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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종편집 2022-12-09 18:50 (금)
흔적을 쉽게 찾을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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흔적을 쉽게 찾을 수 있었다
  • 의약뉴스 이병구 기자
  • 승인 2018.11.29 13:5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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놀라운 일이었다. 호랑이가 두 눈에 불을 켜고 숲속에서 먹이를 노리고 있었다.

자동차 서치라이트 불빛 같은 강렬한 두 줄기 빛이 어둠을 뚫고 지나갔다.

오금이 저린 나는 걸음을 서둘렀다.

한참을 식은땀을 흘리며 내려오니 계곡으로 통하는 지름길이 보였다. 거의 다 왔다는 말이다.

익숙한 길에 접어들면 사람들은 안도하기 마련이다. 그래서 조금 긴장이 풀렸고 그래서인지 주변을 돌아보는 여유가 생겼다.

그 사이 가로등은 이미 불을 밝히고 있었다. 그래서 막혔던 철조망이 사라진 흔적을 쉽게 찾을 수 있었다.

철조망은 산뿐만 아니라 아래쪽에서도 어디로 갔는지 감쪽같이 모습을 감추고 있었다. 절대자의 힘은 역시 대단했다.

이제 그것을 확인할 필요는 없었다. 세상의 모든 가시 달린 철조망은 지구상에서 사라졌다. 그것이 어디로 갔는지 나는 알지 못한다. 알고 싶지도 않다.

사라졌다는 사실에 일단 만족하기로 했다. 뒤따라 오던 호랑이의 발자국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내가 랜턴 없이 순조롭게 하산할 수 있었던 것은 뒤에서 비췄던 호랑이 눈 때문이었다는 것을 택시 안에서 짐작했다.

거리는 이제 밤을 제대로 즐길 시간이었다. 집으로 가려다 나는 신림사거리에서 내렸다.

9시가 조금 넘었으니 직장인들은 퇴근길에 한잔하기 위해 술집에 모여들었다. 그들을 끌기 위한 조명은 현란했고 있는 불빛은 모두 제 역할을 하기 시작했다.

나는 마침 목이 마른 참이어서 근처의 펍스트리트로 향했다. 그리고 앞에서 세 번째 가게로 들어갔다. 단골이거나 아는 술집은 아니었다.

길의 첫 번째나 두 번째보다는 세 번째를 선호하는 습관 때문이었다. 술집에서 나는 마침 9시 뉴스가 끝나는 무렵에 단신 하나를 들었다.

앵커는 오늘 오후 6시 이후 갑자기 모든 철조망이 사라졌다는 것을 내일 날씨 정도로 가볍게 처리했다. 그 사실은 하찮은 것이었다. 그것이 사라졌어도 사람들이 사는 세상은 아무런 문제가 없었기 때문이다.

되레 반대였다. 그래서 뉴스는 그런 사실을 가볍게 다뤘다. 없어졌기 때문에 있을 때 보다 어떤 장단점이 있는지 앵커는 굳이 덧붙이지 않았다. 나는 나 이외의 다른 사람들도 철조망이 사라진 사실을 모두 알게됐다는 사실을 알았다.

마침 그때 주문한 홉향이 강한 수제 맥주가 병 채 나왔으므로 나는 그것을 컵에 따르기 보다는 그대로 입으로 가져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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