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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5. 안색이 변하지 않아 표정을 살피기 어려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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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5. 안색이 변하지 않아 표정을 살피기 어려웠다
  • 의약뉴스
  • 승인 2018.05.09 16: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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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사는 진급했어도 내색하지 않았다. 그는 표정을 감출 줄 알았다. 즐거워도 슬퍼도 언제나 무표정한 표정을 지었다. 그래서 중사의 얼굴을 보고 무엇을 알아내는 것은 어려웠다.

그의 마음이 어떤지 어떤 심리상태인지 누구도 몰랐다. 드러나지 않는 낯빛은 그를 더 단단하게 만들었다. 식스틴의 총열이 붉게 타올랐을 때도 그 것을 잡은 손가락 안쪽이 데였을 때도 그는 태연했다.

안색은 언제나 그 이전이나 지금이나 변함이 없었다. 13명의 적을 해치울 때 그는 삽탄한 15발 들이 탄창을 다 쓰고 여분의 75발까지 순식간에 발사했다. 탄창을 교체하고 조준하고 쏘는 시간이 그야말로 전광석화와 같아서 옆의 병장은 그 제서야 탄띠의 탄창을 꺼내느라 손을 벌벌 떨고 있었다.

상황이 종료되고 난 후 중사는 멀리 나가지 못하고 바로 앞에서 떨어져 내린 식스틴의 탄피를 주워들었다. 시커멓게 그을린 탄피는 아직 식지 않아 그가 집어 들었을 때 냄새보다 먼저 연기를 뿜어냈다.

뜨거운 그것을 그는 한동안 바라보다 아래로 던져 버리고는 화약 냄새마저 무시했다. 그는 보이는 것이나 보이지 않는 것이나 냄새나는 것이나 그렇지 않은 것이나 대할 때가 한결 같았다.

그는 애인같이 대하라는 식스틴을 앞에 총 하듯이 세운다음 총열을 잡았다. 자신의 목숨을 지켜주고 적을 없애준 것에 대한 감사함을 표하기 위해서였다.

그는 다른 어떤 것보다도 총이 좋았다. 총으로 던지는 눈길은 한없이 자애로웠으며 그의 애인도 이처럼 그런 눈길을 받을 수는 없을 것이다.

총열은 뜨겁기도 하고 따뜻하기도 했다. 마치 막 불을 땐 시골 부뚜막처럼 온기가 충만했다. 부뚜막에 앉은 고양이를 보듬듯이 총열을 잡은 중사는 그것을 부드럽게 감쌌다.

총은 태연했다. 아무렇지도 않다는 듯이 덤덤했다. 형태를 유지했고 여전히 꼿꼿했다. 하지만 뜨거운 시간을 보낸 총은 대단한 열기를 숨기지 않았다. 그가 흥분해 달아오를 때면 덩달아 춤을 췄고 그의 심장이 차분해 질 때는 저절로 썰렁한 냉기를 유지했다.

총은 그와 한 몸이었고 잘 맞는 옷이었다. 적의 심장을 뚫고 붉은 피를 쏟아낼 때 총은 세상에 나온 물건 값을 해냈다는 자부심을 주인만큼 가졌다. 자신의 진가를 인정받았을 때 총도 당당해 질 수 있었다.

총의 위용은 그렇게 생겨났다. 때로는 엄숙했고 때로는 위엄이 있었고 그런 모습을 변치 않고 주인에게 보였다. 그는 그 총을 들고 병장이 공포에 질려 떨고 있을 때 손가락질 하듯이 총구를 아래로 향하고 시체의 숫자를 세면서 모두 13명이 맞다 고 소대장에게 보고했다. 어떤 시체 앞에서는 총구로 찔러 대는 대신 손으로 직접 만져 보기까지 했다.

그 때도 그는 얼굴에 표정을 드러내지 않았다. 그는 내장이 튀어나온 적의 하체에서 붉은 피가 응고되고 그 곳에 파리 떼가 끼어들어도 마찬가지였다. 뱃속에 불이 나고 있어도 그 마음을 외부로 발설하지 않았다.

그는 그런 인간이었다. 이후 그의 소대는 소대장보다는 중사 위주로 움직였다. 소대장은 그가 하자는 대로 따랐고 그가 정하는 지점에 매복호를 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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