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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종편집 2024-04-19 17:22 (금)
15.이번에는 스티로폼, 지구에서 사라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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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이번에는 스티로폼, 지구에서 사라지다
  • 의약뉴스 이병구 기자
  • 승인 2018.03.28 10:46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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떠 있는 하얀 물체가 선명하다. 아래로 흘러가는 것을 보니 느려도 유속이 있는 모양이다.

아직은 평탄한 곳이라 처음에는 정체된 것 처럼 보였으나 뛰는 것인지 걷는 것인지 분갈 못할 속도로 처지다 보니 따라오는 흰 물체와 보조가 맞는다.

스티로폼이다. 다시 절대자에게 감사하면서 간구한다.

지난번에 오염 물질 내뿜었던 오토바이를 지구 밖으로 날려 보내 주셔서 고맙습니다. 두 번째 부탁은 저 하얀 물체, 가로등 불빛으로 더욱 뚜렷한 형상인 저것을 감쪽같이 사라지게 해주세요.

기도가 끝나자 절대자가 왔다. 이인은  절대자가 내리는 명령대로 눈을 감자 오토바이가 그랬던 것처럼 하얀 것도 그렇게 시야에서 사라졌다는 것을 알았다.

걷을 때라면 터벅터벅, 지금은 엉거 주춤이다. 서지도 그렇다고 앉지도 않고 나아가기는 하지만 머뭇거린다.

백만 한 번 하고도 팔이 제대로 굽어 졌다 펴졌다 하는 에너자이저는 벌써 접었다. 이대로, 이 페이스대로 가야 한다.

욕심을 내보려는 의지도 기력도 없다. 군가를 부르던 호기는 온데 간데없다. 다시 떠올리는 것조차 역겹다. 아직 그는 페인트칠을 하지 않고 있다. 물감을 개는 중인가.

찬찬히 보려다 느닷없이 달려들까 봐 못 본 척 하고 지나친다. 야밤에 음침한 곳에서 무언가 하는 사람은 꼬리를 치다가도 갑자기 이를 드러내는 애완견처럼 예측 불허다.

예상할 수 없는 미래는 불안하다. 달리면서까지 그런 편하지 않은 마음을 달고 싶지 않다.

한 참을 그런 자세로 나아가니 구로 1교 푯말이 다시 보인다. 오늘도 낙오는 없다.

‘나고’ 별명을 가졌던 이등병은 나의 동기였다. 입대해서 야자를 함께 나누는 그런 사이였다. 덩치는 크고 생김새는 우락부락 했으나 마음은 그와 달랐다.

돌아가는 머리도 마음처럼 느리고 유순했는데 그것이 고참 들 눈에는 고문관으로 보였다. 나고의 다른 별명은 고문관이었다.

나고 라고 불러 한 번에 돌아보지 않으면 고문관이라는 다른 이름이 불이 나게 튀어 나왔다. 고문관이 대개 그러하듯이 그는 별명처럼 빠르지 않고 느렸다.

조인트가 까이고 주먹질이 날아왔지만 잘 바뀌지 않았다.

피엑스에서 닭발을 사 먹을 때 이인은 부르면 대답을 빨리 하고 대답한 다음에는 처다만 보지 말고 빨리 부른 사람에게도 달려가라고 말했다.

알았다고 나고는 고개를 끄덕였으나 그 다음날도 그는 그러지 않고 고문관 새끼라는 욕을 들었다.

그 때 나고는 쓰러졌을 때처럼 흰자위가 위로 올라갔다. 까일 때보다도 욕지기를 더 싫어한다고 나는 느꼈다.

그러나 부르는 고참은 그것을 알지 못했다. 설사 안다 해도 고려사항이 아니었다. 나고는 늘 욕을 먹었고 늘 맞았다. 몸도 느렸고 머리도 느렸다. 무엇을 외워대는 것도 맨 뒤였다.

그는 동기인 나에게도 쉽게 마음을 열지 않았다. 닭발을 먹을 때면 가끔 함양에 어머니가 계신다고 말했다.

그 어머니는 ‘산장의 여인’ 이 십팔번이고 노래를 아주 잘 한다고 했다. 어느 가을 날 빗자루를 만들기 위해 싸리나무를 꺾으러 산으로 갔다. 나고는 작업도 느렸다. 빨리 하고 좀 누워서 하늘을 보고 싶었는데 나고는 느려서 나는 속이 터졌다.

벤 싸리를 벼개 삼아 높은 하늘을 배경으로 한라산을 깊고 더 깊게 빨고 싶었다. 조를 짜서 나왔으므로 나는 그의 몫도 거들었다. 나도 모르게 나고라고 불렀다. 나와 눈이 마주친 나고의 흰자위가 위가 아닌 옆으로 찢어 졌다.

섬뜩했기도 했고 해서는 안될 말을 해서 미안하기도 했다. 빨리 끝내고 담배한대 피자고  나는 서둘러 얼버무리면서 그가 모아놓은 싸리를 묶기 위해 내것과 합쳤다. 그는 낫을 들고 있었으나 나무를 베지 않고 멍하니 고개를 들어 하늘을 쳐다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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