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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95. 경마장 가는 길(199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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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95. 경마장 가는 길(1991)
  • 의약뉴스 이병구 기자
  • 승인 2018.11.05 09: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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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찬욱 감독은 장선우 감독의 <경마장 가는 길>에 대해 당시에는 감당하기 어려울 만큼 앞서간 영화라고 칭찬했다.

영화가 발표된 1991년에도 논란이 크게 일었다. 포스트모더니즘에 관한 격렬한 찬반이 바로 그것이다. 그럴 만도 한 것이 이 영화는 그 전까지 나온 한국영화와는 좀 다른 감각을 선보이고 있기 때문이다.

주인공 남녀의 허다한 이야기가 알 듯 모를 듯 하기도 하거니와 그런 대화가 시작부터 끝까지 쉬지 않고 이어진다는 점이다. 마치 우디 앨런의 영화를 보는 것 같은 착각에 빠져 들기도 한다.

행동이나 묘사보다는 대화가 주를 이루다 보니 다른 것들은 거의 끼어들 여지가 없다.

거리나 다방이나 여관이나 버스 안 등이 영화 배경의 거의 전부를 차지할 정도다. 그러니 제작비라는 것도 크게 들지 않았을 것이다. 등장인물도 그렇게 많지 않고 계절도 바뀌지 않은 것으로 봐서 촬영도 어렵지 않았을 것임에도 논쟁과 화제를 몰 고 온 것은 감독의 재간이 무르익었기 때문이다.

영화의 묘한 매력 속으로 빠져 들어가 보자.

 

주인공 R(문성근)과 J(강수연)가 벌이는 수작질이 단연 압권이다. 위선을 감추기 위해 세련된 단어로 포장하거나 거짓을 진실로 착각하게끔 만들기 위한 교묘한 언어적 유희가 지식 싸움을 벌이듯이 숨 가쁘다.

알은 아이큐만 발달해 수학은 잘 풀어 좋은 대학에 들어간 사이코 기질이 다분한 인물이다. 자기만의 세계에 빠져서 허우적거린다. 그 세계에서 좀처럼 빠져 나오지 못하는 것은 그가 던진 미끼를 물까 말까 고민하는 제이의 바보스럽지만 현명한 대처 때문이다.

알은 오랜 프랑스 생활을 마치고 귀국했다. 공항에는 제이가 마중 나와 있다.

둘은 나이차가 있어 보이지만 연인이라고 해도 크게 문제될 것 같지 않은 관계로 보인다. 과연 예상은 맞아 떨어져 두 사람은 집 아닌 여관으로 먼저 직행한다.

알은 22시간 잠을 자지 못했음에도 잠보다는 바로 섹스로 들어가기를 원하지만 제이는 멈칫거리면서 이러지 마세요, 여기서는 안돼요, 라면서 그 일을 뒤로 미룬다.

알은 짜증이 일지만 자신이 없는 그 사이에 제이에게 무슨 일이 일어난 것은 아닌지 하는 의구심을 품으면서 일단 억지로 그렇게 하는 대신 제이의 말을 따르기로 한다.

그 짧은 시간의 대화를 통해 알은 외국 유학에서 나름대로 위치를 차지한 먹물인 것으로 보이고 제이는 알의 옅은 지식을 이용해 국내에서 어떤 지위를 보장 받은 것으로 어림짐작해 볼 수 있다.

알은 고속버스를 타고 대구로 향한다. 그 곳에는 아들과 딸과 부인( 김보연)이 기다리고 있다. 하지만 알은 가족에게는 관심이 없다. 부모도 있지만 형식적인 인사에 그칠 뿐이다.

그에게 가족은 한 번 정도 인사하고 돌아서는 남 같은 존재에 불과하다. 그는 이혼 이야기를 꺼내지만 아내는 딴 청을 부리면서 그럴 생각이 없다. 알은 한 방에서 잠을 자지만 아내의 손동작에 등을 돌리는 것으로 자신의 의사를 분명히 밝힌다.

공항에 도착한 이후 알의 생활은 제이가 있는 서울과 아내가 있는 대구를 오가는 것으로 일정이 짜져 있다.

알은 귀국 후 아직 하지 못한 제이와의 관계를 맺기 위해 부단히 노력한다. 제이도 알의 그런 마음을 알고 있어 그가 원하는 것이 무언인지 모른다고 할 수 없다. 둘은 이미 프랑스에서 삼면 반 동안 동거한 경험이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제이는 이미 그와 익숙한 섹스에 대해 거부하면서 알을 미치게 하는데 이 과정에서 두 사람간의 대화라는 것이 아니 오갈 수 없고 오가는 대화가 소위 말하는 ‘골 때리는’ 수준이다.

알은 자신의 지식을 한 껏 내세워 제자이면서 한 수 아래인 제이를 아주 깔보는 태도를 보인다. 논리를 앞세워 비논리를 타박하거나 명령조의 말투로 기선을 제압한다.

