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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금 늦게 시작해도 좋다는 허락을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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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금 늦게 시작해도 좋다는 허락을 받았다
  • 의약뉴스 이병구 기자
  • 승인 2019.01.14 10:39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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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녀의 남편은 저녁 9시가 돼서야 집으로 돌아왔다. 그가 일하는 곳은 충남 서해안의 작은 포구였다.

그의 일터에서 오늘 작은 회식이 열렸다. 그래서 평소보다 한 시간이 늦었다. 회식은 조원 8명이 조금씩 갹출한 돈으로 마련됐다.

명색이 공무원이었지만 쓰레기 청소부들을 위해 근처 상인들이 마련한 자리가 아니었다. 상인들은 약삭발라서 누가 자신들의 영업에 이득이 되는지를 잘 알고 있었으므로 그들을 위해 돈을 쓰지 않았다.

그들이 쓰는 곳은 힘이 센 기관이었고 감시하는 자들이었으며 허가를 담당하거나 이런 저런 이유로 벌금을 매길 수 있는 위치에 있는 자들이었다.

정작 자기 앞 가게를 매일 아침 쓸어주는 청소부를 위해 그들은 단 한 푼도 지출하지 않았다. 하지만 그것을 청소부들이 아쉬어 하거나 기대하거나 하지 않았다.

그들은 누구로부터 한번도 공짜 식사를 받아 본 적이 없었다. 자리를 파하면서 그들은 상부로부터 내일은 30분 정도 늦게 일을 시작해도 좋다는 허락을 받았다.

조금 취한 상태로 집에 돌아온 남편은 곧장 운동복으로 갈아 입었다. 그리고 일터에서 쓰는 쓰레기 봉투를 들고 집밖으로 나섰다. 조깅을 하면서도 그는 쓰레기가 보이면 멈춰 서서 그것을 담았다.

갈 때는 조금 가벼운 몸이 올 때는 묵직한 쓰레기 더미로 해서 힘겨웠다. 그러나 그는 무거울수록 기분이 좋아지는 카타르시스를 느꼈다.

쓰레기가 적은 날은 되레 움츠러 들기까지 했다. 그러나 그것은 시민의식이 그만큼 커가는 것이었으므로 기분좋은 것이었고 그런 날은 그도 일하는 보람이 배가 됐다.

남편은 아내도 자신의 일에서 이런 기쁨이 넘쳐나기를 바랐다. 같이 청소일을 했으면 하는 바람도 해보았다. 미국에 있는 그녀가 한국으로 오면 청소부 시험에 응시하라고 권하려고 마음 먹었다.

그러나 아직은 아니었다. 겨우 1년도 채 지나지 않았고 아내도 미국 생활에 만족하고 있었다.

그가 전화기 너머로 아내에게 자신의 일을 즐겁게 이야기 했듯이 그녀도 호스피스 생활이 세상에서 가장 신나고 보람찬 것이라도 되는 양 밝은 목소리를 전해왔다.

남편은 아내가 기죽지 않고 자신의 일을 당차게 해나가는 것을 보고 내심 안도했다. 한국에 있을 때 그렇게 돈에 집착하고 생긴 돈은 남을 위해 쓰기 보다는 쇼핑으로 화려하게 꾸미는 것을 좋아하던 것과는 아주 딴판으로 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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