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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8. <안티고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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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8. <안티고네>
  • 의약뉴스 이병구 기자
  • 승인 2018.10.28 19: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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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의 변화와 발전을 정반합의 변증법으로 이해했던 헤겔은 <안티고네>에 대해 이런 평을 했다.

“<안티고네>는 가장 숭고하고 가장 완벽한 예술작품 중의 하나다. 여주인공 안티고네는 지상에서 나타난 인물 중 가장 고결한 인물이다.”

자, 위대한 철학자에게서 이 정도의 평을 받았으니 잔뜩 기대해도 될 만하지 않은가. 일단 내용 속으로 들어가 보자. 그러기 전에 안티고네가 누구인지 먼저 간략히 설명해 보자.

안티고네는 오이디푸스 왕의 장녀다. 오이디푸스는 아버지를 죽이고 어머니와 결혼해 두 아들과 두 딸을 낳았다. 장남은 폴뤼네이케스이고 차남은 에테오클레스다. 안티고네의 여동생은 이스메데다.

굳이 설명을 덧붙이면 안티고네는 오이디푸스 왕의 딸이면서 여동생이다. 가계도가 황당하지만 전해져 내려오는 이야기는 다 알듯이 그렇다.

오이디푸스 왕이 앞을 보지 못하는 사람이 되어 방랑자가 된 것은 앞서 소개한 <오이디푸스 왕>에서 밝혔다. <안티고네>는 그 이후의 이야기가 되겠다.

<안티고네>는 그러니까 소포클레스의 <오이디푸스 왕>의 후속 작쯤으로 보인다. 출간 연도는 <오이디푸스 왕>이 먼저라는 설도 있다.

내용은 당시 그리스 인들이 다 아는 신화이기 때문에 건너뛰는 수도 있어 <오이디푸스 왕>을 먼저 읽은 다음 읽거나 소포클레스의 삼부작으로 평가받는 <클로노스의 오이디푸스 왕>을 함께 읽으면 이해하는데 한결 수월하다.

하지만 그런 사전 정지작업이 없이도 <안티고네> 단독만으로도 읽는데 크게 문제는 없다. 

사설이 길어졌으니 에두르지 않고 단도직입으로 내용을 파고 들어가 보자.

오이디푸스 왕이 죽은 후 에테오클레스는 둘이 일 년 씩 왕위를 번갈아 가면서 하자는 약속을 깨고 왕권을 내놓지 않았다. 이에 폴뤼네이케스는 아르고스로 가서 그 곳 왕의 사위가 됐다. 

그리고 일곱 장수와 병사를 이끌고 테베로 쳐들어 왔다. 동생 에테로클레스는 형과 맞섰다. 전쟁에서 동생이 형을 이겼다.

그러나 둘은 서로의 칼에 의해 동시에 죽었다. 이제 테베의 왕은 오이디푸스 왕가의 혈육 중 가장 가까운 크레온에게 돌아갔다. 안티고네의 외삼촌이다.

왕은 백성들에게 포고령을 내린다. 반역자 폴뤼네이케스는 들판에 버려 새나 개의 밥이 되게 하고 애국자 에테오클레스는 성대하게 장례 지내라고. 그리고 이를 어겨 버려진 시체를 매장하는 사람은 돌에 맞아 죽도록 명령했다.

소식을 들은 안티고네는 무슨 일이 있어도 오빠가 들판의 먹이가 되게 할 수는 없다고 동생 이스메네에게 함께 장사를 지내자고 말한다. ( 시체를 매장하지 않고 그대로 두는 것은 치욕이며 영원히 안식 할 수 없다는 그 시대 분위기가 있었다.)

 

그러나 동생은 언니의 행동을 나무라면서 자신은 통치자의 의사에 반하는 일에 동참할 수 없다고 거절한다. 하지만 안티고네는 명예롭게 죽지 못하는 것보다도 더 끔찍한 것은 없다며 실행에 옮긴다.

이때 파수꾼이 등장해 누군가 폴리네이케스의 장사를 지냈으나 범인은 잡지 못했다는 사실을 고한다. 크레온은 노발대발 한다. 이후 이 파수꾼은 두 번째 장례를 치르는 안티고네를 현장에서 체포한다. 곡하면서 애통해 하고 이 일을 저지른 자에게 저주를 퍼붓고 있을 때.

크레온은 심문한다. 이 일을 인정하는지 부인하는지, 포고령을 들었는지 못 들었는지 묻는다. 안티고네는 신의 법이 필멸인 인간의 법보다 우선한다며 자신의 정당성을 주장한다.

장군( 그녀는 크레온을 왕으로 칭하지 않는다.)의 국법보다 신들이 법이 우선하기에 오빠의 시신에 모래가루를 뿌렸다고 당당하게 말한다.

이스메데도 끌려온다. 그녀는 크레온의 심문에 자신도 떳떳이 그 일을 수행했다고 말한다. 반전이다. 언니의 제의를 거절했던 동생이 언니가 그 일로 죽을 위기에 처했는데 되레 하지도 않은 일을 했다고 자신도 같은 책임이 있다고 나선 것이다.

