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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7. <1984> (19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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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7. <1984> (1949)
  • 의약뉴스 이병구 기자
  • 승인 2018.05.12 16:42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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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을 사랑합니다.’

불과 닷새전만 해도 돌멩이로 머리를 후려칠 생각을 했던 여자였다. 그래서 그녀의 골을 쪼개고 싶었다. 그런데 그 여자로부터 이런 쪽지를 받은 당신이라면. 어땠을까.

사상경찰의 끄나풀이라고 믿었던 그 여자가 나에게 이런 밀어를 전해줬다면. 마치 뱃속에 불이라도 나지 않았을까.

더군다나 사랑이니 하는 단어는 불경스러울 뿐만 아니라 입에 올려서는 안 되는 불순한 것이었다. 마치 반역이니 독재타도와 같은 말이 전체주의 사회에서 금기어가 되는 것과 마찬가지였다.

그것을 받은 윈스턴 스미스의 심정은 어땠을까.

그것을 전해준 줄리아의 마음은 또 어땠을까. 줄리아가 자기 손안에 있는 작고 납작한 네모난 무언가를 떨어뜨리지만 않았더라면, 설사 떨어뜨렸어도 그것을 윈스턴이 줍지만 않았더라면, 어땠을까.

지금까지 함께 하지는 못해도 살아 있지는 않았을까. 당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두 사람은 해서는 안 되는 사랑을 했다. 당은 인간의 기본적인 욕구인 사랑조차 금지했다. 금지된 것을 시도하는 것은 위험하다. 당연히 그 대가는 혹독했다.

 

체포된 그들은 고문 받고 서로 배신하고 완전히 순화 되서 기분 좋게 총살형을 당했다. 죽으면서도 행복했던 윈스턴.

그는 정신적으로 개조된 새 인간으로 재탄생 했다. 그 순간 그는 길다란 복도를 걸어가다 뒤에서 쏜 총을 맞고 죽었다. 

찬송가가 들려오는 어느 담벼락에 서서 새 출발을 다짐했던 그 순간 체포됐던 소피처럼 참회의 순간에 그도 반전을 맞았다.

조지오웰의 <1984>년의 결말은 주인공 윈스턴의 총살형으로 막을 내렸다. 소설이 나온 것이 1949년이니 <1984>는 미래 어느 날의 일이다.

세계는 오세아니아, 유라시아, 동아시아의 삼국으로 분할되 있다. 이들은 서로 싸우지 않는 날이 없다. 체제 유지를 위해서 전쟁을 하는 것이다. 전면전이라기 보다는 국지전이다. 그래야 서로에게 이득이 되기 때문이다.

오세아니아의 윈스턴은 외부 당원으로 진리부에 근무하고 있다. 과거를 지우고 거짓을 선동하고 변조하고 날조하는 것이 그의 일이다.

‘과거를 지배하는 자는 미래를 지배하고 현재를 지배하는 자는 과거를 지배한다’는 당의 강령을 충실히 따르기 위해서다. 하지만 이런 작업을 하면서 그는 심각한 고민에 빠진다.

역사적 사실을 왜곡하는 일에 반항심이 싹트기 시작한 것이다. 그러 던 어느 날 앞서 말한 대로 줄리아의 편지를 받게 된다. 그는 안 되는 줄을 알면서도 줄리아를 사랑한다. 숲속에서 밀회를 즐기고 비밀 아지트를 얻어 둘 만의 달콤한 시간을 보낸다.

이 과정은 험난하다. 24시간 그들을 감시하는 텔레스크린을 피하는 것이 도무지 쉽지 않기 때문이다. 감시의 사각지대를 벗어나는 일은 그 만큼 힘들다. 

설사 벗어났다 해도 사냥개처럼 냄새를 잘 맡는 사상경찰을 따돌려야 하고 하늘을 나는 헬리콥터의 추격을 피해야 한다. 언제 어디서나 음성을 듣는 마이크로폰도 그들을 괴롭힌다.

아무리 좋은 일을 하더라도 꼬리가 길면 잡히는 법이다. 그래도 원스턴은 자신이 믿는 일을 옳다고 생각해서 밀고 나간다. 

그는 내부당원인 오브라이언을 통해 반항세력인 지하조직 형제단에 가입을 원한다. 그와 뜻을 같이 하는 사람들이 모여 체제 전복을 꾀하기 위해서다.

하지만 오브라이언은 함정을 파놓고 그를 기다린다. 때가 왔음을 간파한 사상경찰이 그를 체포한다. 그는 혹독한 고문을 당한다. 

마침내 사람의 살을 파먹는 쥐를 앞에 두고 그는 완전히 사상의 개조에 성공한다. 고문을 피하기 위한 거짓 자백이 아니라 진실로 그렇게 믿는다.

자신을 파괴하는 가상 인물 빅브라더를 진정으로 사랑하게 된 것이다. 누군도 본 사람이 없는 실체가 없는 거대한 1미터의 포스터로만 존재하는 빅 브러더를 인정하고 그 존재를 믿고 존경한다.

그 순간 그는 이 세상에 존재했던 적이 없었던 사람이 된다. 그의 흔적은 어디에도 없다. 인간의 가치를 상실했을 때 더는 살아 있을 필요가 없는 것이다. 거대한 국가에 맞선 한 개인의 저항은 이처럼 허무하게 끝났다.

하지만 이런 개인들이 모일수록 독재자의 출현은 어려워진다. 독재자와 그의 추종자들은 숨어서 기회를 노린다. 호시탐탐 세력을 규합할 시기를 기다리고 있는 것이다. 이들이 발호하지 못하도록 감시의 눈을 한시도 게을리 하지 말라고 조지오웰은 경고하고 있다.

: 오늘날에도 이 소설은 현실과 여러모로 흡사하다. 텔레스크린처럼 도처에 감시망이 촘촘한 것이 그렇다. 가상의 적 골드스타인과 같은 증오의 대상을 만들어 끊임없이 선동하고 분노를 부추키는 것도 다를바 없다.

국지전을 일으키면서 내부 단속을 꾀하고 국민들을 이간질 시키면서 권력을 유지하는 정치인들의 행태도 마찬가지다. 경찰을 동원해 감시하고 사상을 억압하면서 특권세력의 안위를 꾀하는 것은 과거의 일이 아니라 현재 진행형이다.

그러니 이 소설은 디스토피아를 통해 유토피아를 그려낸 것이라고 볼 수 있다. 작가가 겪은 일들을 통해 전체주의가 얼마나 무섭고 민주주의가 얼마나 소중한지 소설을 통해 보여준 것이다. 그러니 이 소설은 미래소설이 아닌 현재 소설이라고 불러도 이상할 게 없다.

작가는 <나는 왜 쓰는가>라는 에세이를 통해 이런 말을 남긴 적이 있다. 이 말을 통해 <1984>년이 갖는 의미를 되새겨 보는 것도 괜찮겠다.

“스페인 내전과 1936~1937년에 있었던 그 밖의 사건들은 저울을 한쪽으로 기울게 했고 그 뒤로부터 내가 어디에 서 있는지 알게 됐다. 1936년부터 쓴 내 작품은 어느 한 줄이 든 직간접적으로 전체주의에 맞서고 민주적 사회주의를 지지하는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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