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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0. <고도를 기다리며> (19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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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행 2018.07.04  08:43: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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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구냐에 따라 기다릴 때의 기분이 달라진다. 사랑하는 사람이라면 그 전날부터 행복할 것이고 그렇지 않은 사람이라면 약속한 그 순간부터 지겨울 수 있다.

기다리는 것은 언제나 대상이 있고 이유가 명확하다. 그렇지 않다면 그럴 필요가 없다. 그런데 사무엘 베케트의 <고도를 기다리며>는 대상도 이유도 불분명하다.

고도가 사람이라는 것은 알겠지만( 혹은 신인지도 모른다.) 언제 오는지, 어디서 만나는지 뚜렷한 것이 없다. 시간과 장소가 확실치 않는데도 기다리는 것은 속된 말로 미친짓이다.

그럼에도 무작정 기다린다. 그 기간이 무려 50년 동안이다. 이쯤 되면 무던하다거나 바보스럽다거나 하는 말로는 설명될 수 없다.

기다려 본 사람이라면 기다리는 것이 얼마나 지겨운지 알고 있다. 그런데도 수 십 년 간 기다려 왔다는 것은 말로는 설명할 수 없는 모순이다. 아무리 작품속이라고는 하지만 이런 설정은 믿기 어렵고 리얼리티라는 측면에서 보면 부조리의 극치가 아닐 수 없다.

기다리는 사람들이 누구인지, 그들이 얼마나 허무맹랑한지 짐작이 간다. 이런 사람들이니 그들이 기다리면서 하는 수작은 제멋대로 일수밖에 없다.

디디로 불리는 블라드미르와 그와 한패인 에스트라공(애칭: 고고)은 기다린 것 말고는 할 일이 없으니 입으로만 나불댈 뿐이다.

그 대화라는 것도 심오하거나 들어줄 만한 가치가 있는 것도 아니다. 그저 시정잡배들이 하는 떠버리 수준이다. 대화만큼이나 공간도 황량하다. 나무 한 그루가 서 있는 시골길이니 근사한 무대장치도 필요 없다. 기다리다 지친 에스트라공은 말한다.

‘자, 가자.’

그러면 블라디미르는 이렇게 대꾸한다.

‘갈 수 없어.’

‘왜?’

‘고도를 기다려야지.’

그러면 고고는 주저앉는다. 참 그렇지! 라면서 마치 중요한 것을 잊었던 것을 상기한 것처럼. 기다리는 곳이 나무 한 그루가 있는 이 곳인지 아닌지는 중요하지 않다. 그 나무가 버드나무인지, 관목인지, 교목인지도 상관없다.

그저 오늘 안 오면 내일이나 모레는 오겠지 하고 기다리는 것뿐이다. 두 사람이 가지고 있는 것은 시간뿐이다. 오지 않는 고도를 왜 기다리냐고 묻지 말라. 오늘이 토요일인지 일요일인지 알 필요도 없는 것과 같은 이치다.

기다리는 것이 그들의 평생 직업이라고 할까. 얼마나 심심하면 나무에 목맬 생각을 할까. 그러던 어느 날 무대 뒤에서 채찍을 후려치면서 포조가 등장한다.

얻어맞는 럭키는 쓰러진다. 에스트라공은 포조가 고도가 아닌지 의심하지만 포조는 고도가 아니고 포조라고 항변하고 블라디미르도 포조가 맞다고 맞장구 친다. 그러니 새롭게 등장한 인물은 그들이 기다리던 고도가 아닌 것만은 분명하다.

무와 당근만 먹던 그들은 포조가 먹다 버린 닭 뼈다귀를 주워 먹는다. 럭키는 쉬는 시간에도 짐을 내려놓지 않는 이상한 행동을 한다. 포조는 럭키의 이런 행동이 버림받지 않기 위해, 자신에게 감동을 주기 위한 계산된 수작이라고 대수롭지 않게 말한다.

끈으로 묶인 럭키는 포조의 말을 신처럼 따른다. 그래도 더러운 놈, 돼지 같은 놈이라는 욕을 먹고 채찍으로 얻어터지기 일쑤다.

인간을 이런 식으로 다루면서도 포조는 쫒아 버리기 전에 저런 놈은 죽여 버려야 한다고 악담을 퍼붓기 까지 한다.

노예 럭키가 할 수 있는 일은 울어 버리는 것뿐이다. 디디와 고고가 고도를 기다리는 것 말고는 할 수 있는 것이 없는 것처럼. 하지만 포조는 럭키를 통해 모든 것을 배웠다. 심지어 생각하는 것조차도. 그런데 무슨 연유에서인지 둘은 주인과 노예가 역전되는 상황을 맞았다.