안티고네는 당황해 그것은 정의가 허락하는 일이 아니라고 반박한다. 동생도 고집이 여간이 아니어서 끝내 자신도 오빠의 매장 현장에 있었다고 주장한다.

여기에 하이몬이 등장한다. 크레온의 아들이다. 안티고네와 결혼할 예정인 하이몬은 당연히 안티고네를 살리고 싶다. 그래서 분노한 아버지를 달래기 위해 자신은 언제나 아버지 편이라면서 아버지의 지도에 따르겠다는 뜻을 분명히 한다.

그러면서 아버지를 설득한다. 모든 여인가운데 가장 고귀하며 가장 명예로운 행위 때문에 안티고네가 가장 비참하게 죽는다고 온 도시가 애통해 하고 있다고 아버지께 고한다.

그러나 아버지는 내가 도시가 시키는 대로 명해야 하느냐, 이 땅을 다스리면서 내 뜻이 아니라 다른 이의 뜻대로 해야 하느냐고 반문한다. 아버지 편이라던 아들은 내편이 아닌 여자편이라고 여긴 크레온은 국가는 지배자의 소유라는 것을 분명히 하면서 안티고네를 죽음으로 내몬다.

살펴본 대로 여기 등장하는 주인공들은 모두 자기주장이 확실하고 절대 고집을 꺾지 않는다는 특징이 있다. 그 결과는 참혹하다. 크레온은 아들의 말을 무시하고 안티고네를 바위로 된 지하 동굴에 산 채로 가둔다. 알아서 죽으라는 뜻이다.

<오이디푸스의 왕>에서도 등장했던 늙고 앞을 보지 못하는 예언자 테이레시아스는 죽은 자를 또 찔러 대는 것이 무슨 소용 있느냐고 크레온에게 훈계한다. 득이 되는 충고를 하면 받아들이는 것이 이득이 된다면서. 그리고 그대의 배에서 나온 이들 중 하나가 시신이 된다는 끔찍한 예언을 하고 사라진다.

동굴에 갇힌 안티고네는 올가미를 만들어 자살한다. 하이몬은 칼로 자신의 배를 찔러 죽으면서 그녀의 허리를 안고는 밖으로 나오라는 아버지의 얼굴에 침을 뱉는다. 크레온은 뒤늦게 자신의 잘못을 깨닫는다. 이 일의 책임은 인간 들 중 다른 누구에게 있지 않고 자신에게 있다고 통곡한다.

: 아리스토텔레스는 <시학>에서 비극을 이렇게 정의했다.

“완결되며 시작과 끝으로 구성되며 일정한 길이를 갖춘 고상하고 진지한 인간 행위의 모방이다. 비극의 목적은 공포와 연민의 정을 불러 일으켜 감정의 정화를 도모하는 것이다. 연민의 정을 불러일으키기 위해 비극의 주인공은 높은 신분이어야 하고 반드시 행복에서 불행으로 떨어져야 한다. 주인공이 몰락하는 것은 천박하거나 타락해서가 아니라 인간의 보편적인 결함과 과오에 기인해야 한다. 그 행위는 이기적 목적에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고 보다 높은 차원의 공동선을 위한 것이다.”

그렇다면 <안티고네>는 이 공식에 딱 맞아 떨어진다. 오늘날 고대극 가운데 가장 많이 공연되는 것이 바로 <안티고네>라고 한다. 그 만큼 관객들의 호응이 높다는 말이다.

대립구도가 단순하면서도 서로의 강한 주장이 한 치의 양보도 없이 팽팽히 맞서는 장면에서 관객들은 극심한 긴장과 함께 결말로 치닫는 카타르시스를 느낄 수 있기 때문이다.

앞서 안티고네를 극찬한 헤겔은 동등한 권리를 가진 두 원리의 충돌이 비극의 핵심이라고 <안티고네>를 진단했다. 그러나 오늘날에는 크레온이 주장한 국가의 명령보다는 안티고네의 불문법적 정당성이 주류라는 해석이 많다고 한다.( 강대진 옮김, 민음사, 2009 )

헤겔의 해석이 지나치게 국가주의로 흘렀다는 것이다. 이미 죽은 자를 혈육이 정의 차원에서 매장하는 것 까지 막는 것은 지나치다는 것이고 이는 오늘날의 보편적인 생각과도 맞아 떨어진다는 것. 그러나 국가주의를 강조하는 독재국가에서는 여전히 국가의 명령이 개인의 정을 앞서간다.

이런 점을 염두에 두고 다시 한 번 되돌아가서 읽어 보면 과연 그렇구나 하고 고개가 끄덕여 진다. <안티고네>는 등장인물들의 대사가 불꽃을 튀지만 그 것 말고도 간혹 나오는 합창이나 정립가 들의 내용들도 들어 볼만하다. 앞뒤를 설명해 주고 이해시키는 역할을 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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