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은 나무를 보는 것은 로드 킬을 당한 동물을 보는 것만큼이나 애처롭다.
푸른 이파리를 달고 있었던 것이 어느 새 물기 빠진 갈색으로 변할 때 봐서는 안 될 것을 본 것처럼 고개를 돌렸다. 피가 굳은채 말라가고 있는 도로위의 동물은 길을 가로 질러 숲으로 갈 수 없다.
자라서 그늘을 만들어 주고 죽은 도시에 생명을 넣어 주지 못한다. 먹이를 구하던 어미는 기다리는 새끼를 보지도 아무런 처세술도 가르쳐 주지 못하고 사라졌다.
미세먼지를 인간대신 먹어 줄 수도 없는 나무는 겨울의 찬바람이 싫었던 것일까. 그럴 줄 알면서도 고라니는 불빛을 따라 도로에 내려섰다. 숲은 더이상 그의 울음 소리를 들을 수 없다.
나무도 그렇고 동물도 그렇고 그들은 있던 자리에서 사라졌다. 살아 있던 것들의 고귀함은 다른 것들이 차지 했다. 하늘 향해 언제나 같은 자리에 서 있는 나무를 쓰러져서 땅에 들어누웠다. 당당했던 걸음 걸이 역시 모로 길게 누었다.
모든 살아 있는 것들에 안녕이라고 고하는 그런 여름날이었다. 죽은 나무는 천년을 사는 주목으로 다시 태어나고 로드킬의 고라니는 인간의 손길이 없는 원시림의 꽃사슴으로 환생해 못다한 꿈을 이뤄 보라.
숨을 헐떡이면서 그런 중얼 거림을 하는 것은 그들도 인간처럼 고귀한 존재들이기 때문이다.
그런 잡다한 생각을 하는 와중에도 두 발은 부지런히 움직여 걷기를 멈추지 않았다. 다시 가던 길을 간다. 그런데 앞 쪽에서 춤추는 러너가 보였다.
멀리서 봐도 그 였다. 모자를 쓰고 고개를 숙이고 연신 온 몸을 부는 바람에 몸을 맡긴 사시나무처럼 흔들어 댔다. 왼쪽 어깨에 맨 가방과 오른 손에 든 부채도 여전했다.
그가 이곳에 온 것은 처음이었다. 아니 그 전에 왔는지도 모른다. 내가 그를 본 것은 안양천 작은 다리를 건너 목동 쪽 방향이었다. 언제나 그는 그 쪽에서 흔들거렸다. 그런데 이번에는 도림천 쪽에서 온 몸을 들썩이면서 내려오고 있다. 그의 활동영역이 넓어졌나.
그와 얼굴이 마주 스쳐 가는 짤라 그가 고개를 들었다. 깊숙이 눌러쓴 모자 때문에 이마 위는 보이지 않았지만 두 눈과 코와 입과 턱의 윤곽이 드러났다. 눈은 모자의 그늘 때문에 보였어도 판단하기 어려웠다.
그러나 이마가 튀어나오고 광대뼈 쪽이 나오지 않고 들어갔으며 입은 길지 않고 짧았고 얇은 것은 구별이 가능했다. 턱도 아래쪽으로 뾰족했다. 이런 기억은 평소 그 사람의 생김새가 어떻까하는 궁금증이 있었기 때문에 가능했다.
그가 가고 나서 뒤돌아 봤을 때 뒷모습은 다른 사람과 다를 게 없었다. 좌우로 출렁대는 몸의 윤곽만이 뚜렷했다. 차라리 보지 말았으면. 왜 그는 나와 마주치는 그 자리에서 하필 숙인 고개를 들었을까.
봤다고 해서 나쁠 것은 없지만 보지 않았다면 늘 그의 생김새를 궁금해 했을 텐데. 그런 호기심이 사라졌으니 이제 그를 만나도 무덤덤할지 몰랐다. 마음에 아무 느낌이 없다면 그를 만나는 것은 이제 더 이상 흥미를 끌지 못한다.
오늘은 여러 모로 어제와 같지 않은 날이었다. 달리다가 처음으로 걸었으며 죽은 나무와 동물에 대한 애도와 춤추는 사람의 얼굴까지 봤으니 한꺼번에 여러 일이 새롭게 일어난 것이 분명했다.
이런 날은 복권을 사야 하나. 꿈이 있다면 복권에 한 번 당첨돼 보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