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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2, 책망의 순간은 다가오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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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2, 책망의 순간은 다가오고 있었다
  • 의약뉴스 이병구 기자
  • 승인 2018.06.01 09:04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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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을 보이고 하는 전쟁에서는 이기기보다는 지지 않는 방법을 택해야 한다. 그것은 병법이라기보다는 상식에 속하는 문제였다.

뒤로 도망가는 것밖에는 다른 방법이 없다는 것을 중사는 이 순간 한 번 더 확신했다. 그는 앞으로 나아갈 때 보다 뒤로 물러 날 때가 더 괴로웠다.

쏟아지는 총탄 앞이라도 ‘돌격 앞으로’ 를 한다면 사기는 하늘을 찌를 듯이 달아오를 것이지만 살기 위해서 하는 후퇴는 그와는 맞지 않았다. 몸은 끓어오르기 보다는 차갑게 식었다.

식은 몸은 방향을 바꾸라고 명령하지만 마음은 이미 그럴 수는 없다고 도리질을 하고 있었다. 그는 지고 난 후의 치욕스런 감정을 몸 전체로 받아 들였다. 이미 한 번 진 것이었다. 전투를 해보지도 않고 패배한 것이다.

중사는 작전상 후퇴라는 말을 떠올렸다. 언젠가 연대장이 장교와 부사관을 모아놓고 어쩔 수 없을 때는 줄행랑을 치라는 말을 했다. 그 것이 상책이라고 판단 됐을 때라는 조건이 붙었지만 군인에게 그 것은 치욕적인 말이었다.

중사는 어이가 없어 벌린 입을 다물지 못하고 잘 못 들은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에 손을 귀로 가져가서 만져보기 까지 했다. 귀는 이상이 없었으나 벌겋게 달아 올랐는지 손을 대자 뜨거운 열기가 느껴졌다.

후퇴라는 용어를 썼어도 이해하지 못했을 텐데 줄행랑이라는 말을 듣고는 연대장이라는 직위에 대한 신뢰마저 흔들렸다. 하지만 지금 이 순간, 중사는 연대장의 말을 곱씹었다.

일보 전진을 위한 이보 후퇴는 그럴 듯한 말이 아니라 실제로 그런 말이었다. 중사는 뒤로 밀려나는 썰물처럼 급속하게 뒷걸음질 쳤다. 그러면서도 '이것은 아니다' 라는 강한 자기부정과 싸워야했다. 상상할 수도 없었던 적과의 싸움에 앞서 자신과의 싸움에서 지고 있었다.

이 순간 중사는 무력했다. 그는 무력함을 달래기 위해 뒤걸음질을 서둘렀다. 언제나 선두에 섰고 언제나 앞만 보고 내달렸던 자신이 후미로 쳐저서 후퇴하는 상황은 이 것이 처음이자 마지막이라고 단언했다.

다행인 것은 후퇴가 스스로 결정한 것이라는 점이다. 만약 소대장이나 다른 누가 그렇게 했다면 중사는 듣지 못한 것처럼 앞으로 내달렸을 것이다. 자괴감은 이럴 때 드는 것이었다. 그는 자신이 상사의 명령이 아닌 스스로 후퇴를 실행에 옮길 줄은 상상하지 못했다. 

그는 살아 나가면 산자의 부끄러움 때문에 한 동안 수습하지 못하고 자신을 책망할 것을 알았다. 잘못 가운데서 큰 것이었고 그래서 꾸짖음도 강도가 셀 것이었다. 대원들 중 누군가 엄하게 자신에게 호통을 쳐도 대꾸하지 못하고 다만 고개를 수그리고 있을 뿐이라고 중사는 자책했다.

그래서 차라리 이건 아니다라고 부정하는 대원이 나온다면 두말없이 총구를 돌려 교전이 벌어졌던 장소로 되돌라 가고 싶었다. 설사 죽는다 하더라도 하나도 무섭거나 두렵지 않을 것이다. 그 곳에는 먼저 쓰러진 대원이 있지 않은가.

수습하지도 못하고 도망쳐온 중사는 죽은 대원에게 그제서야 미안한 생각이 들었다. 유족에게 전해줄 유품 하나 챙기지 못한 것이 내내 아쉬웠다. 중사는 그런 혼란한 마음을 수습하기 위해 벽을 더듬는 손과 동시에 움직이는 발걸음 더 빨리 내딛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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