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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종편집 2024-04-19 17:22 (금)
281. 비무장지대(196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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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81. 비무장지대(1961)
  • 의약뉴스 이병구 기자
  • 승인 2018.04.26 15: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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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일이면 역사적인 남북정상회담이 열린다. 장소는 서울이나 평양이 아닌 판문점이다. 역사의 현장에서 벌어지는 남북대화에 온 국민의 관심이 쏠리고 있다.

정전협정이 평화협정, 나아가 종전협정으로 이어져 한반도에 평화의 봄이 오기를 기대한다. 종국에는 본래 하나였던 것이 둘로 갈라졌으니 다시 하나로 되는 통일이 와야 한다. 그런 조짐이 보이고 있어 반갑기 그지없다.

이런 와중에 박상호 감독의 < 비무장지대>를 보는 감회는 새롭다. 이 지역은 말 그대로 무장을 하지 않는 곳이다. 하지만 휴전선 155마일은 중무장한 남북의 병력이 서로 총구를 겨누면서 살벌한 분위기를 연출하는, 세상에서 가장 무섭고 소름끼치는 장소다.

지금도 이럴 진대 전쟁직후는 오죽 했을까. 군복을 입은 소년(이영관)이 이 곳을 배회한다. 철모에는 헌병을 뜻하는 영문 MP가 선명하게 박혀 있다. 부모 형제는 어디로 갔나. 돌보는 사람이 없어 행색이 초라하다.

밥은 먹고 다니는지 보는 시선이 애달프다. 여기에 한 소녀(주민아)가 깡통을 들고 등장한다. 둘은 티격태격하다 금세 오빠, 동생 하는 사이가 된다. 처지가 비슷하기 때문이다. 영어로 ‘쎔 쎔’ 이라고 소년은 웃는다. 하지만 웃음은 잠깐이다.

 

아이들은 힘들 때면 엄마한테 가겠다며 무작정 아무 길이나 간다. 부서진 다리를 건너고 생채기 나는 숲속도 지난다. 

산짐승도 무섭지만 먹는 것이 급선무다. 오빠는 씩씩하게 개구리를 잡으러 가고 소녀는 버려진 대전차 지뢰위에 철모를 얻고 불을 땐다.

불길은 타오르고 아이들이 잠시 자리를 비운 사이 폭음과 함께 지뢰는 폭발한다. 판문점에서 유엔군과 인민군이 만난다. 

방송은 공산 측 요청으로 긴급회담이 열리고 있다고 상황을 알린다. 당사자들은 서로 뭐라고 떠들다가 화면은 다시 소년소녀들을 비춘다.

잘 익은 수박을 발견한 아이들의 얼굴이 보름달처럼 환하다. 소년이 대검으로 찌른 다음 나눠 먹는다. 얼굴에 붙은 수박씨를 보면서 서로 또 웃는다. 웃기도 잘 하고 울기도 잘 한다. 버려진 탱크 위에 노는 것도 즐겁다. 캔맥주를 먹고 해롱거리기도 한다.

돌격 앞으로를 외치며 전쟁놀이도 한다. ‘통일행진곡’으로 불리다가 ‘민족해방가’로도 불렸던 노래가 배경으로 깔린다. 그리고 흰 줄 쳐진 삼팔선 앞에서 둘은 네 땅, 내 땅 하면서 논다. 서로 등 돌리고 말 안하기, 줄 안 넘어가기 등의 게임도 한다.

어른 들이 한 짓을 아이들이 보고 따라 한다. 대북확성기 소리에 인민군들의 표정이 시무룩하다. 고향에 가서 부모 형제를 만나고 싶은 마음은 남과 북이나 다를 바 없다. 남인수가 부른 ‘가거라 삼팔선’ 노래가 애간장을 녹인다. ‘아, 아 산이 막혀 못 오시나요, 아 ,아 들이 막혀 못 오시나요. 남북이 가로막혀 원한 천리 길...’ 곡도 처량하고 가사도 그렇다.

아이들은 줄을 끊어 버리고 DMZ 푯말도 쓰러트린다. 그리고 서로 안겨서 울다가 언제 싸우고 그랬는지 금세 발가벗고 논다. ( 화면도 끊기도 정지되고 목소리도 들리지 않는다. 완전한 복원 판은 언제 나오려나.)

녹슨 기차도 보인다. 더 이상 갈 수 없어 멈춰선 채 버려져 있다. 부서진 대포도 있다. 포신을 통해 아이들은 하늘을 본다. 뭉게구름이 떠 있는 파란하늘이 무심하다. 이 아이들이 어떤 운명을 맺을지 그래서 영화가 어떻게 끝날지 보는 내내 조마조마하다.

