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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90. 장군의 수염(196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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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행 2018.08.26  11:18: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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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탄난로를 때던 시절에는 간혹 가스 사고가 일어나곤 했다. 실수로 문제가 되기도 했고 일부러 그렇게 되는 수도 있었다.

지난 일이지만 안타까운 사연들이다. 이성구 감독의 <장군의 수염> 만해도 그렇다. 소설가 지망생 철훈( 신성일) 도 방안에 있는 그 난로가 화근 이었다. 난로의 뚜껑이 얼려 있었고 그는 그것 때문에 그가 구상했던 소설의 완성을 보지 못했다.

그가 죽자 사글세방의 주인이 먼저 경찰의 조사를 받았다. 셋방 준 죄 밖에 없다는 모녀의 항변은 그럴 듯하게 들렸다. 어디선가 살고 있던 엄마와 누이도 조사를 받았다.

애가 어릴 때 제대로 놀지도 못하고 외톨이였다는 사실을 알았을 뿐이다. 양반의 자제가 상놈들과 놀아서는 안 된다는 아버지의 호통 때문이었다. 몰락한 지주 집안에 형이 좌익 활동을 한 것은 이 사건과 별개였다.

마지막으로 그와 동거했던 신혜(윤정희)가 대상에 올랐다.

수사관들은 앞선 두 사람에게서 단서가 없자 신혜에서 희망을 걸었다. 그가 자살하지 않고 죽었다면 살인범에 대한 단서를 그녀에게서 얻을 수 있으리라는 기대감 때문에 수사는 집요하고 치밀하게 진행됐다.

수사관들은 따로 활동하기도 하고 서로 함께 하기도 하면서 사건의 실체에 접근해 간다.

그러다가 철훈이 어떤 인물이었는지 그의 인생을 알아가는 과정이 영화의 큰 줄거리가 되겠다.

사실 어떤 면에서 이 영화는 살인사건에 대한 추격이면서 한 남자와 그와 엮인 신혜에 대한 인생이야기라고 봐도 무방하다. 경찰이 추리하는 방향으로 카메라는 과거와 현재와 미래를 넘나든다.

철훈은 시쳇말로 하면 사회 부적응 자다. 남들이 하는 대로 따라하면 되는데 그런 것을 거부한다.

장군이 수염이 달면 부하들이 다 단다. 그 장군은 나라를 구한 존경하는 개선장군이었으므로 은행원이나 대학교수 직공이나 맞벌이 노동자도 수염을 달고 독립을 만끽한다. 그런데 나만 거부한다. 획일화 된 사회에 반항한다고 할 수도 있고 그렇게 사는 것이 인생인데 물정 모르는 인간으로 격하되기도 한다.

철훈은 그런 인간이다.

소설가 지망생이 되기 전에는 신문사의 사진기자였다. 그런데 유학에서 돌아온 유명한 박사 가족을 인터뷰 하는 자리에서 존 등으로 불리는 그 집 자식들을 펜 기자가 하지 말라고 그렇게 눈치를 주는데도 개에 비유한다.

머릿속이 학식으로 가득 찬 그 박사는 노발대발한다. 분위기는 엉망진창이 된다. 그는 이제 직업을 잃고 아니 박차고 나온 실직자 신세다. 소설이나 써보자고 작정을 한다. 머릿속에는 그 쪽 지망생들이 다 그렇듯이 노벨상을 받고도 남을 근사한 주제가 넘쳐난다.

철훈이 구상하는 대목은 앞서 말한 대로 장군의 수염에 관한 것이다. 어디 한 번 써보시오. 소설은 입이 아닌 손으로 쓰는 거니까.

기성작가는 이것도 저것도 안 될 때 젊은이들이 흔히 소설이나 써 보자고 한다는 말을 남기고 총총히 인적이 드문 거리로 사라진다.

날 잡아 가라, 수염 달지 않을 자유가 이 나라에는 있다고 철훈은 소리쳐 보지만 메아리 없는 헛소리에 불과하다. 그는 획일주의를 거부한 자유주의자이면서 독재자들이 싫어나는 사회부적응자임에 틀림없다.

