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76975 2077203
최종편집 2024-04-26 00:17 (금)
28. 달리는 방향을 가늠하고 눈을 감았다
상태바
28. 달리는 방향을 가늠하고 눈을 감았다
  • 의약뉴스 이병구 기자
  • 승인 2018.04.12 21:54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이인은 달리는 방향을 가늠하고 잠시 눈을 감았다 떴다. 절대자를 만나거나 과거의 일을 기억 할 때면 하는 습관이었다.

몸에 익은 총소리가 들렸다. 야간근무를 마치고 막 돌아와 누운 참이었다. 식스틴 단발의 총소리는 길게 여운을 남겼다.

뇌관을 터트린 화약의 폭발음은 작지만 강했다. 소리만으로도 바위를 깰 정도였다. 어수선하던 침상에 갑자기 고요가 밀려왔다. 따~ 앙. 경계탑 위였다. 이인은 직감적으로 나고를 찾았다. 경계탑 쪽으로 눈을 들어 올렸다.

그는 그곳의 높은 곳에 있지 않고 여기에서 잠잠하게 있었다. 총 쏜 자는 나고가 아니었다. 총 맞은 자도 나고가 아니었다. 나고는 이번 총소리와는 아무런 연관이 없었다. 옆 소대 근무조 였다. 이등병인 그는 자신의 발목을 향해 총구를 겨눴다.

차마 목에 대고 그러질 못한 것은 총신이 길어서라기보다는 두려움 때문이었다. 죽기 전에 꼭 한 번 만이라도 고향의 어머니를 보고 싶었기 때문에 마지막에 총구를 아래로 향했다.

이등병이 방아쇠에 검지를 넣을 때에 갑자기 죽기 전에 꼭 한 번 만이라고 가봤으면 좋겠구나 ‘라구요’라는 노랫말이 생각났다. 노래 때문에 그는 살아났다.

들쳐 없고 뛰어온 근무자는 하반신이 피로 물들었다. 업힌자가 아니라 업은 자가 총상을 입은 것으로 보였다. 군화를 뚫고 나간 총알은 발등에 작은 구멍을 남겼으나 뒤집어 본  발 바닥은 손바닥처럼 크고 넓게 벌어져 있었다.

오른쪽으로 여섯번 돌아서 나간 총알의 위력이었다.  그는 60트럭을 타고 연대로 후송됐다.  헬기대신 트럭을 타고 간 이등병은 헤어진 여자 때문에 자해했다고 소문이 돌았다.

부상당한 이등병은 균견만도 못했다. 차라리 개였으면 그는 다리를 복사뼈 위에까지 자르지 않아도 됐다. 독일에서 온 지피의 세퍼트였다면 상부의 대응은 달랐을 것이다. 그는 없어도 되는 수많은 이등병 중의 하나였다.

피를 많이 흘리고 바로 수술하지 못한 상처는 곪아 잘라냈다. 수술 할 수 있는 병원까지 두 시간 만에 도착 했을 때 군의관은 아직 준비가 덜 되 있었다. 그는 준비도 서툴렀으며 수술도 그랬다. 더구나 외과의도 아니었다. 

이인은 다시 눈을 빠르게 감았다가 떴다.

또 다른 총소리가 들렸다. 이때는 한 발이 아니었다. 여기저기서 탕, 탕, 탕 하는 소리가 연달아 들렸다. 여러 발이 나갔으므로 사람도 여럿이 쓰러졌다. 그 때 총소리는 이번의 총소리와는 달랐다. 가늘고 날카로웠다.

쓰러진 사람들 뒤에 섰던 사람들은 자신들 앞에 섰던 사람들이 방패가 아니라는 사실을 뒤늦게 알았다. 그들은 스스로 방패가 되기로 작정하고 가슴을 앞으로 내밀었다. 

서서 쏘던 검은 제복들은 이번에는 앉아서 그렇게 했다. 총구로 보이는 표적을 정확하게 맞출 수 있기 때문이었다. 총알은 아깝지 않게 한 발에 정확히 한 명을 타격했다.

다시 사람들이 달려들자 이번에는 앉았던 그들이 일제히 엎드렸다. 그렇게 할 때는 잘 훈련된 조교들처럼 일사분란했다.

그들이 바닥에 흐르는 붉은 피가 배의 앞쪽으로 번져 든다는 것을 안 것은 탄창의 탄알이 모두 떨어져 교환하려고 허리를 들었을 때였다. 축축한 아랫도리에서 비린내가 풍기기 시작했다.

일어서라는 명령을 전달 받지 못했던 그들은 교환한 탄창을 다 쓰고 나서야 몸을 세웠다. 카빈총은 가벼워 집고 일어서기가 편했다.

그들이 일어섰을 때 엎드려 있을 때는 들리지 않았던 비명소리가 들렸다. 아직 죽지 않은 자들이었다. 산 자들은 늘 시끄러웠다. 식스틴에 비해 힘이 없던 카빈 탄환의 총알은 빠져 나가지 못하고 몸에 박혀 있었다.

그 날 많은 사람이 죽었다. 핏물은 모여 줄을 타고 인근의 청계천으로 흘러들었다.

개천가에 살던 사람들은 흙탕물에 섞인 핏물에서 비린내가 난다고 고개를 돌렸다. 빨래를 하던 아낙들은 서둘러 옷을 걷어 들였다. 산란을 위해 올라오던 잉어들은 짝을 찾는 대신 냄새를 피해 하류로 급히 떠밀려 갔다.

쓰러진 사람들은 대부분이 어린 학생들이었다. 교복위에 피가 아직도 뿜어져 나왔다. 산 자들은 사방으로 흩어졌고 형 집행자들처럼 횡대로 서 있던 사수들은 표적을 향해 총구를 이리저리 돌렸다. 

다루기가 쉬웠던 총은 쏘기도 편했다. 올라오다 돌아 가던 잉어가 숨을 쉬기 위해 튀어 올랐을 때 붉은 피도 같이 튀었다.

1980년 전방의 4월도 1960년 후방의 4월도 잔인하기는 마찬가지였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