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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78. 천년호 (196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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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행 2018.04.01  18:1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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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미호와 천년호가 대결하면 승자는? 이 질문에 답하기 위해서는 신상옥 감독의 <천년호>를 봐야 한다.

천년백호로 소개되는 <천년호>는 1000년 묵은 여우로 이미 999명의 예쁜 처녀를 재물로 삼았고 사람이 되기 위한 마지막 1명의 희생양만 남겨 놓고 있다.

이 정도 숫자라면 꼬리가 9개 달린 구미호라도 감히 명함을 내밀기 어려울 것이므로 게임은 해보나 마나다.

그러나 누가 이기느냐의 승패보다는 과연 마지막 1명을 해치우고 여우가 사람으로 환생하느냐 하는가가 더 의미 있는 관심사가 될 터이다.

때는 신라시대이며 진성여왕(김혜정)이 왕으로 있던 어느 날이다.

여왕은 왕이지만 남편이 등장하지 않아 솔로인 것으로 보인다. 모든 솔로가 자유라는 장점을 최대 무기로 하듯이 여왕도 혼자 있음으로 해서 세상의 남자들이 다 상대가 될 수 있다.

여왕이니 이런 주장은 헛 된 것이 아니라 언제나 실현 가능하다.

여우가 아닌 여왕의 희생양은 막 변방에서 돌아온 김원랑(신영균) 장군이다. 이런 저런 보고가 끝나고 왕의 치사까지 마쳤으므로 원랑은 사랑하는 아내와 자식이 있는 집으로 얼른 달려가고 싶다.

하지만 여왕의 생각은 그와 다르다.

주연을 베푼다는 핑계로 장군을 잡아 두려던 왕의 계획은 원랑이 지친 병사들을 부모 형제들에게 먼저 돌려보내자는 제의로 주춤한다.

이에 그 쪽으로는 비상한 머리가 작동하는 여왕은 원랑의 청을 반만 들어주고 반은 그렇게 하지 않는다.

병사들은 가고 장군은 도적을 물리친 무용담을 듣기 위해 왕의 처소에 남기로 한 것이다. 침대에 비스듬히 누운 여왕과 처분만 기다리는 장군과 누가 이길지 이것은 내기로 걸면 안 된다.

아무리 용감한 원랑이라 하더라도 여왕 앞에서 감히 영을 거역할 수는 없다. 육욕에 들떠 눈매까지 요염하게 변한 진성은 기어이 그 날 밤 장군을 차지하고 비록 미세먼지로 가득한 날이라 하더라도 빛나는 아침을 맞는다.

욕심 많은 여왕은 오늘 뿐 아니라 내일도 또 모레도 그런 아침을, 노곤함으로 사지가 풀어지는 그런 나날이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다.

고민 없이 원랑이 사랑하는 아내와 자식을 성 밖 멀리 내쫒은 여왕은 이제 근심 걱정이 없다.

여기서 궂이 널려 있는 사내 가운데 왜 하필이면 임자 있는 원랑에게만 여왕이 매달리느냐고 물을 필요는 없다.

남녀 관계는 하늘도 알 수 없고 진성여왕도 죽은지 1000년이 훨씬 더 오랜 일이라 물어 볼 수도 없으므로 그냥 이유없이 마음에 들어서라고 여겨두자.

남편 만날 날 만을 학수고대 하던 아내 여화(김지수)는 그러기는커녕 야밤에 쫓겨나는 신세니 그 팔자가 가련하다. 쫓겨만 났다면 <천년호>는 제작되지 않았을 것이다.

가다가 아내의 어린 아들은 맞아 죽고 아내는 겁탈의 위기에 처한다. 이미 하녀를 그렇게 한 도적들이 이번에는 마님을 원한다. 아내는 야수들을 피해 강물로 뛰어드는데 하필 그 곳은 천년호의 그림자가 어른거리는 곳이다.

아내도 자식도 죽었다. 나중에 소식을 들은 원랑은 피울음을 토한다. 아내가 뛰어든 강으로 미친 듯이 달려간다. 아내의 시체가 떠있다.

꺼내서 집으로 데려온 아내의 몸은 차갑기보다는 온기가 남아 있다. 물 속에서 하루 지난 시체라고는 사람들이 다 믿지 않듯이 믿기 어렵다.

