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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4. 벌써 겨울의 냄새를 맡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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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4. 벌써 겨울의 냄새를 맡고 있다
  • 의약뉴스 이병구 기자
  • 승인 2018.10.19 09:51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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걷는 것은 아무래도 달리는 것보다는 여유가 있다. 힘도 덜 드는 것이 사실이다. 그래서 마음은 물론 몸도 한결 편안한 상태가 된다.

비록 오르막길이고 조심하지 않으면 다칠 염려가 있는 등산로라고 해도 말이다. 이는 어려운 것을 이겨낸 사람만이 느낄 수 있는 느긋함과 여유다.

이런 기분은 오래도록 간직하고 즐겨야 하기에 속으로 기쁜 마음이 끊어 올랐다. 가만히 있어도 몸에서 땀이 흘러 내렸던 지난여름의 더위에도 쉬지 않고 밖으로 나돌았던 결실을 이제 막 보고 있는 것이다.

노력한 만큼의 대가니, 흘린 땀의 보상이니 하는 이런 말들은 저주에 가까울 정도로 싫어 하지만 가만히 생각해 보면 틀린 말이 아니다.

나뭇잎 하나가 허공에 걸려 있다. 바람이 불자 잠시 흔들렸지만 떨어지지는 않는다. 거미줄에 걸린 낙엽은 거미의 먹이가 되지는 않겠지만 땅에 떨어지지 않고 매달려 있다고 불평하지 않는다.

나뭇잎에게 그 것은 이래도 좋고 저래도 좋아서가 아니라 어차피 나무에서 떨어진 이상 문제될 것이 없기 때문이다. 그리고 땅을 그리워한다면 지금 당장은 아니더라도 조만간 그렇게 될 것이니 서두를 필요가 없다.

거미줄이 아무리 강하고 질기다 한 듯 불어오는 찬바람이나 두꺼운 눈의 무게를 지탱할 수는 없기 때문이다. 벌써 겨울의 냄새를 맡은 나뭇잎이 아닌가.

흔들거리는 나뭇잎을 보고 있으니 모든 떨어지는 것이 반드시 땅에 닿지 않을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땅도 조금 쉬어야 한다. 그 무게를 깃털처럼 가벼운 나뭇잎 이라고 해도 더 올려놓지 않는 것은 다행한 일이다.

땅은 그런 점에서 거미에게 감사해야 한다. 땅을 밟으며 내가 이런 생각을 한 것은 죽은 것에도 생명이 있을 수 있다는 가공의 땅에 대한 생각을 했기 때문이다. 사람들은 간혹 가상의 공간을 그려 놓을 때가 있다.

그 곳은 실재 존재하지 않는 곳이기 때문에 마음대로 꾸며 놓고 가꿀 수 있으며 방해세력들은 은근히 제거해도 문제가 되지 않는 공간으로 꾸밀 수 있다. 가상의 공간에는 죽은 생물도 살아 있고 애초 생명이 없던 것에도 생명을 불어 넣을 수 있다. 내가 그린 그 곳은 땅도 살아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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