그러면 제이는 연출된 백치미 역을 충실히 하기 위해 그렇다고 고개를 끄덕이면서도 행동에서는 그와 반대로 하는 등 갈팡질팡 한다. 알은 마침내 제이에게 나 없는 사이에 다른 남자가 생겼는지를 집요하게 묻고 그렇다는 대답을 얻어내는데 성공한다.

하지만 알은 결혼할 남자라는 제이의 말에도 불구하고 그녀를 집요하게 탐한다. 프랑스에서 나 못지않게 즐긴 너에 대한 기억을 상기 시킨다. 제이는 더 이상 요구를 거절하지 못할 지경에 와서야 선심 쓰는 척 알의 욕구를 채워주지 위해 섹스에 돌입하는데 알의 기교는 그가 자랑했던 숱한 체위에 비해 그렇게 대단해 보이지는 않는다.

둘이 서울에서 그러는 사이 대구의 아내는 이혼에 대해서는 한 치의 양보도 없다. 무려 8년간 기다렸으니 이제는 이혼해 달라는 알의 말에 거부 의사를 분명히 하면서 내가 혼전에 다른 남자가 있었다는 사실이 이혼의 사유냐고 따진다.

결혼을 앞둔 알의 여동생도 그렇다면서 누구는 괜찮고 누구는 안 괜찮느냐 고 똑같은 혼전관계에 차별을 두는 태도를 문제 삼는다.

여기서 알은 차마 할 수 없는 파렴치한 태도를 보인다. 그는 아내가 요즘 들어 더 없이 잘 하고 있다는 평가를 내리고 있는 부모 앞에서 이 여자가 혼전 관계가 있었고 그 중의 하나는 내 고등학교 친구였다고 큰 소리로 떠벌인다.

유학파 박사학위를 받으면 뭐하나. 시끄럽다, 못난 자식 이라고 말하는 못 배운 아비만도 못한데.

그런 알이라 이런 꾸중을 듣고도 부끄럽게 생각하지 않는다. 아이큐는 높지만 다른 지능은 매우 낮은 전형적인 또라이 기질을 보이는 것이다.

그는 또 이런 이야기를 하면서 속물인간의 근본을 여지없이 드러낸다. 저 여자는 나를 키워줄 여자가 아니다. 내 책은 갖다 버리면서도 자신의 헌 경대를 끌고 갈 여자라고 천박한 언행을 멈추지 않는다.

알은 모든 박사학위 남자를 한심하게 만드는 비루하고 못된 짓을 대사랍시고 외쳐댄다. ( 이 때 문성근의 연기는 기가 막힌다. 그는 마치 그런 인간과 한 몸이라도 된 듯이 리얼한 표정과 제스처를 선보인다. 한국의 로버트 드니로와 같은 일급 배우의 젊을 적 연기를 보는 것은 매우 흥미 있는 일이다.)

이런 주접에도 불구하고 알은 끝내 아내와 이혼을 하지 못한다. 제이는 그런 알이 답답하다. 제이도 그 남자냐, 나냐 양자택일을 요구하는 알에게 결혼을 원한다고 했다가 헤어지겠다고 하는 등 횡설수설 하기는 마찬가지다. (이러지도 못하고 저러지도 못하면서 애매한 표정과 그런 행동을 보이는 강수연의 연기는 문성근에 대적하고도 남을 만하다. 우리에게 맥 라이언 같은 이런 여배우가 있었다는 사실이 매우 기분 좋다.)

잠자리까지 왔지만 둘의 이야기는 늘 하던 패턴을 벗어나지 못한다. 한껏 지식을 과장하는 알과 이해한다는 제이의 떠벌임이 언제 끝날지 종잡을 수 없다.

이런 가운데서 마침내 알의 추잡한 대사는 속도를 더해 간다. 서점에서 문학지를 보던 그가 자신의 글로 신춘문예에 당선됐다는 사실을 알고 제이를 협박하기 시작한다. ( 문학적인 면에서 알은 제이 보다는 한 수 위인 것 만 은 분명해 보인다. 제이가 프랑스에서 문학박사 학위를 받고 국내 대학 교수직을 노릴 수 있었던 것도 알이 써준 논문 때문에 가능했다. 그런데 그 것도 모자라 제이는 알의 글을 자신이 쓴 것처럼 해서 문학지에 발표해 신춘문예에 당선됐다.)

약점을 잡은 알은 제이에게 경찰서로 가자고 요구한다. 파렴치함에 있어서는 제이도 대단하지만 알의 그 것을 압도하지는 못한다.

