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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7. 실제 크기와 아주 비슷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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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7. 실제 크기와 아주 비슷했다
  • 의약뉴스 이병구 기자
  • 승인 2018.08.22 17: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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큰 다리 밑까지 왔다. 유턴 지점이다. 막 몸을 돌리려는데 진한 담배연기가 들어왔다. 다리아래서 러닝셔츠를 가슴 쪽으로 올린 나이 들어 보이는 두 남자가 피워대는 담배 때문이었다.

두 사람 중 한 사람은 머리 뒤가 훤했고 나머지 한 사람은 뒤에서 봐도 배가 불룩 뛰어 나왔다. 이곳은 금연구역이었으나 그 분들은 그런 것은 개의치 않았고 누구도 그렇게 해서는 안 된다고 말릴지 않았다.

바람은 북풍이어서 고스란히 돌아오는 방향에서 코를 자극했다. 생각 같아서는 속력을 내서 그 지점을 신속히 통고하고 싶었으나 몸이 말을 듣지 않아 할 수 없이 저속으로 화생방 구간을 벗어났다.

길옆으로 비어 있는 터는 풀이  베어져서 빈 공간으로 남았는데 가을에 피는 꽃을 보기 위해 꽃씨가 뿌려져 있었다. 길가로 나온 버드나무는 가지치기를 해서 멀리 강 쪽으로 물어나 있었는데 그 것이 아쉬웠다.

휘영청 늘어진 가지를 피하는 묘미가 사라졌기 때문이다. 사람들은 좀 불편한 것은 참지 못한다. 나뭇가지 하나 조차도 베어내야 직성이 풀리는 것이다.

좀 느리게 가면 어떤가, 이것은 느리게 가는 나를 위한 변명이 아니었다. 세상이 빠르기 보다는 아주 천천히 흘러갔으면 하는 생각은 오래 전부터 해왔다.

방향을 바꾸었으니 처음부터 새로 시작하는 기분이 들었다. 등 뒤로 시원한 바람이 불어 왔다. 나는 필라델피아 미술관 계단을 빠른 속도로 올라와 아래를 보면서 두 팔을 하늘로 치켜들고 몸을 흔드는 록키처럼 두 팔을 위로 들었다.

그러자 록키가 느꼈을 시원한 바람이 겨드랑이를 타고 들어 왔는데 그 것은 심장 깊숙한 곳까지 도달했는지 기분이 매우 상쾌했다.

그런 자세로 한 동안 더 달려 나갔더니 이제는 팔을 내리고 싶어졌다. 들어 올린 팔이 아팠기 때문이다. 올 때와는 반대로 이번에는 좌측으로 몸을 틀었다.

그러자 그림자가 세 개 따라오는 대신 하나만이 뚜렷하게 각인됐다. 온전한 상체의 모습이 검은 모습으로 보였는데 실제 크기와 아주 비슷하고 찍힌 모습도 그래서 깜짝 놀랐다. 바닥에 또 하나의 내가 달리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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