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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3. <노인과 바다> (19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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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행 2018.08.15  08:19: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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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다라면 할 말이 조금 있다. 어려서 바다와 살았기 때문이다.

살았다는 표현에 의구심이 있다면 그 것을 해소하기 위해 어린 시절 고향이 바다와 500미터 남짓 거리에 있었다는 것을 밝히고자 한다.

그러니 저 바다에서 살았거나 그 바다에서 놀았다고 해도 과장됨이 없다. 실제로 그랬으니까. 주로 낚시를 하면서 그랬다는 것까지 덤으로 알려둔다.

대상어는 사전에 정해지지 않았다. 물려주기만 하면 무엇이든 잡았다. 물지 않으면 대를 이리 저리 휘두르거나 위 아래로 들썩 거리면서 그렇게 하도록 했다.

주로 망둥이나 작은 돔, 능성어의 어린 녀석들이 올라왔다. 간혹 바다장어나 우럭이나 넙치도 있었으나 그런 행운의 날은 많 치 않았다.

큰 놈이 걸려 들 때면 끝이 뭉뚝한 대나무 낚시도 확 휘거나 팽팽하게 줄을 당기는 느낌이 강하게 왔다. 줄이 꺾이는 각도를 통해서도 놈의 종류와 크기를 짐작할 수 있었다. 아주 오래전 어린 시절의 일이다.

그 후 커서도 그 시절의 추억을 못 이겨 섬 여행이라는 명목으로 낚싯대를 챙기곤 했다. 그러나 ‘씨름’ 할 정도로 아직까지 큰 녀석을 잡아 보지는 못했다.

남들이 월척 급이라고 하는 녀석 서너 마리가 내 낚시 인생의 성과라고 해야겠다. 장황한 사설을 늘어놓는 것은 이 번호 고전읽기가 바다와 낚시와 연관이 있기 때문이다.

바로 헤밍웨이의 <노인과 바다>가 그 것이다. 헤밍웨이가 살았던 바다는 내가 살았던 바다와는 달랐다.

서해의 작은 포구가 아니라 멕시코 만의 망망대해가 그가 놀았던 터전이었다.

한 때 노련한 어부였던 그는 이제 늙었다. 야위고 수척했으며 뺨은 갈색 반점이 차지했고 목덜미에는 깊은 주름이 잡혀 있었다.

세월의 상처를 피하지 못한 늙은 어부의 신세였다.

하지만 다른 신체는 모두 노인의 것이었지만 눈만은 바다 색깔을 여전히 유지하고 있었다. 기운차고 패배를 모르는 의욕이 노인의 양 어깨를 단단히 감싸고 있었다.

무려 84일 간이나 제대로 된 고기를 한 마리도 낚지 못했으나 85라는 숫자는 운과 연관이 깊었다. (그렇다고 생각했다.) 빈 배로 돌아오는 대신 월척의 꿈이, 산티아고 노인에게 이루어지는 기회가 마침내 찾아 온 것이다.

이 순간 부모의 강권에 의해 노인을 떠나 다른 배를 타는 소년 마놀린이 함께 있었더라면 노인은 무척 행복했을 것이다.

아들처럼 의지하던 소년이 다른 배를 타자 노인은 너무 쓸쓸했다.( 이런 표현 꼭 써야 하나. 쓰면 쓸수록 더 외롭고 적적해지는.) 혼자 남은 노인은 그래도 바다로 향했다. 어부가 해야 할 일은 바다로 나가 고기를 잡는 일이기 때문이다.

직업 정신에 투철한 자존심 센 노인이 쪽배를 몰고 나갔을 때 미풍이 불었고 하늘은 맑았으며 조류는 배의 방향으로 제대로 흘러갔다.

기분이 좋은 노인은 오늘쯤은 한 마리 걸려 들 것 같은 예감이 들었다. 고양이처럼 장난을 치며 해변가를 돌아다니는 새끼사자 꿈도 꾸었다. 군함새 한 마리가 날치 떼 위에서 선회비행을 하고 있다. 징조가 좋다.

노인의 기대치는 한껏 부풀어 올랐다. 그래서 더 멀리, 더 멀리 나갔다. 해변의 섬 그림자가 보이지 않고 저녁이 되어도 아바나의 불빛을 찾아 볼 수 없는 멀고 먼 바다로 노인이 도달 했을 때 해는 지고 이미 어두운 뒤였다.

다음날 드디어 청새치가 걸려들었다. 녀석을 잡기 위해 벌인 사투를 일일이 열거 할 수는 없다. 등에 줄을 감고 버티는 노인의 모습을 상상해 보라. 손과 이마는 찢어져 피까지 흐르고 태양은 이글거린다.

아,( 이 쯤해서 감탄사 하나는 넣어야 한다.) 늙은 노인은 이제 편히 쉬어야할 나이 이지만 전생에 무슨 죄를 지었 길래 이리도 힘든 시간을 보내야 한단 말인가.

3일을 꼬박 씨름해 잡았으나 배로 끌어 올릴 여력은 없다. 들어올리기에는 너무 큰 녀석이어서 되레 녀석이 배를 끌고 다녔다. 감당할 수 없는 녀석을 잡은 것이다.

