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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종편집 2024-04-26 06:02 (금)
18.두개골을 받치는 '경추의 힘' 믿고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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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두개골을 받치는 '경추의 힘' 믿고싶다
  • 의약뉴스 이병구 기자
  • 승인 2018.04.01 14:26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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윙 하는 기계음 소리가 더 크게 들렸다. 안으로 침이 넘어갈 때 목젖이 움직였고 그것이 귀를 자극한 모양이었다.

나는 속으로 일곱 개의 경추가 지나가는 자리를 기억했다. 경추 중에서 첫 번째로 위치한 환추가 움직이는 예민한 감각도 확인했다.

이 녀석이 무거운 내 두개골을 기둥처럼 떠받치고 있다. 환추란 녀석, 얼마나 뼈가 단단하면 머리를 하루 종일 들고 다녀도 힘든 줄 모르지.

기계가 멈추자 이인은 고개를 앞뒤로 움직여 봤다. 그러자 턱에 걸렸던 줄이 자연스럽게 빠져 나왔다. 이번에는 좌우로 돌리고 길게 회전 시켜 보았다.

돌아가는 것이 조금 부드러워진 느낌이다. 경추 가운데 두 번째 척추인 축추가 아직은 제 역할을 하고 있다.

아, 목 디스크는  목을 위로 잡아 늘리는 것이 치료하는 것이구나.

이런 것인 줄 진작에 알았더라면 베개 위애 머리를 박는 일은 없었을 것이다. 목이 아프고 팔이 저릴 때 늘 아래로만 흐르는 피가 위로 올라가고 싶어서 그러는 줄로만 알았다.

물구나무 서면서 경추는 더 심하게 압박을 받았고 나는 알지 못하면서 자가 처방을 내린 무지와 용기에 뒤늦은 후회를 실으며 혀를 내둘렀다.

이인이 달리면서 고개를 숙인 이유는 여기에 있었다. 숙인 고개 때문에 경추가 자연스럽게 벌어지고 그래서 눌렸던 목의 신경이 펴지면서 편한 상태가 됐던 것이다.

그런 식으로 얼마를 더 춤추면서 달렸다. 몸을 이리저리 많이 흔들자 아랫 배의 출렁 거림이 확연했다.

며칠 되지 않았지만 운동효과가 나타나기를 바랐는데 아직은 아니다. 파도처럼 일렁이는 뱃가죽을 원망하는 대신 더 출렁 일 수 있도록 가볍게 받아들인 숨을 가쁘게 내쉬었다.

발끝이 아니라 발등을 보면서 그렇게 했으며 시야는 한 곳에 두고 이리저리 초점을 옮기지 않았다.

푹 꺽인 고개 때문이라도 속도는 나지 않았고 나지 않는 속도를 억지로 내려고도 하지 않았다. 더 갔으면 지금쯤 낙오 했을지도 모른다.

갑자기 다리에 힘에 쫙 빠지는 느낌이 사타구니 아래서부터 전해져 왔다. 7 킬로미터 쯤 달렸을까.

이만하면 어지간 한데도 아직 돌다리 부근은 보이지 않는다. 이제 하늘은 완전히 터졌다. 폐쇄구간을 지나자 저쪽에서 열지어 달리는 동호회 회원들이 다가오는 것이 보였다.

하나같이 말랐으며 대열의 맨 앞쪽에는 여자를 세웠다. 3열 횡대로 지나가는데 12명 쯤 됐다. 제법 많은 숫자다. 지날 갈 때 신발 울리는 소리가 났다. 명령을 받고 돌진하는 공수부대원들의 워커 발 소리처럼 저벅저벅 울렸다.

어디까지 가서 어디서 멈출지 알지 못했지만 저 속도라면 상당한 수준의 마라톤 클럽일 것이다. 속도를 눈여겨 봤지만 그 쪽에 끼어서 함께 달리고 싶다는 생각은 들지 않았다.

그들처럼 빠르고 싶지도 않았다. 대책 없이 달리는 이인과는 달리 그들은 어떤 목적이 있을지 모른다. 4월에 열리는 풀코스에 도전하기 위한 연습일지도 몰랐다.

알고 싶지도 않은 것을 굳이 생각하면서 앞으로 느리게 몸을 밀었다. 목동 쪽으로 향하는 고가도로가 크게 아래로 휘어지기 시작했다.

그 아래가 징검다리다. 50미터 지점이다. 다 왔으니 속도를 내 본다. 이마에 바람이라는 것을 맡고 싶다. 땀이라는 것도 흘리고 싶다.

세게 몸을 밀고 나간다. 그 순간 경추가 받는 압박이 느껴진다. 두개골을 지탱하고 있는 뼈의 물림에 이상이 생기면 안 된다. 그럼에도 나는 달리던 속도를 줄이기보다는 더 세게 한다.

발바닥이 지면에 닿는가 싶더니 다시 떨어지고 떨어졌나 싶은데 다시 닿는다. 아직은 두개골이 경추와 분리될 일은 없다. 척추와 떨어지지도 않을 것이다. 힘을 낸다. 안간힘을 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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