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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8. 귀가 정상적으로 작동하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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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8. 귀가 정상적으로 작동하기 시작했다
  • 의약뉴스 이병구 기자
  • 승인 2018.10.08 09: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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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리는 귀를 통해 들어왔다. 흘러내리던 코가 멈추자 귀가 정상적으로 작동하기 시작했다.

잘 듣기 위해 손으로 두 귀를 앞으로 모을 필요가 없었다. 귀이개를 이용해 쌓인 귀지를 파내지 않았는데도 소리는 선명하고 가열 차게 들려왔다.

코에 이어 귀의 감각기관이 제대로 작동하고 있다는 것을 실감한다. 살아 있는 것은 이런 것이다. 이럴 때는 누가 심하게 나를 헐뜯는다고 해도 귀가 가렵지 않다. 가려울 시간 대신 들려오는 풀벌레 소리에 신경 쓰기도 바쁘기 때문이다.

그 소리를 뒤로 하고 나는 내쳐 달리기 시작했다. 개천의 폭은 넓어지거나 작아지지 않고 한 동안 계속 그런 상태를 유지했다.

물은 흐르고 있었다. 흰 포말을 그리면서 소리를 내고 있었다. 하지만 하늘은 점차 작아졌다. 개천은 위를 드러내는데 인색했다.

보이는 부분이 사라지기 시작하자 낮인데도 어두 껌껌한 기운이 감돌았다. 한 아름이나 됨직한 수은 등이 여기저기 껴져 있었으나 어둠을 감당하기에는 역부족이었다.

길은 그대로였으나 빛이 줄어들자 폐쇄 공포증 같은 것이 몰려왔다. 그 것은 희박한 공기 때문에 더 심해졌고 어서 이 공간을 벗어나야 한다는 강박증으로 이어졌다.

그래서 속도를 더 높였다. 이미 이곳은 달리기 전에 걸으면서 답사는 한 적이 있었다. 한 2년 전 쯤에 걸어서 관악산 입구까지 갔다 온 적이 있었기 때문에 이 지점을 벗어나면 좀더 넓은 하늘이 기다리고 있다는 것을 알았다.

그 부분 까지 치고 나갈 작정이었다. 쉬지 않고 이 속도로 간다면 이십분 정도 후면 밀실 같은 공간을 벗어나 넓은 개활지에 다다를 것이다. 아마도 그쯤이면 신림을 지난 구간이 될 것이고 그러면 산으로 가는 방향을 찾아 밖으로 나올 수도 있을 것이다.

발에 힘이 붙었다. 종아리 근육이 위로 당겨졌고 허벅지가 팽팽하게 긴장하기 시작했다. 어림짐작으로 10분 이상을 뛰자 숨이 턱에 차 오르기 시작했다.

어떤 경우에도 페이스를 유지하자는 원칙에는 변함이 없었음으로 이 페이스를 그대로 유지하기로 했다. 해낼 수 있다는 자신감은 몸에 활력을 불어 넣었고 조만간 결승점이라고 할 만한 곳에 도달할 것이 예감이 아닌 확신으로 다가왔다.

그러니 멈추고 쉬어가기보다는 계속해서 달려 나가야 했다. 자전거의 무리들이 헤드라이트를 켜고 앞질러 가거나 역주행 하듯이 손살 같이 지나갔다.

무리지어 갈 때 그들은 소음이 거의 없었다. 홀로 갈 때 소리가 더 컸는데 그 것은 자전거가 내는 소리가 아니라 앞 브레이크 아래쪽에 매달린 스피커에서 나오는 소리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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