결국 알은 제이에게 삼천만원을 요구한다. 지식을 훔친 대가를 요구하고 있는 것이다. 제이가 비록 자동차를 소유하고 옷을 잘 입으며 돈을 잘 쓰고는 있지만 그 큰돈을 마련하는 것은 쉽지 않다.( 제이의 아버지는 공장을 소유한 알의 표현을 빌리면 한국에서 귀족행세를 하는 쁘띠 부르조아다. 대화중에는 느닷없이 너 네 아버지 회사는 노사분규가 없느냐고 묻는 질문이 나온다. 중부 고속도로가 생겼다거나 멸공이라고 쓴 자가용이 지나가면서 확성기를 틀어댄다. 당시 사회 분위기를 암시하는 표현들이다. )

참으로 못 난 놈, 알이 도대체 어디까지 망가질 까 조마조마하다. 차라리 양아치로 나와 그런다면 이해라도 하지. 유학까지 같다 온 지식인의 저 위선과 염치없음에는 두 손 두 발 다 들게 된다.

하지만 영화에서는 그 이상은 말하지 않는다. 지금까지 해온 것만으로도 알이 어떤 인간인지를 충분히 그려냈기 때문이다. 제이의 행동도 더는 불필요하다.

우유부단하면서 바보인척 하지만 나름대로 즐기고 실리는 챙기는 그녀의 노련한 행동은 백치미만큼이나 볼거리를 제공한다.

알이 이혼에 성공하고 제이가 젊은 남자를 따돌리면서 둘이 결혼할 지 아니면 다시 외국에 나가는 알의 제의에 제이가 따를지는 관객 개개의 상상 속에 맡겨야 한다.

영화는 끝나지만 굿바이 하고 헤어진 알이 계단을 오르다가 다시 내려가서 돌아서서 가는 제이를 붙잡고 다방에 가서 이야기나 하자고 잡을지 모르기 때문이다.

그러면 제이는 의아해 하면서 그러죠 뭐, 하고 미리 준비한 대답을 할 것이 뻔 하기 때문에 둘이 어떤 결론에 도달하리라는 것을 기대할 필요는 없다.

국가: 한국

감독: 장선우

출연: 안성기, 강수연, 이보연

평점:

 

: 앞서 이 영화가 시대를 앞서 갔으며 그로 인해 논란의 대상이 됐다는 것은 언급했다.

삼 십 여 년이 지난 지금 다시 봐도 이 영화는 현대 오늘 바로 개봉한 영화라고 해도 전혀 어색하지 않을 만큼 세련됐다.

좋은 영화는 퇴색되기 보다는 새롭게 태어난다. 보이는 도시의 풍경이나 고속버스안의 텔레비전( 당시에는 운전석 바로 위에 모니터 있었고 거기서 서부극 등을 방영했다. 좌석 뒷자리에는 재떨이까지 있었고 실내에서도 마음대로 흡연이 가능했다.), 손전화가 없어 공중전화로 연락을 취하던 그런 것들을 빼고는 오늘이라고 해서 알과 제이의 대화가 크게 달라질 것은 없다.

주인공들의 대사는 여전히 들을 만하고 남녀가 서로 얻고자 하는 것을 위해 안간힘을 쓰는 모습들은 현재도 여전히 유효하다.

여관방에 자발적으로 따라왔으면서도 섹스 요구를 거부하는 제이에게 알이 너의 이러한 행동의 이데올로기는 뭐냐? 고 묻거나 600년 역사의 서울이 온통 십자가, 거대한 공동묘지라거나 이 모든 것은 감정상의 문제라고 언성을 높일 때면 마치 문성근과 강수연이 눈앞에 서 있는 것처럼 생생하다.

영화 끝무렵 문성근이 경마장이 여기서 얼마쯤 된다며 이리 저리 왔다 갔다하는 장면이 어떤 의미인지, 제목으로 맞아 떨어지는지 생각해 보는 것도 여운을 즐기는 한 방법이 되겠다.

하일지 소설이 원작이다. ( 대학에 있던 하일지는 최근 강단을 떠났다고 한다. 그가 어느 순간 어떤 글을 가지고 나올지 궁금하다.) 이 영화를 만든 장선우 감독의 또 다른 역작 <우묵배미의 사랑>이 최근 재개봉 됐다.

그런데 그 영화보다는 <경마장 가는 길>이 재개봉 됐으면 더 많은 관객이 들고 더 많은 화제를 불러 왔을 텐데 하는 아쉬움이 있다. 어떤 이유 때문에 재개봉이 늦어진다면 그 이유가 소멸되는 어느 시점에서는 반드시 영화관에서 다시 볼 수 있기를 기대한다.

영화 중간에 나훈아의 ‘무시로’가 배경음으로 나왔다. 그래서 이 글을 다 쓰면 찾아서 들어보기로 했다. 그렇다고 지금 나훈아가 어디서 무엇을 하는지 근황을 알고 싶지는 않다.

한편 이 글을 쓰는 즈음 배우 강신성일이 폐암으로 사망했다는 뉴스가 나왔다. 한국영화를 풍성하게 했던 대배우의 죽음에 삼가 명복을 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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