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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 말초신경의 지배영역을 건드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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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 말초신경의 지배영역을 건드리다
  • 의약뉴스 이병구 기자
  • 승인 2018.03.26 16:17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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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날은 그 부위가 예민하게 반응한다. 오른손으로 왼쪽 팔꿈치를 움켜쥔다. 움직이지 않고 방구석에 가만히 있다면 잘게 부서진 뼈 조각을 꿰맨 바로 그곳에서 신경통을 감지할 수 있다.

집에서 뛰쳐나오기 직전 그런 경험을 했다. 순간적으로 전기에 감전된 듯이 갑작스럽게 팔뚝을 훑고 손가락 쪽으로 무언가 휙, 휙 지나간 느낌이 들면 바로 녀석이 찾아온 것이다.

깜짝 놀랄 즈음이면 언제 그랬느냐는 듯이 표정관리를 해야 할 만큼 왔던 통증은 순식간에 사라진다.

길게 이어지지 않아서 고맙기는 하지만 한 번이 아니고 자주 그래서 다시 말해 고질병, 만성으로 굳어져 고민이다. 엄지손가락으로 바늘이 지나간 자리를 어림짐작해 꾹,꾹 눌러 본다. 압통이 느껴지면서 화끈 거리는 증상이 나타난다.

찌릿한 놈이 다시 온 것이다. 예리한 칼로 쑤시거나 끝이 뾰족한 나무 조각으로 깊지 않고 얕게 푹 찔렀다 빠르게 빼는 느낌이다. 신경이 눌렸다.

말초 신경이 지배하는 영역을 건드린 것이다. 그러려고 그런 것이 아닌데 그것이 지나가는 자리를 막았으니 감수해야 하는 것은 내 몫이다. 천장에서 물리 꽐꽐 쏟아진다.

도로가 구멍이 뚫렸는지 아니면 배수로가 터졌는지 가야 할 길 놔두고 자전거 길로 물길이 났다. 가볍게 점프해 뛰어 넘는다.

다시 전진이다. 고개를 직각으로 들고 가슴을 들이밀듯이 앞으로 향한다. 이렇게 내달리면 신경통쯤은 걱정할 필요가 없다.

언뜻 검은 바탕의 노란색 글씨가 써진 푯말을 보니 구로 1교가 1.4 키로 미터라고 써 있다. 잘 못 봤을 수도 있으나 몸이 따뜻해 지는 걸 보니 도달한 거리가 얼추 비슷하다.

감이라는 것이 대충 맞을 때가 있다. 아직 더 가야 한다. 팔팔한 몸이 자꾸 앞으로 밀어낸다. 연료는 충분하고 남아 있는 거리는 그만큼 길다. 대림역을 가볍게 지나친다.

역 주변은 대낮같이 밝다. 위로 언뜻 움직이는 사람들이 보인다. 통 닭 냄새도 나고 양고기 비릿한 피 냄새가 빗물에 씻겨 온다.

분주한 위쪽과는 달리 아래 쪽은 텅 비어 있다. 마주 오는 사람도, 앞질러 가는 자전거도 좀처럼 보기 힘들다.

앞 땅도 내 땅 뒤 땅도 내 땅이다. 이런 느긋한 기분은 지치기보다는 막 충전된 전기차처럼 힘이 넘친다. 속도를 낸다. 계기판 올라가는 눈금이 가운데를 넘어섰다. 이 정도로 엔진의 과부하를 걱정할 필요는 없다.

정해진 이상의 출력은 아직 내지 않았다. 무릅을 올리고 양팔을 더 빨리 흔들면서 막판 스퍼트처럼 객기를 부려 본다. 헉, 헉 숨이 차오르고 빗방울은 더욱 세차다.

천의 수량은 아직 늘고 있지 않다. 여기저기 수량이 급격히 올라가는 지점이므로 비가 오면 피하라는 안내판이 보인다. 순간 대피계단을 확인한다. 관악산에서 물이 갑자기 들이차면 여기로 오면 되겠다고 피신 지점을 눈여겨 본다.

구로 디지털 단지역이다. 역을 표시하는 어떤 것도 보이지 않지만 뚫린 구멍사이로 보이는 건물이 그곳임을 확인 한다. 더 갈 수 있다. 신대방역을 통과하면 보라매공원이 나온다.

초행길이지만 그렇다는 것을 안다. 빠져 나오는 구멍도 어렵지 않게 찾을 수 있다. 내친 김에 트랙이 잘 갖춰진 공원을 한 바퀴 돌고 싶다. 풀코스 마지막 구간은 언제나 이런 곳이 아닌가.

더 힘을 낸다. 엑셀레이터를 가볍게 밟아 본다. 힘이 장난이 아니다. 독일차를 모는 기분이 이렇까. 힘을 주지 않았는데도 마구 달려 나간다. 그러나 결코 가볍지 않다.

묵직한 150 킬로 짜리 돌직구다. 이 만 하면 그 곳이 가능할 것이다. 시야를 멀리 둔다. 터널의 끝이 보이지 않는다. 천장도 막혀있다. 하늘도 잘 보이지 않는다. 물소리는 고요하다.

길은 세 갈래로 갈라져 있다. 외부로 나가는 작은 길은 우측으로 휘어져 있다. 둘이 앉기에 딱 맞는 나무 벤치도 있다. 그림이 나온다. 누군가 이런 장면을 사진 말고 그림으로 그리면 오래된 성과 잘 어울릴 것 만 같다.

아는 화가를  초대하고 싶다. 바짝 둘러붙어 있는 남녀의 등이 보인다. 처음에는 사람인 줄 몰랐다가 지나칠 때 깜짝 놀랐다. 한 참 만에 사람을 만나니 사람이 내색은 안해도 편안한 기분은 아니다.

정신을 차린다. 그러자 저 앞에서 누군가 움직인다. 손에는 긴 것을 들고 있다. 아직은 그것이 무엇인지 안 보인다. 붉은 색 가방의 공구함 같다. 못 본척 무시한다. 안심할 거리까지 와서 돌아보니 기둥벽에 다가가서 무언가 하는 것 같다.

이 시각에 그림을 그리는 사람이다. 위치를 확인한다. 돌아 올 때 어떤 형상으로 표현 됐는지 호기심이 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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