경찰은 신혜를 심문한 결과, 그녀가 철훈이 타살됐다면 유력한 용의자로 점 찍는다. 그가 죽을 그 시각 너는 어디 있었는지, 신혜의 알리바이를 추궁한다. 심야음악을 들었다고 심드렁하게 대답하는 신혜의 왼손에 담배가 들려있다.

그녀는 제자리 앉아 있는 것이 아니라 방안을 이리저리 돌아다니면서 수사관의 시선을 흐트러트리기도 하고 침대에 한 발을 올려놓고 스타킹을 신는 자세를 취하기도 한다. ( 이런 세련된 장면이 처음과 끝까지 계속된다. 마치 웰 메이드 서구 영화를 보는 듯 한 착각에 빠져 든다. 착각이 아니라 실제로 그렇다. 등의 지퍼를 경찰에게 올려 달라고 요구할 때는 신혜가 팜브파탈의 여주인공으로 보인다. 그녀가 하는 동작이나 대사는 아주 자연스럽다. 묻고 대답하는 것이 아귀가 착착 맞아 대단한 시나리오라는 것을 한 눈에 알아챈다. 찾아보니 이어령 원작에 김승옥이 각색했다고 한다.)

이런 장면을 보면 사건이 안 풀려도 상관없다는 생각이 저절로 든다. 사건이라는 것은 풀릴 수도 있고 그 반대일 수도 있다. 사건의 결과보다는 풀어가는 과정과 거기서 등장하는 인물과 죽은 자의 관계를 더듬어 보는 것이 더 흥미롭기 때문이다.

이제 본격적으로 철훈과 신혜의 관계가 조명된다. 원래 낭만적인 철훈과 원래 끼가 있는 신혜가 자주 만나다 보면 같이 살아 보자고 누군가 먼저 제의하는 것은 인지상정이다.

여기서 누가 먼저 그런 말을 했느냐는 중요하지 않다. 하고 나서 들은 상대자가 오케이하면 그 뿐이다. 둘이 사는 사글세방은 예술가 지망생의 방답게 여기저기 조각품들이 있고 벽에는 아름다운 유화가 가득하다. ( 저런 원 룸 하나 있었으면. 창문까지 달린.)

둘은 주거니 받거니 실없는 농담 따먹기로 낮밤을 새는 줄도 모른다. 그 중에서 압권을 고해놀이다. 과거의 잘못을 신부에게 고해바치듯이 철훈은 신혜에게 신혜는 철훈에게 고백한다.

이 때 화면은 현재나 미래가 아닌 과거로 돌아가기 마련이다. 고백의 그 순간에 서로는 더 깊은 애정을 확인하고 그 것을 확인 한 후에는 대개의 연인들이 그러하듯이 자연스런 뒷 수순으로 옮겨간다.

빛에 쪼들리면 처녀라고 옷을 벗게 만든다는 누드모델에게 자신의 분신과도 같은 카메라를 거져 준 고해는 신혜를 놀라게 만든다. 이것은 질투가 아닌 뭐라고 표현하기 힘든 묘한 것이다.

스무스 하게 장면이 바뀌면 수사관은 누드모델에게 철훈의 죽음을 알리면서 무언가 캐낼 수 있는 단서가 있을지 기회를 엿본다. 그녀는 말한다. 누구나 죽은 사람은 좋은 사람으로 기억된다면서 그는 순진한 사람이었다고 회고 한다.

사건은 자살 쪽으로 급격히 쏠리지만 손톱 끝에 낀 때 때문에 타살설도 여전히 살아 있다. 죽는 사람은 그 순간까지도 잘 보이기 위해 깨끗하게 단장하는데 철훈은 그렇지 않기 때문이다.

한편 신혜에게도 말 못할 사정이 있다. 무려 5년간 누워 있는 아버지에 관한 것이다. 신혜가 아니면 누군가가 현재는 필요 없는 어차피 죽어야할 그를 죽여 줘야 했다. 철훈은 그를 죽이고 자신도 죽였는가.

관객들이 이런 질문을 스스로 할 즈음 오토바이 두 대가 거친 들판으로 가로 질러 적당한 장소에서 멎는다. ( 아주 멋진 장면이다. 화면이 바뀌면서 다시 한 가지 물어 보자는 경찰의 취조가 시작된다. 오토바이는 경찰이 타고 온 사이카 라는 것이 증명된다.)

