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러난 내장은 눈처럼 하얗다. 입에서 나는 것처럼 그곳에서도 김이 무럭무럭났다. 좀 전 까지만 해도 필사적으로 고함을 외쳤던 한 생명체의 모습이라고는 찾아 볼 수 없었다.
돼지는 더는 스스로 움직이지 못했고 스스로 멱을 따는 소리를 지르지 못했다. 껍질이 벗겨진 돼지의 네발은 이제 자유가 됐다. 죽어서 자유를 얻은 돼지의 네발은 허공에서 제 멋대로 움직였다.
돼지의 죽음은 나무위 소년의 가슴을 조금은 아프게 했다. 그는 나무에서 내려와 둘러선 사람들 사이를 비집고 들어갔다.
커다란 나무 도마 위의 내장은 다른 그릇에 옮겨졌다. 대신 붉은 색 덩어리가 그 위에 올라왔다. 도끼를 들었던 사람은 그것을 들고 간이라고 말했다. 피 묻은 그의 손이 간을 쓱쓱 잘랐다. 칼질은 쉬워 보였다.
힘들이지 않고 붉은 덩어리를 여러 조각을 갈랐다. 사람들은 간을 들고 간을 보았다. 서로 권하면서 손에 집은 간을 굵은 소금에 찍어 간을 보면서 먹었다. 먹고 싶었다.
눈치 챈 도끼 잡은 남자가 한 조각을 주었다. 뻗친 손도 뻘겋고 간도 그랬다. 나는 뒷걸음질 쳤다. 먹을 수 없어서 라기 보다는 먹어서는 안 될 것 같은 무서운 생각이 들었다.
낄낄 거리며 사람들은 간을 먹고 옆에 있는 막걸리 잔을 입으로 가져갔다. 붉은 피와 흰 술이 들락거린 입술 주위는 보기에 더러웠다.
반환점을 돌면서 나는 나도 모르게 입술을 훔쳤다. 돼지고기 냄새는 어느 새 사라졌다. 생각이 사라지자 다리 근육이 위로 당겨졌다.
4킬로미터 지점이다. 출발 지점에 써 놓은 안양천 합류 지점이 2킬로 미터 정도고 거기서 오금교를 지나서 다시 그 지점 까지 왔으니 얼 추 계산한 결과다. 묵직한 알통의 힘을 하체로 받으며 이 정도 컨디션이면 가던 방향을 돌리지 않고 곧바로 오목교 쪽으로 나아갈 수 있다.
이인은 몸을 집으로 향할까 하다가 바로 더 넓어진 안양천 쪽을 향해 발길을 뻗었다. 이제부터는 이를 좀 물어야 한다. 생각이라는 것도 계속 해야 한다.
낙오하지 않고 돌다리 까지 가려면 별 수가 없다. 그것이 없으면 온 몸의 괴로운 고통을 이겨 낼 도리가 없다. 아무리 머리로 받는 고통이 아니라 몸으로 받는 고통은 배겨 낼 수 있다고 장점하고 있지만 축 쳐진 뱃살을 내려다보면 허세임이 금세 탄로 난다.
멈추고 걷는다고 해서 누가 시비할 사람 없다. 쳐다 볼 사람도 없고 설령 본다고 해도 부끄러울 이유가 없다.
다만 거기까지 가겠다는 나와의 약속을 어긴 것은 그것보다 더 한 형벌이다. 갈수 있다고 했으니 가야 한다. 이 정도도 지키지 못하면서 계획 했던 무슨 일을 해낼 수 있을까. 무엇을 하겠다고 다짐을 하니 멀리 다리위로 지나가는 자동차 서치라이트가 가깝다.
길의 양쪽에 있는 널따란 공터는 낮 동안에 갈아 엎어졌다. 속살을 드러낸 흙이 그것을 말해 주고 있다. 냄새는 확실하다는 것을 증명한다. 아주 고운 냄새는 아니다. 뻘 속에 오래 갇혀 있던 시궁창 냄새도 아니다.
손을 뻗어 안면 정중앙에 있는 돌출된 부분을 만져 본다. 가쪽 큰 연골을 따라 작은 콧방울연골이 제대로 붙어 있다. 손을 떼자 다시 비온 뒤의 그 냄새가 들어왔다. 후각상피세포가 정상으로 작동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