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76975 2077203
최종편집 2024-03-29 13:17 (금)
35. 허리를 뒤로 젖히고 보폭을 넓혔다
상태바
35. 허리를 뒤로 젖히고 보폭을 넓혔다
  • 의약뉴스 이병구 기자
  • 승인 2018.04.20 10:49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늪의 늑대가 순수한 영혼을 학대한 것은 그 전의 늙은 남자를 보고 배웠기 때문이다.

늙은 남자는 섬으로 쫓겨 가기 전 십년 넘게 자신을 믿고 따르던 백성들을 괴롭혔다. 모진 그는 차마 못할 짓을 서슴없이 저질렀다.

다 죽어 가면서도 죽을 때까지 그 짓을 연장하기 위해 흰 옷의 영혼들을 짓밟았다. 청계천으로 흘러 들 피의 숫자까지 정해놓았던, 제나라 말도 서툰 늙은 남자는 종신 집권을 위해 부정이라는 부정은 다 하고서도 수습하는 데는 서툴렀다.

5인조 공개투표를 짜는가 하면 완장부대를 동원했고 자기의 반대편인 참관인을 내쫒았다.

그러고서도 부끄러운 줄을 몰랐다. 소문은 빨라 남쪽의 마산에서 사람들이 모여들었다. 그들은 ‘이래서는 아니 된다’ 고 소리를 질렀다. 그 소리는 서울의 늙은 남자에게까지 전해졌다.

마산에서 올라온 아귀를 아귀처럼 씹으며 파란 눈과 다른 나라 말로 지껄이던 그는 총을 준비하라고 다급하게 외쳤다. 그 당시 최고로 치던 미제 최루탄도 등장했다.

일단의 그들은 무언가를 외치던 사람들에게 마구 쏘아댔다. 허공이 아니고 얼굴에다 대고 조준했다.

교복을 입은 고등학생의 눈에 주먹 만 한 그것이 깊게 박혔을 때 어머니는 아들을 찾아 밤새 길거리를 헤맸다.

한 달이 지나자 밤바다는 불쌍한 영혼을 위해 그를 수면위로 밀어 올렸다. 어린 영혼이 올라 왔을 때 해변은 노란 유채꽃이 마구 피어나기 시작했다. 이른 해당화는 붉은 색으로 향을 피웠고 등대는 밤을 낮처럼 밝혔다.

사막을 걸어가던 사람은 끝내 오아시스를 만나지 못했다. 그의 꿈은 한 장의 엽서로 남았고 그 엽서는 봄의 서풍을 타고 서울로 날아왔다. 야자수와 등대가 그려진 엽서는 삐라처럼 공중에서 사방으로 뿌려졌다.

엽서를 줏어 본 사람들은 흩어지지 않고 뭉쳐서 늙은 남자가 서 있는 공원으로 몰려갔다. 굵은 쇠사슬이 목에 감기자 힘을 합쳐 줄을 당겼던 사람들 앞으로 늙은 남자가 땅을 벅벅 긁으며 끌려왔다.

땅에 갈려 긁힌 눈은 그러나 잘못을 인정하지 않았다. 대신 다시 총을 찾았다. 늙은 그는 자신이 무슨 말을 하는 지도 몰랐다.

이를 간파한 먼 나라는 그가 더 이상 효용가치가 없다는 것을 알았다. 써 먹을 수 없다는 정보원보고를 받자마자 그들은 시위의 원인이 공산당의 사주 때문이 아니고 부정선거라고 못 박았다.

말로만 정의와 민주를 외치던 그들이 자기 필요에 의해 사실을 사실대로 말했지만 거짓이 아니고 사실이었기에 집에 갔던 사람들이 밖으로 나와 다시 모여 들었다.

이인은 발을 앞으로 쭉 쭉 뻗지 못하고 끌듯이 한 발 한 발 내딛는다. 클럽에서 춤추는 댄서처럼 뻗은 앞다리를 지주 삼아 끌려오던 동상처럼 바닥을 긁는다. 쟁기로 땅을 갈아엎기에는 역부족이다.

더는 버틸 힘이 없다. 그만 멈추라고 온 몸이 신호를 보낸다. 부자가 되기 위해 그러는 것처럼 안간힘을 쏟는다. 30미터 전방을 쳐다보자 문득 온 몸이 열린다.

긁던 발은 허공에 뜨고 자연스럽게 보폭은 넓어진다. 과하게 뒤로 몸을 젖히면서 허벅지 안쪽을 강하게 조이자 총알처럼 몸은 앞으로 질주한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