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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 회색 상의, 회색바지, 회색 운동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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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 회색 상의, 회색바지, 회색 운동화
  • 의약뉴스 이병구 기자
  • 승인 2018.03.17 09:1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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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문 밖으로 보이는 풍경은 가릴 것이 없다. 보이지 않던 산정이 가까이 있다. 공사장의 타워 크레인은 손을 뻗으면 잡힐 것만 같다.

어제 만 하더라고 그런 것들은 보이지 않았다. 겨우 밤이 지났을 뿐인데 색다른 오늘이 다가왔다. 기다려지는 것은 퇴근이다.

달기기를 시작하고 나서 달라진 것은 마음의 여유다. 성급하게 굴지 않기로 했다. 넉넉한 마음으로 대할 수 있는 것은 그렇게 하기로 했다.

간단하게 먹는다. 몸을 가볍게 하고 뛸 때 어떤 기분인지 느끼고 싶다. 회색 체육복 상의를 입고 역시 비슷한 색의 바지를 입는다. 공교롭게도 신도 회색이다. 오늘은 온통 회색이다.

하늘은 푸른데 회색으로 감싸니 그런 대비도 괜찮다. 이인이 싫어하는 색은 없다. 한 때 회색을 꺼렸으나 지금은 붉은 색보다도 좋아한다. 철없던 시절 회색인간을 저주한다는 이유로 모든 희끄무레한 것을 경멸했다.

과거의 시간이었다. 회색인간이면 어떤가. 늑대인간도 있는데 회색인간쯤은 점잖은 인간 축에 든다는 것을 세월을 통해 알았다.

개울물이 불었다. 소리도 요란하다. 밤새 조금 비가 내렸나 했는데 그게 아니었다. 관악산은 요란한 소리를 내면서 물을 아래로 쏟아냈다.

구멍 뚫린 돌다리 아래로 온천수처럼 물이 끓어올랐다. 빙빙 돌기도 했다. 쌓였던 쓰레기는 넘치는 물과 함께 한강으로 떠내려갔다.

가볍다. 과연 몸에 음식물이 반쯤만 차니 뛰는데 걸림돌이 없다. 작은 언덕을 가볍게 치고 올라간다. 몬주익 언덕을 올라갈 때 황영조의 기분이 이랬을까.

다리는 새처럼 날렵하고 몸은 반쯤은 붕 떠 있다. 가지런히 심은 나무들이 삼각대 버팀목에 의지해 있다. 싹이 오르면 어떤 나무인지 알 것도 같다. 아직은 나무 이름을 함부로 말하지 않겠다.

겨울을 버틴 나무가 연두색 잎은 피어 낼 날이 멀지 않았다. 그 때 가서 내가 너의 이름을 불러 주리라, 다짐한다.

심은 나무 주위로 물을 준 흔적이 있다. 호미로 주변을 둥그렇게 긁어 놓고 그 위에 물을 부었다. 나 없는 사이에 누가 이런 예쁜 짓을 했는지 만나면 등을 두드려 주고 싶다.

그런데 그 이전에 누군가는 커다란 포플러 나무를 벴다. 나쁜 손은 배후가 있는 누군가의 지시에 의해 그렇게 했다. 뒤에서 그렇게 하라고 조종한 사람을 찾고 싶다. 왜 그랬는지, 숨어 있는 네가 아니라면 누가 시켰는지 따지고 싶다.

심어도 부족한데 십 수 년 자란 나무를 싹둑 잘랐다. 자른 나무는 가지런히 정리해 놓고 며칠 후 보니 치워졌다. 개인이 한 짓이 아니고 공무원이 그렇게 한 것이 틀림없다.

이곳의 관할 구역을 영등포구가 아닌 구로구다. 그들은 이름을 알 수 없는 잎이 넓은 나무도 잘랐다. 버드나무도 그렇게 했다. 나무를 자른 그들이 심은 그들과 동일인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자 소름이 돋았다.

같은 구역에서 일어난 일이기 때문이다. 울화와 같은 뜨거운 것이 아랫배를 타고 올라온다. 달리면서 생긴 자연스런 열기와 섞인다.

통신사 안테나가 보인다. 그들의 사주를 받고 그랬나, 하는 막연한 생각을 하자 어느 새 다리는  굴다리를 통과하고 있다.

지린내는 여전하지만 이번에는 길게 가지 않는다. 넓어진 폐 덕 분인지 달리면서 참아도 숨이 가쁘지 않다. 그 상태로 터널을 통과한다.

그 순간, 정확히 그 때 자전거가 아닌 작은 오토바이가 굉음을 내면서 앞질러 간다. 꽁무니에 연기를 달고 작은 다리를 건너 하류 쪽으로 사라진다.

프랜차이즈 치킨 로고를 단 붉은 철가방과 함께 . 날이 좀 풀렸다고 누군가 배달음식을 시켰나.

고개를 돌리고 서둘러 코를 막는다. 막았지만 늦었다. 이미 이산화탄소는 코를 지났다. 무수한 코털도 그것을 막지는 못했다. 허용기준치를 넘은 공해는 폐에 당도했다.

나는 쪼그라드는 세단계로 나눠진 맨 아래 폐에 그것이 살짝 얹치는 기분을 느꼈다. 내가 아무것이나 할 수 있는 절대자가 된다면 저것부터 없애 버리리라, 이를 악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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