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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상의 비워둔 공간에 그가 와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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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상의 비워둔 공간에 그가 와 있었다
  • 의약뉴스 이병구 기자
  • 승인 2018.10.30 09: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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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정에서 바람이 분다. 흐른 땀은 빠르게 식는다. 시원하다기 보다 조금 춥다는 느낌이 드는 것은 계절이 10월의 마지막 밤을 향해 달리기 때문이다.

어떤 이는 헤어진 인연 때문에 괴로워하는 그런 때이기도 하다. 노래방에서 목청껏 불러본다고 해서 뜻 모를 이야기만 남긴채 헤어진 연인이 다시 돌아오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그렇게라도 해서 잊지 못할 사랑을 잊을 수만 있다면 하지 말라고 말린 필요는 없다.

단풍은 물들고 하늘은 높은데 할 일은 아직 많이 남아 있다. 갈 길이 멀다는 말이다. 하지만 소걸음으로 걸어도 천리를 가듯이 정상의 언저리가 보이니 저기도 오르지 못할 이유가 없다.

잠시 둘러서서 사방을 돌아본다. 트인 시야 사이로 아파트 군락이 마치 무더기로 피어난 흰국화처럼 자태를 뽐내고 있는데 보아서 좋은 그림은 아니다 라는데 생각이 미쳤다.

그 것은 그 곳의 공간이 다른 곳과 차별화 되지 않고 너무나 똑같기 때문이었다. 인간의 정주 공간이 천편일률적이라는 것은 슬픈 일이다. 빗자루로 쓸 마당이 없고 가위로 정돈할 나무가 없는 시멘트로 둘러싸인 곳에서 인간들은 슬픈 하루를 마감하고 있다.

그러니 아래쪽에 숲을 이루고 있는 아파트 군락들이 아름다운 한 떨기 국화로 보였다가 뭉쳐진 시멘트 덩이로 보이는 것은 어쩔 수 없는 현상이었다. 하지만 현실인데 어쩔 것인가.

아파트 군단들은 지금도 떼로 몰려다니면서 위세를 부리고 있다. 인정할 것은 그렇다고 하자면서 나는 편한 마음으로 산정으로 향했다. 이마의 땀이 식었으므로 조금 전 까지 시원했던 바람은 조금 쌀쌀해졌다.

그러나 발걸음은 사뿐했다. 잠시의 휴식이 가져다 준 결과였다. 위쪽으로 갈수록 경사는 급해졌고 세우기보다는 기어가는 자세로 몸의 위치가 수시로 바뀌었다.

바위로 손으로 잡자 그 것의 온기는 따뜻했다. 석양을 받은지 얼마 되지 않아  식지 않는 상태로 사람의 손을 기다리고 있었다.

살아 있는 바위라고 했으니 그에게 손을 대는 것은 마치 사람의 어깨에 그렇게 하는 것처럼 어떤 위안이 찾아왔다. 그렇게 여러 번 이 바위 전 바위로 손을 옮길 즈음 정상에 도착했다.

그 곳에는 많은 사람들이 이미 와 있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사람들은 정상의 한 가운데는 비워두고 조금 좌우로 비켜서 있었다. 의아해 하고 있다가 나는 금세 아차하고 어떤 느낌을 강하게 받았다.

그 곳에 내가 애타게 찾고 있던 절대자가 와 있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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