그러거나 말거나 원랑은 정성스럽게 아내를 간호한다. 지성이면 감천이라고 아내는 스스로 감겼던 눈을 뜨고 살아난다.

천년호의 원귀가 아내의 몸속에서 다시 환생을 꿈꾸고 있다. 원귀는 점프하고 날고 공격해서 왕의 신하를 죽이고 여왕의 침실까지 들어와 그렇게 하려고 한다.

근심거리가 생긴 여왕은 해법을 찾기 위해 스님을 부르고 스님은 중생을 돌보라는 하나마나한 한 소리를 하다가 여왕에게 꾸중을 듣는다.

염불 외는 듯 한 이런 저런 말들이 오가다가 선왕인 무열왕의 신궁으로 요괴를 잡을 수 있다는 스님의 꾀를 듣고 내가 듣고 싶어 하던 말이 그것이다 라고 여왕은 만족해한다.

신궁의 옆에는 원랑이 있고 요괴를 처치할 특명을 받는다. 요괴가 아내인 줄을 모르는 원랑은 어명을 받들자 요괴와 일대 결전을 펼치는데...

여기서 또 원랑과 요괴가 대결하면 누가 이기느냐 하는 질문이 나올 법도 한데 이 질문 역시 생략하자. 아내와 남편의 대결. 너무 잔인하지 않은가.

할 이야기는 앞으로도 많이 있지만 이쯤 해 두자. 어느 정도 줄거리는 나왔고 결말도 짐작해 볼 수 있기 때문이다.

<천년호>는 우리나라 괴기 영화의 수준을 한 단계 끌어 올렸다는 평가를 받는다. 60년 대를 주름 잡으면서 한국영화를 이끌었던 신상옥 감독의 작품이라는 것을 염두에 두면 더 이상 줄거리를 옮기는 것은 무의미 하다.

입가에 피를 흘리며 어색하게 하늘을 나는, 지금의 시지 그래픽 수준과 비교해 보고 어이없어 하지 말고 그 짜임새와 연결고리가 얼마나 단단한지를 먼저 봐야 한다.

다 보고나면 그런 것 보다는 한 절대 권력자에 의해 무너져 내린 가정과 남녀의 애달픈 사랑이야기만 남게 된다. 목련이 활짝 핀 이 봄날에, 여화와 원랑의 넋을 위로해 보는 것도 의미 있겠다.

국가: 한국

감독: 신상옥

출연: 신영균, 김지수, 김혜정

평점:

: 삼국사기와 삼국유사에 따르면 진성여왕은 음탕했다.

모든 여왕이 다 그런 것은 아니었지만 여왕 진성은 특히 미소년을 탐했다. 국정을 돌보는 정사보다는 다른 정사에 더 신경을 썼으니 나라꼴이 말이 아니었다. 도적은 들 끊었고 각지에서 반란이 일어났다.

조카에게 왕위를 넘겨주기 까지 여왕이 한 치적은 개인의 영달 외에는 두드러진 것이 없다. 벌은 하늘이 할 일인데 외면하거나 그럴 의도도 없다면 사람인 누군가가 나서서 그 일을 해야 했다.

< 천년호>는 바로 그런 일을 하는 사람과 원귀의 이야기라고 할 수도 있겠다.

남자를 여왕에게 빼앗긴 여화가 혼이 되어서도 복수하고자했던 진성은 처음의 시작은 그렇게 나쁘지 만은 않았다고 한다. 선정을 베풀고 나름대로 국방을 튼튼히 하는 방책을 세우기도 했다나.

하지만 숙부이자 남편이었던 상대등 위홍이 죽자 심리적으로 나태해지면서 개인과 나라의 기장이 급속히 무너지는 참사를 낳았다고 한다.

여왕의 남자들과 간신들이 서로 권력을 탐하기 위해 벌이는 궁중암투는 상상만으로 숨이 벅차다. 누군가는 말한다. 천 년 전의 기시감이 오늘날에도 보였었다면 역사는 ‘한 번은 희극으로 또 한 번은 비극’이라는 말을 곱씹게 된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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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약뉴스 이병구 기자  |  bgusp@newsm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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