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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종편집 2024-05-27 09:34 (월)
41. 심연의 깊은 곳으로 빠져드는 지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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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1. 심연의 깊은 곳으로 빠져드는 지점이다
  • 의약뉴스 이병구 기자
  • 승인 2018.05.02 10:26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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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자를 쓰고 있는 영혼도 있다. 어떤 것은 모자만 있고 머리는 없다. 옷을 입은 영혼은 가슴 깃에 계급장을 달고 있다. 몸통은 없고 계급장만 보이는 것도 있다.

정면보다는 땅을 보고 있으며 한결 같이 고개를 숙이고 있다. 앞을 똑바로 보지 못하고 잘못한 것을 뉘우치는 것처럼 몸이 앞으로 구부정하다. 붙잡지 않고 내버려 두면 고꾸라 질 듯이 위태롭다.

무릎 꿇기 직전의 모습처럼 아래를 내려다보는 경사가 심하다. 그런 자세로 누군가에게 관대한 용서를 구하고 있다. 잘못한 학생이 꾸짖거나 벌하지 말고 허물을 너그럽게 덮어 달라고 폼 잡고 호소하고 있다.

선생님은 마음이 넓었지만 말하지 않는 학생의 마음을 헤아리지는 못했다. 아량은 선생님의 덕목이었으나 학생은 그 것을 받지 못했다. 그는 말하기도 전에 총알 세례를 받았으므로 말 할 기회가 없었다고 뒤늦게 선생님께 호소했으나 영혼은 이미 육체를 떠난 뒤였다.

희미한 형상은 점차 뚜렷해진다. 쌓은 돌무더기들은 위아래로 균형이 잡혔다. 일렬로 늘어 서지 못했으나 서로 턱을 걸쳐 있었으므로 바람이 불어도 넘어지지 않았다.

이인은 헐떡이는 숨을 진정시키며 그것들을 쳐다본다. 반환점을 돌려면 반드시 이 곳을 통과해야 한다. 그럴 때마다 심란하다. 심연의 깊은 곳으로 빠져 들기 때문에 힘들었다가도 어느 새 사라진다.

이미 오래전에 사라진 육체를 떠난 영혼이 거기에 머물러 있기 때문이다.  하늘로 날아 올라간 영혼들은 그곳에 머물지 못했다. 땅으로 스며든 혼백도 마찬가지였다. 하늘과 땅에서 이승을 떠난 혼들이 구천을 떠돌고 있다.

그 곳은 높고 깊어 큰 제사를 지내고 넋을 위로하는 춤을 춰야 움직일 수 있었다. 달래달라고 여러 번 신호를 보냈으나 무심한 권력은 되레 하늘을 덮고 땅을 갈아엎었다. 그들은 죽어서도 원통했다.

그러 던 어느 날 누군가가 돌을 주워 탑을 세웠다. 그 제서야 혼들이 안식처를 찾았다. 안양천에 돌탑이 세워지기 전에는 어디 숨을 곳이 없어 어둠이 오기만을 기다려야 했다. 비가 오거나 습기가 많은 날이면 떼로 몰려나와 몸을 숨길 곳을 찾아 헤맸다.

오랜 세월이 지나도 그들이 한 곳에 머물지 못한 것은 죽음이 비참했고 너무 억울했기 때문이었다.

어린 몸은 육체를 떠났으나 작별의 절차도 없었다. 정착하지 못한 영혼은 맺힌 한을 풀어 달라고 조용하지만 쉬지 않고 손을 내밀었다. 깊숙이 고개를 숙였으므로 눈은 볼 수 없었으나 잡아달라고 부디 그것을 뿌리치지 말라고 애원하고 있었다.

내민 그 손을 누군가 잡았을 때는 너무 늦었지만 혼이 아직 숨을 쉬고 있었다.

나고가 손을 뻗어 이인의 어깨를 잡는다. 첫 휴가가 얼마 남지 않았다. 그는 함양에 갈 것이다. 그 곳에는 기다리는 어머니가 있다. 함양에 대해 물었을 때 그는 한 동안 대답하지 않았다. 그 곳은 지리산 줄기를 끼고 있다고 한 참이 지나서야 말했다.

지리산을 말 할 때 나고의 눈은 번뜩였다. 그런 눈을 이인은 기억하고 있다. 눈이 빛나는 사람이 있었다. 그는 회사의 총무 과장이어서 이인도 두 번째 직장에 있을 때 가끔 그를 만났다.

물 속에서 막 나온 물고기처럼 빛이 났는데 받는 사람이 눈이 부셔서 마주 볼 수 없을 지경이었다.

나와 눈을 맞추는 사람이 없다고 그는 자랑스럽게 말했다. 어쩌다 그렇게 됐어도 바로 눈을 내리 깔게 된다고 말하면서 총무과장은 이인의 눈을 똑바로 보았다. 나를 그렇게 바라보는 사람은 없었다고 그가 덧붙일 때 빛은 더욱 사나워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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