포조와 럭키의 등장은 지루한 기다림에 일대 변화를 주는 신선한 감초다. 하지만 포조와 럭키가 무한정 그들과 함께 기다리는 대열에 동참하는 것은 아니다. 포조와 럭키는 이유 없이 왔던 것처럼 이유없이 사라진다.

뒤이어 고도의 부탁을 받고 왔다는 소년이 등장한다.

소년은 고도가 오늘 밤엔 못 오고 내일은 꼭 온다는 말을 전하라고 했다는 말을 두 사람에게 전한다. 말하자면 소년은 고도의 전령인 셈이다. 소년을 반갑게 맞는 디디와 고고는 우리를 만났다는 말을 고도에게 하라면서 소년을 돌려 보낸다.

1막이 끝나고 2막이 시작하지만 두 사람의 기다림은 계속된다. 연속된 기다림으로 그들은 자신들이 누구인지, 기다리는 사람이 고도인지조차 헷갈린다. 장소도 석연치 않고 여기가 어딘지 조차 불분명하다. 거의 미치기 직전이다.

블라디미르의 노래가 끝나면 에스트라공이 등장한다. 두 사람의 끝나지 않는 기막힌 광대극이 또 시작된다. 반갑게 다시 만난 그들은 반가워서 할 수 있는 일로 무엇을 할 까 궁리하다가 고도를 기다리기로 한다.

말장난과 언어의 유희가 난무한다. 여기서 무엇을 얻을 수 있을까? 독자들은 정신을 바짝 차려 보지만 그저 그런 무의미한 대화일 뿐이다.

심심풀이 땅콩 같은 이야기가 쉬지 않고 이어지는 것이다. 다시 포조와 럭키가 등장한다. 그런데 이번에는 상황이 좀 다르다. 포조는 어느 날 깨어 보니 장님이 됐고 럭키는 벙어리가 됐다. 그렇다고 주종이 바뀐 것은 아니다. 포조는 여전히 주인이고 럭키는 짐을 잔뜩 짊어진 종이다.

눈이 먼 포조는 1막에서와는 달리 당당하기 보다는 애처로워 블라디미르에게 얻어터지고 살려달고 애원하는 가련한 신세가 된다.

소년이 한 번 더 등장한다. 오늘 밤에는 못 오고 내일 밤에는 틀림없이 온다는 전갈을 가지고. 소년이 가기 전에 블라디미르는 고도에 대해 추측해 볼 수 있는 몇 마디 질문을 한다.

고도는 무엇을 하느냐고.(아무 것도 안 한다는 대답) 수염은 있느냐, 노란 수염이냐, 까만 수염이냐.( 하얀 수염 같아요, 라는 대답) 말을 마친 소년은 쏜살 같이 또 사라진다.

소년이 사라졌으므로 2막도 끝이 난다. 끝이 나기 전에 블라디미르는 이 지랄 같은 일도 이제는 끝나기를 바란다. 그래서 잡아 당겨도 끊어지지 않는 튼튼한 끈으로 목이나 매자고 에스트라공에게 말한다.

고도가 온다면 살겠지만 그렇지 않으면 그들은 죽는다. 과연 그럴까. 아니다. 그들은 죽지 않는다. 죽지 않고 또 다른 고도를 기다릴 것이다. 기다리는 일은 끝나는 일이 아니기 때문이다.

: 내가 누구인지, 여기는 어디인지 모를 때가 있다. 이럴 때 줄여서 나는 누구? 여기는 어디? 라고 표현한다.

고도를 기다리는 친구들도 이런 물음을 자주한다. 하지만 끝내 답을 얻지는 못한다. 심지어 작자인 사무엘베케트 조차도 고도가 누구인지 모른다.

그래서 사람들은 이 연극을 터무니없는 부조리극이라고 칭한다. 누군가가 작가에게 고도가 누구이며 무엇을 의미하느냐고 묻자 그것을 알면 내가 작품에서 썼을 것이라고 말했다고 하니 저자도 모르는 것을 독자들이 어떻게 알까.

그걸 아는 독자들은 행복할까. 아니다, 그 걸 안다고 해서 행복할리 없다. 인생의 나침반은 고도를 안다고 해서 찾아지지는 것은 아니다.

고도는 우리 마음속에 있는 절대자 일수도 있고 먹는 빵일 수도 있으며 언제나 추구해야 하는 자유일 수도 있고 없는 힘을 되살리는 희망일 수도 있으며 있으면 더 가지고 싶은 돈일 수 있고 아무것도 없는 허무이며 생기면 아픈 고통일 수도 있다.

그 무엇이든지 그것을 위해 기다릴 만한 가치가 있는지 없는지 판단하는 것은 오로지 독자의 몫이다. 그 가치를 위해 오늘도 사람들은 희극이며 비극인 인생을 위해 목을 매는 대신 숨 쉬며 살아가고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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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약뉴스 이병구 기자  |  bgusp@newsm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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