끝까지 살아남아서 그리운 엄마를 만나는 해피 앤딩이 될까, 아니면 누구 하나 죽거나 살더라도 천애고아로 남겨 지게 될까. 상황은 점점 안 좋은 쪽으로 흐른다. 그런 가운데서도 아이들은 특유의 천진난만한 기운을 잃지 않는다.

하얀 토끼가 달아난다. (산토끼는 아니고 집토끼를 이용했다.) 훈련된 토끼는 뒤도 돌아보지 않고 쫒아오는 소녀를 따돌린다. 한 참을 가던 소녀는 그만 길을 잃고 소년은 없어진 동생을 찾기 위해 정신없이 쏘아 다닌다.

이름을 소리쳐 부르면 대답 없는 메아리만이 산천을 울리는데 보는 관객들도 저마다 눈시울이 벌겋게 상기된다. 부서진 건물 속에는 죽은 시체가 널려 있다.( 시체로 표현된 소품은 조악해 흐릿한 화면에서도 가짜라는 것을 쉽게 눈치 챈다. 건물은 아마도 노동당 철원당사 인 듯싶다.)

때는 가을이라 갈대는 소슬바람에 흔들리고 낙엽은 소리 없이 떨어진다. 눈이 내리고 흐르는 계곡물은 곧 얼것이다. 소년소녀는 겨울이 오기 전에 그리던 엄마를 만날 수 있을까. 소녀는 울다가 지쳐서 곧 어찌 될 것만 같은 위태로운 처지인데 다행히 둘은 극적으로 만나 재회한다.

어느 날 아이들 앞에 한 남자가 등장한다. 남자는 인민군이다. 그는 국군( 인민군이 이런 표현을 썼나?) 총에 맞아 이렇게 됐다고 부상당한 손을 들어 보인다. 아이들을 데리고 그는 공화국으로 가자고 협박한다.

그곳에 엄마가 있느냐고 아이들은 묻지만 남자는 대답대신 아이들의 손목을 잡아끈다. 도망가면 죽인다고 협박하자 소년이 차고 다니던 권총을 인민군에게 발사한다. 장난감 인줄 알았는데 진짜 총이었다. 그럴 마음이 없었으니 다친 인민군이 불쌍하다.

그래서 살펴보기 위해 다가가자 쓰러진 인민군은 대검을 꺼내 소년을 찌른다. 소년은 죽는다. 천둥번개가 억수로 치는 날 소녀는 소년도 만나고 엄마도 만나는 꿈을 꾼다. 흰 염소를 따라가는 소녀의 뒷모습이 아련하다.

국가: 한국

감독: 박상호

출연: 이영관, 주민아

평점:

 

: 촬영 팀은 휴전 후 처음으로 비무장지대를 찍기 위해 미8군과 군사정전위원회의 협조를 얻었다고 한다.

굶주림과 죽음에 대한 공포 속에서도 꿋꿋함을 잃지 않는 아이들의 서로 위하는 마음이 눈시울을 붉히게 한다.

아름다운 산하를 배경으로 소년은 남으로, 소녀는 북으로 표현 된 듯한 설정은 남북 오누이가 평화롭게 살기를 바라는 갈망으로 가득하다.

반공영화라는 한계가 있지만 판문점과 삼팔선으로 갈린 민족의 가슴 아픈 비극을 치유하자고 영화는 끊임없이 말한다.

내레이션은 '오늘도 산천은 변함이 없는데 전선이 조국의 허리를 끊어 놓았다'고 한탄을 한다. 한 핏줄 한 민족이 겪은 피의 대가가 고작 이것이냐고 반문하면서 하늘이여, 이 겨레의 앞날을 어찌하려느냐고 장엄한 신파조로 꾸중을 한다.

피맺힌 이 민족의 절규를 언제까지 외면하려는가하고 묻고 또 묻는다. 한 때 이 영화는 필름을 분실하여 입소문으로 만 돌았으나 우연히 발견돼 한국영상자료원이 복원해 일반에게 공개하고 있다.

철조망이 해안까지 뻗어 나온 마지막 장면은 이제는 걷어내야 될 때가 됐다고 역설적으로 말해주고 있다. 부디 남북정상 회담이 잘 끝나 통일의 단단한 초석이 마련되기를 기대해 본다. 그래서 이 영화가 통일조국에서 분단된 지난 옛날을 기억하는 '고전영화 보기' 목록에 들어갔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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