고기는 뱃전을 빙빙 돌다 숨을 쉬기 위해 물 밖으로 튀어 올랐다. 부레에 공기가 가득 차 죽음을 재촉하는 행동이었다.

녀석이 노인 앞에 모습을 드러냈을 때 노인은 자신이 잡은 고기가 커도 너무 커서 꿈인지 현실인지 헷갈렸다. 준비된 작살을 살 깊숙이 꼽아 넣었을 때 노인은 마침내 그가 그토록 원하던 거대한 고기를 잡는데 성공했다는 것을 알았다.

작가의 표현에 의하면 길이는 5.5미터가 넘고 무게는 700킬로 그람에 육박했다.

고기를 배에 묶고 나서 보니 배보다 고기의 길이가 더 길어 고물 쪽에 녀석의 꼬리가 길게 드러날 정도였다. 힘든 사투였다.

흰 거북이 알을 먹고 만세기 몇 점, 그리고 물 몇 방울로 버티며 여러 날 사투를 벌인 노인은 이제 죽을 지경이다. (그가 좋아하는 타자 조 디마지오가 출연하는 양키스 경기를 중계방송해 줄 라디오라도 있었으면.)

하지만 녀석을 팔아 돈을 벌 생각을 하자 노인의 얼굴에 기분 좋은 빛이 떠올랐다. (아니다. 그 것 때문이 아니라 자존심을 세웠고 어부의 몫을 해냈기 때문이었다.) 그러니 여기까지.

잡은 고기를 매달고 항구로 돌아오는 과정은 고기와 사투했던 것에 비할 바가 못 됐다. 상어의 공격을 받은 고기는 뼈만 앙상하게 남은 채로 돌아왔다.

상어를 여러 마리 죽이고 혼신의 힘을 기울여 지키려던 고기는 화석박물관에 있는 거대심해어처럼 뼈만 남아서 그 크기를 보여줄 뿐이었다.

겨우 돌아온 노인은 집에 돌아와 쓰러져 잠을 잤다. 소년이 찾아와 커피와 먹을 것을 주었다. 사람들은 노인의 배에 매달린 거대한 고기를 보았고 일부 관광객들은 저 것이 무엇이냐고 묻기도 했다.

: <노인과 바다>는 분량이 아주 짧다. 다 읽었는데 읽은 만큼의 분량이 남아 무슨 일인가 했다. 보니 해설서였다.

번역한( 민음사, 2012) 김욱동 교수는 친절하게도 이 책의 내용은 물론 헤밍웨이와 그가 쓴 다른 걸작들에 대해서도 설명하고 있다. 설명서도 본문만큼이나 쉬워 읽는데 무리가 없다.

다 읽고 나자 쿠바가 조금 더 가깝게 다가왔다. 그래서 한 번쯤 가봐야 하지 않겠나 하는 막연한 생각을 했다.

체게바라의 평전을 읽을 때도 그랬다. 그가 모터보트로 상륙한 지점을 걸으면서 삶과 죽음에 초연했던 한 인간의 여정을 따라가 보는 것도 나쁘지 않겠다는 생각을 했던 것이다.

지금은 또 생각이 바뀌었다. 석양이 질 때 럼 주를 홀짝이면서 해변을 걷고 먼동이 터 올 때 진한 커피를 마시면서 늙은 노인과 소년을 마음 속 깊이 그려 보고 싶었다.

그 옆으로 올드 카 한 대 정도 지나가 주고 누군가 재즈라도 한 곡 연주해 준다면 찡그리는 대신 가볍게 손을 들어 반가움을 나눠 주고 싶다.

한편 노인이 살아서, 그것도 거대한 물고기를 잡아 돌아오는 장면은 전쟁에서 나라를 구하고 금의환향하는 왕의 귀환에 못지않은 거대한 울림으로 다가온다.

자줏빛 가슴지느러미를 날개처럼 활짝 펴고 기다랗고 꼿꼿한 꼬리를 세운 체 어두운 물속을 헤엄치고 나가던 저 당당한 모습, 위엄. 과연 어떤 인간이 저런 고기를 먹을 수 있는 자격이 있단 말인가.

헤밍웨이에게 고기는 단지 낚는 대상이거나 유희의 종류가 아니었다. 먹고 살기 위한 수단이었기에 고기를 대하는 태도가 무척 인상 깊었다.

형제라는 표현을 쓰기도 하고 녀석이 겪는 고통에 대해서도 이야기 했다. 살아서 망망대해를 누려야 하는데 자신에게 잡혀 죽은 녀석에게 미안함과 고마움을 표했다.

인간이, 인간이 아닌 다른 그 무엇에게라도 대하는 태도는 이러해야 한다면, 좀 더 맛을 내기 위해 잡은 즉시 비스듬히 목을 찔러 피를 뺄 때도, 회를 치기 위해 살아 있는 것의 가슴에 벼린 칼을 들이 밀 때도 그러해야겠다.

그 것이 고기에 대한 최소한의 예의가 아니겠느냐고. 이런 사실을 좀 더 일찍 알았더라면, 유치원 때 알았더라면 좋았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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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약뉴스 이병구 기자  |  bgusp@newsm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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