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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3. 새로운 것은 보이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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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3. 새로운 것은 보이지 않았다
  • 의약뉴스 이병구 기자
  • 승인 2018.08.31 09:34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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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개를 더 숙였어야 했다. 그래서 접힌 신경을 늘리거나 폈어야 했다. 그런데 그만 아무 생각 없이 뒤로 목을 젖히자 전기에 감전된 것처럼 순간적으로 왼쪽 목을 타고 짧은 전류가 강하게 내려왔다.

그 것은 팔뚝과 팔꿈치를 거쳐 손끝에 와서야 멈췄다. 접히는 팔의 관절을 지나 손목에 이를 때는 몸이 들썩거렸다. 기왕의 땀에 식은땀이 더해지자 몸은 아래로 쭉 쳐졌다.

문제없다는 듯이 어깨를 위로 들썩거릴 힘도 없었다. 이제 달리는 것을 포기해야 한다. 목적지가 다 왔는데 쉬어가야지 하는 마음보다는 조금만 더 가면 피니시 라인인데 하는 절망감이 더 컸다.

달리기를 시작한 이후로 원래 정해 놓은 돌다리 까지 도달하지 못하고 중간에서 쉬는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쉰다면 말이다. 아직은 쉬지 않고 있다. 느려도 두 발 중의 하나는 여전히 땅에 대고 있기 때문이다.

조금만 더 가보자고 마음을 다 잡는다. 그런데 몸이 그 것도 제일 중요한 발이 말을 듣지 않는다. 땅에서 잘 떨어지지 않는다. 댄 발은 바로 올라가고 올라간 발은 급하게 땅에 대야 한다.

하지만 그런 반복적인 연속 동작에 제동이 걸린 것이다. 멈추자, 그래서 멈췄다. 그러나 선 것은 아니다. 걸었다. 그러자 몸이 조금 편해졌다.

그렇다고 진작 쉬지 못할 것을 탓하는 것은 아니다. 아직도 가지 못한 길에 대한 미련이 남아 있다. 걸어가자 맺혔던 땀방울이 아래로 흘러내리는 것이 적나라하게 느껴졌다.

이마에서 볼을 타고 목으로 내려갔다. 하필 왼쪽 목이었다. 물방울 하나에도 목의 신경은 반응했다.

그 것이 정확히 눌린 신경을 자극했는지 아까 왔던 짧지만 강한 충격이 힘줄이 솟은 목을 관통했다. 한 번 더 몸이 위쪽으로 움찔 거렸다. 이번에는 아무렇지도 않게 두 어깨를 위로 들어 올렸다가 내렸다.

걷는 것은 달릴 때 못하는 이런 것을 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그래서 한 번 더 양 어깨를 위로 들썩였다가 자연스럽게 아래로 내렸다. 두 번 째 땀방울이 다시 내렸으나 이번에는 전기 통증은 오지 않았다.

눌린 신경은 그 만큼 예민했다. 첫 번째 물방울에 반응했으나 두 번째는 이미 식상해져 있었기 때문이다. 걸어가자 달릴 때 보이지 않았던 새로운 것은 보이지 않았다.

그저 그런 풍경만이 스쳐 지나갔다. 가뭄에 타버린 지난해 급하게 심었던 화살나무의 살 끝은 무뎌져 있었다. 누런 잎을 내밀고 이것은 단풍이 아니고 죽은 잎이라고 말하고 있었다.

가뭄과 살인더위는 뿌리 내리지 못한 나무들을 여지없이 공격했다. 그들은 깊지 않은 뿌리 때문에 힘을 키우지 못하고 죽어 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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