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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 경추의 탈골, 문제는 거북목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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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 경추의 탈골, 문제는 거북목이었다
  • 의약뉴스 이병구 기자
  • 승인 2018.03.29 16:34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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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지만 강하게 그를 불렀다. 명령하는 투였다. 그가 고개를 돌렸다.

흩어져 있는 고참들이 언제 찾을지 몰랐다. 그 전에 호각소리로 작업종료를 알릴지 알지 못했으므로 이인은 급했다.

서둘러 담배를 물고 하나를 불붙여 손 짓 하면서 나고가 오기를 기다렸다. 작업하는 것처럼 그가 느리게 다가왔다.

나는 옆자리를 내주고 3달 후면 휴가 간다는 사실을, 상봉역에 도착해서 헤어지기 전에 술 한 잔 하자고 말했다.

대답을 바란 것은 아니었다. 예상대로 그는 말없이 담배를 받았고 말없이 하늘만 쳐다봤다. 하늘에는 노랫말처럼 뭉개구름이 떠 있었다.

지금 이 순간, 간섭 없이 누워서 담배를 필 수 있다는 사실이, 자유롭게 하늘을 쳐다 볼 수 있는 지금 나는 자유였고 나고 역시 자유였다.

그것이 사라지기 전에 좀 더 누워 여유를 부리고 싶은 심정은 나나 나고나 다를 게 없었다. 첫 휴가 이야기를 꺼낸 것은 동기들 있을 때나 가능했다.

그런 것을 이야기 하는 것은 빠진 것, 군기가 나간 것이었으므로 욕을 얻어먹거나 얼차려 대상이었다.

굳이 나는 한번 더 그 이야기를 했다. 생각 없이 나고라고 부른것에 대한 미안함과 그가 이 생활에서 조금 더 버틸 수 있는 힘을 주기 위해서 였다.

나고는 말없이 낫을 들고 하늘을 향해 이리저리 흔들었다. 작별인사를 하는 것처럼 낫은 이마 위에서 왔다 갔다 했다. 낫에 박자를 맞추듯이 잠시 후 그가 노래를 불렀다.

‘아무도 날 찾는 이 없는/ 외로운 이 산장에/ 단풍잎만 채곡 채곡 떨어져 쌓여 있네/ 세상에 버림받고/ 사랑마저 물리친 몸...’

뭐, 이런 게 다 있노.

낮게 깔리는 음이 낫을 따라 위아래로 흔들렸다.

나는 가만히 있었다. 달리 할 일이 없었고 그를 제지하고 싶지도 않았다. 노랗게 물든 싸리나무 사이로 들리는 사제노래는 씩씩하기 보다는 구슬펐다.

가사도 그랬지만 그가 평소답게 저음으로 낮게 깔아서 목소리를 떨 때, 나는 어떤 슬픈 사연 속으로 빠져들어 갔다. 사연이 많거나 심한 놈이구나.

나중에 안 일 이지만 그는 이 노래를 엄마에게서 배웠다고 했다. 중간에서 노래를 멈추고 그가 엄마 이야기를 할 때 목소리가 떨렸다.

노래도 끝났고 담배도 피웠으니 일어나야 했다. 그러기 전에 한 번 더 파란 하늘을 쳐다봤다. 사라지기 전에 그렇게 해야 한다는 듯이 그렇게 보고 있다가 나도 낫을 들었다. 한 묶음을 더 베야 한다.

그것도 고참보다 더 많이, 더 빨리해야 한다. 

뭉치 하나는 끝냈으므로 나머지 한 뭉치만 만들면 된다. 일어나서 나는 급하게 한 낫질 덕분에 짧은 시간에 모아 놓은 곳에 몇 번을 더 모아 놓고 잠시 허리를 폈다. 그리고 베기에 적당한 곳으로 가기 위해 몸을 돌리면서 나고를 힐끗 쳐다봤다.

그가 내 시선을 느끼지 않도록 표나지 않게.

나고는 그대로 싸리나무에 기대 있었고 일어나려고 하는 기색이 없었다. 나는 그를 부르지 않았다. 칡 끈을 끊어 두 단으로 묶어 놓은 뒤에서야 가자고 이제 가야할 시간이라고 막 헤어지려는 연인에게 하듯이 조용히 말했다.

일어나는 것도 느린 나고의 어깨위에 싸리단을 얹혀 놓고 나는 앞장서 집합장소로 내려왔다.

어깨위에 아직도 싸리나무가 얹힌 듯 가볍지 않은 무게감이 엄습했다.

비는 그치지 않고 그 상태로 더도 덜도 아닌 출발 때처럼 흩뿌렸다.

이제 천을 오른쪽에 끼고 달린다. 천까지 덮었던 복개구간을 지나자 밝은 빛이 확연 했고 안도하는 마음이 생겼다.

절뚝거리듯이 춤을 추듯이 오목교 쪽에서 만났던 모자 쓴 사람 흉내를 내면서 나는 아래쪽으로 몸을 놀렸다. 오늘도 낙오는 없다.

랩 타임은 줄지 않고 늘어나고 있지만 그래도 멈추지 않는 것은 다행이다. 

여름 용 운동화 사이로 바람이 들어온다. 이 정도 거리를 달렸다면 땀이 나야 하지만 나기도 전에 식는지 발가락 사이로 그것이 들어왔다 나가는 것을 느낀다.

운동 효과가 있을까. 이런 속도로 달리면 되레 몸이 단련되기보다는 내성이 생겨 더 나빠질 수도 있다.

고개를 숙인다. 들고 달릴 만큼 달렸다.

그러자 뻣뻣한 뼈에 기름이 쳐진 듯이 부드럽다. 왼쪽에 생긴 거북목이 아직 완전하지 않다는 증거다. 지난번 왼쪽 팔이 저린 증상을 이야기 했다. 수술 후유증이 아니었다.

더 이상 버틸 수 없을 때 만난 정형외과 의사는 조각난 뼈가 다시 조각났기 때문이라는 나의 진단을 신뢰하지 않았다.

팔뚝 엑스레이 상에는 아무런 이상이 없었기 때문이다. 수술은 잘 됐고 뼈가 제대로 붙었다고 그 의사는 말했다.

아무래도 목 사진을 한 번 찍어 봐야 겠다고 말했을 때 나는 속으로 돌팔이라고 단정했다. 목과 손가락은 멀리 떨어져 있었다. 그것을 알 고 있었던 이인은 무슨 상관이냐고 기어이 물었다.

하지만 엑스레이를 찍자는 제의를 거절하지는 않았다. 목뼈는 앞으로 구부러져 있었다. 경추 몇 번 과 몇 번 사이가 어긋났다고 말하면서 의사는 지휘봉으로 그 곳을 집었다.

거북이 아시죠? 그가 이렇게 말했을 때 나는 안다고 대답하지 않을 수 없었다.

목을 길게 빼고 살기위해 필사적으로 도망치는 녀석을 나는 신비한 동물의 세계에서 여러 번 봤다. 죽어라고 빨리 달리지만 너무 느려 결국 재칼에게 잡혀 먹던 그 느림보 거북이 말이다.

녀석이 달고 있던 목 다시 말해 거북이 목이 나의 목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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