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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 사람냄새 아닌 연꽃의 냄새를 풍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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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 사람냄새 아닌 연꽃의 냄새를 풍겼다
  • 의약뉴스 이병구 기자
  • 승인 2018.04.02 16:3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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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 어디에나 있으면서 어느 곳에도 속하지 않는 절대자를 이인이 다시 찾은 것은 일주일 간이나 밖에 나가지 못한 후였다.

얼굴의 반을 가린 커다란 마스크를 쓴 사람들이 핵전쟁 후 살아남아 먹이를 찾는 형체가 변형된 들개처럼 기이한 모습으로 돌아다닐 때 였다.

황갈색의 얼굴이 반은 흰 색으로 덮힌 그들은 땅속에 묻히지 못하고 배회는 유령과 비슷했다. 미세 먼지라는 유령이 떠돌 만한 그런 날씨였다.

새벽 안개처럼 부연 날이 도처를 덮고 하늘을 가렸고 땅을 갈아엎었다. 에어컨 실외기 위에 집을 짓는 까치는 모습이 아닌 소리로 ‘내가 짚을 물고 왔다’는 것을 알렸다. 그런 날에는 아무리 이인이라고 해도 절대자를 찾는 일은 쉽지 않았다.

결점이라고는 도통 없는 완전무결한 결정체는 그러나 멀리 있지 않았다. 자기를 찾는 다는 것을 모를 리 없는 절대자는 이인이 머리를 쥐어뜯어 그나마 얼마 남아 있지 않은 정수리가 벌겋게 물들 때 까지 기다린 다음 ‘내가 여기 왔노라’고 신호를 보냈다.

다른 사람들은 알 수 없는 어떤 느낌 같은 것이 둘 사이에 존재 했으므로 그 느낌은 말하자만 이인이외에는 누구도 풀 수 없는 암호 같은 거였다.

그는 언제나처럼 모습을 보이지 않았다. 다만 까치처럼 소리로 이인이 원하는 바를 들으려고 귀를 열었고 소리로 들어줄지 말지를 알려주기 위해 입을 열 준비를 하고 있었다.

이인은 망설였다. 출발 전에 시니어 마라토너처럼 발목을 푸는 흉내를 냈고 연설 직전의 정치인처럼 헛기침을 억지로 내뱉기도 했다.

오토바이나 스티로폼을 없애 달라는 지난 번 부탁과는 차원이 다른 것을 요구하기 위해 뜸을 들이는 것으로 절대자는 이해했다. 그래서 빨리 가봐야 할 다른 곳이 있음에도 조금 더 기다렸다.

이런 행동은 해서는 안 되는 것이었다. 유한한 이 지구를 한없이 초월하는 절대자에게도 시간은 중요했다. 독립적이며 자존적인 절대자를 화나게 할 이유가 없었음에도 이인은 여전히 고개를 숙이고 발로 땅을 긁적거렸다.

땅이 가렵기라도 한 듯이 긁어 주는데 피가 날 정도는 아니었다. 마침내 절대자는 화를 냈다.

‘네가 나를 못 믿느냐, 보이지 않는다고 존재하지 않는다고 생각하느냐.’

이인은 고개를 가로 저었다. 있는 것 중에서 가장 큰 믿음을 부정할 리가 없다는 것을 알고 있으면서도 그렇게 묻는 절대자가 야속했다.

자유의지대로 행동하는 절대자를 잠시 동안이라도 그러지 못하게 한 죄를 지었을망정 신뢰에 대한 말을 듣자 이인은 높 소리를 높여 되받았다.

알면서도 물으시니 님 께서도 비아냥에 맛을 들리셨나요?

이 역시 해서는 안 될 말이었으나 마음속 까지 꿰뚫어 보는 절대자 앞에서 굳이 생각을 숨길 이유가 없었다.

체엣 체엣.

빠른 속도로 바람 빠지는 소리에 이어 사람 입 냄새와 비슷한 냄새가 풍겨왔다. 절대자의 냄새는 봄에 피는 꽃 냄새와는 달랐다. 지난번에 부탁할 때도 그런 느낌을 받았는데 이번에도 비슷한 냄새가 났다.

의심하는 마음이 조금 생겨났다. 사람 냄새를 퍼트리는 것은 그 어떤 힘에 의해서도 제약되지 않는 절대자에게는 일종의 책잡힐 만한 신체적 약점이었다.

향기만으로도 부족할 텐데 냄새 중에서도 가장 고약한 인간의 냄새를 절대자가 갖고 있다니 이인은 한 편으로는 서글픈 생각이 들기도 했다.

완전 무구한 결정체가 이래서야 되겠는가.

이인이 자신을 깔보고 있자 절대자는 그가 가지고 있는 힘을 힘 들이지 않게 사용했다.

체엣 체엣.

이번에도 그는 콧바람을 내쉬면서 떠나지 않고 여전히 그의 옆에 있다는 신호를 보냈다. 나는 냄새가 이번에는 달랐다. 사람의 냄새는 고사하고 어떤 동물의 냄새도 아니었다.

때는 4월 이었으므로 연꽃 형상을 담은 목련이 흐드러지게 피었다.

이인이 꽃 중에서 나무에 달린, 피기 전에는 붓 모양의 봉우리 모양의 목련을 좋아한다는 것을 알고 절대자는 다른 냄새가 아닌 바로 그 냄새를 흘려보냈다.

표정이 바뀐 이인은 이 때다 싶어 세 번째 부탁을 절대자에게 들려주기 위해 입을 향기가 나는 쪽으로 가까이 들이 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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