신혜는 실토한다. 카바레에서 뭇 남성의 가슴에 기대 춤추다 경찰에 적발됐다. ( 춤추는 것도 죄가 되는 세상이었다. 어떤 사람들은 그런 세상을 그리워하면서 독재로 돌아가자고 외치기도 한다.)

다 들 도망가다가 잡혀가는데 트럭의 뒷 칸에 그녀도 있다. 사진을 찍던 철훈에게 벽보를 찢어 급하게 쓴 글을 그에게 전해 주는 신혜. 철훈은 주소를 보고 그녀의 누워 있는 아버지를 찾아 간다.

그 일로 철훈과 신혜가 만나고 만남이 거듭되면서 같이 살게 된다는 스토리. 그러다가 헤어졌고 그런 다음 수염을 기르지 않는 최후의 인간, 철훈이 죽었다는 이야기. 그래서 연탄난로 뚜껑은 누가 열었다는 말인가.

어쨌든 영화는 끝나가고 경찰은 결론을 내린다. 자살인지 타살인지 자살이라면 그 이유는 무엇이고 타살이라면 누가 왜 죽였는지 눈치 빠른 관객이 알게끔 넌지시 중얼 거린다.

국가: 한국

감독: 이성구

출연: 윤정희, 신성일

평점:

: 시나리오가 기가 막히다, 는 이야기는 앞서 했다. 그 것을 관객에게 전해주는 윤정희는 머리가 좋은지 대사하나 틀리지 않고 깔끔한 목소리로 가독성 있게 전해준다.

그 와중에 표정을 적절히 섞어 내는데 과연 대배우가 따로 없다. 그녀의 상대 남, 신성일이 왜소해 보일 정도다. 그러니 수사관들이 아무리 윽박지르고 짜임새 있게 조여와도 그녀의 한 마디에 무안을 당하기 일쑤다.

더구나 피난길에 일단의 군인들에게 끌려가 몹쓸 짓을 당하기까지 하고 살아남은 그녀가 아닌가. 내장 냄새나는 남자들에게 지친 신해의 불안한 영혼도 철훈의 그 것과 견주어 뒤질게 없다.

이성구 감독은 윤정희를 통해 영화의 아름다움을 한껏 고조 시켰다. 시나리오 좋고 주인공 연기 좋으니 관객의 호응이 뒤따르는 것은 당연한 이치다. 그런데 제작자는 실패할 것을 미리 염려하면서도 이런 작품은 있어야 한다는 신념으로 개봉을 강행했다는 후문이다.

이 영화는 당시 10만 관객을 동원하는 성공을 거두었다고 한다. 애니메이션이 등장하고 작업하기 어려운 시점이 넘나들고 제작비를 잡아먹는 공간이동을 자주 하면서 한국영화사에 남을 걸작을 관객들이 알아 본 것이다.

현대인의 고독을 표현했다고 하는데 그 말이 틀린 것은 아니다. 암실에 있을 때만 진정한 자유를 느꼈던 고독을 노예처럼 부릴 줄 알았던 남자의 마지막도 고독했을까, 하는 자문을 해보는 것은 현대인의 고독이라는 것이 그렇게 단순한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여자마저 떠났을 때, 떠날 때 잡지도 않고 가방을 들고 떠나는 뒷모습만 바라보고 있을 때, 남자의 고독은 더 이상 고독일 수가 없다.

경찰의 질문에 대답하면서 한 때 사랑해서 같이 놀아 줬던 그 남자를 조금 깔보는 듯 한 윤여정의 조소어린 눈빛, 고해놀이 같은 이런 같잖은 일을 그 만 끝내자고 절규 할 때 보이는 그녀의 빛나는 눈빛은 요즘 할 것이 없어 배우나 해 볼까 하는 젊은이들이 있다면 먼저 배워야 할 것은 그녀의 그런 태도라는 것이라고 말해주고 싶다.

빼먹어서는 안 되는 장면 둘: 1. 철원의 아버지가 토지개혁으로 땅을 다 빼앗겼다고 울부짖는다. 2. 부상당한 빨갱이를 내놓으라고 교회 목사를 잡아다가 고문을 심하게 한다. 심지어 아이들까지 그렇게 한다. (반공영화라고 불러도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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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약뉴스 이병구 기자  |  bgusp@newsm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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