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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9. <안나카레리나> (187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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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행 2018.02.19  17:32: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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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는 밤에 이뤄지기도 하지만 기차역에서도 이루어진다고 말하면 억측일까.

톨스토이의 대표작 <안나카레리나>를 읽어 보면 이런 말도 가능하다는 생각이 은연중에 든다. 모스크바의 기차역에서 안나와 브론스키가 만나기 때문이다.

이 만남은 운명적이다. 사람의 목숨과 관련됐다는 말이다.

두 사람이 만났을 때 역전은 약간의 혼란이 있었고 열차에 사람이 치어 죽는다. 안나가 달려오는 기차에 몸을 던진 곳도 바로 번잡한 기차역이었다. 그러니 역사는 기차역사에서도 이루어진다는 말이 과하지 않다.

오블론스키는 집의 가정교사와 바람이 났다. 프랑스 여자는 이후 나오지 않지만 결혼 구년 만에 터진 그의 외도는 '행복한 가정은 모두 엇비슷하고 불행한 가정은 나름대로 이유가 있다'는 유명한 첫 문장을 낳았다.

외도가 머리말을 장식했으니 이 책의 핵심 주제도 다른 것이 아닌 바로 그것이 되겠다.

그 당시는 흔했을 부는 바람이었지만 남편이 있는 여자가 느끼는 남자의 그것은 예나 지금이나 가슴 한구석이 뻥 뚫리는 배신의 또 다른 태풍으로 몰아쳤을 것이다.

한바탕 회오리로 평지풍파를 몰고 온 오블론스키는 이제 뒤로 빠진다. 파탄의 위기에 직면한 그의 가정을 지켜주기 위해 여동생 안나가 올케 돌리를 다독이기 위해 오기 때문이다.

마침 청년 장교 브론스키도 역전으로 향하고 있다. 그래서 인간의 힘으로는 어찌할 수 없는 운명이라는 단어가 서두에 나온 것이다.

두 사람은 1초도 안 되는 짧은 순간에 눈빛을 교환했지만 그 찰나에 이미 둘은 맺어질 것이라는 어떤 절대적인 힘에 압도당했던 것이다.

브론스키의 눈에 들어온 안나의 첫 인상은 " 붉은 입술 사이를 팔락팔락 기어 돌아다니기라도 하듯 짓눌린 생기" ( 문학동네, 박형규 옮김, 2009)라는 표현에서 보듯이 브론스키는 안나의 숨겨진 욕망을 들추어 내기로 작정한 듯 싶다.

안나의 노력으로 오블론스키의 가정은 지켜졌지만 안나 자신이 속한 알렉세이 알렉산드로비치(카레닌)의 가정은 무참히 깨졌다. 하나의 가정을 지키고 하나의 가정을 무너트린 것이다.

애초 임무를 완수한 안나는 그 때까지만 해도 아무런 문제가 없는 자상한 남편이 마중 나와 있는 상트페테부르크로 돌아간다. 기차 안에는 그녀 말고도 떡 벌어진 어깨에 웃음 짓는 잘 생긴 얼굴의 브론스키가 타고 있다.

그는 돌리의 여동생인 18살 키티의 사랑을 헌 구두처럼 버리고 8살 아들이 있는 30대 초반으로 추정되는 안나를 향해 역으로 돌진하는 기차처럼 앞으로 내달리고 있었던 것이다.

이념이나 지식이나 어떤 다른 무언가 연관된 끈 때문이 아니라 육체적 본능에 이끌려 두 사람은 어렵지 않게 합쳐진다.

오블론스키가 그랬던 것처럼 여동생 안나도 불어오는 바람을 피하지 않고 가슴을 열수 있는데 까지 열고 그것을 받아들인 것이다.

이쯤해서 안나의 남편인 고관대작이며 남부러울 것 없는 귀족의 상층부를 차지하고 있는 알렉세에게로 눈을 돌려보자.

그도 당연히 세상의 모든 남자처럼 자신의 부인만은 다른 남자와 살을 섞지 않으리라는 믿음이 깨지자 충격에 빠졌다. 설마 하던 의심이 안나의 고백으로 사실로 확인됐기 때문이다.

브론스키가 경마에서 떨어질 때 함께 있던 남편은 안중에 없고 행여 다치지나 않았을까 노심초사하며 정신이 나간 안나의 행동은 남편을 심히 불쾌하게 만들었지만 정작 더 놀라운 것은 그녀가 사랑하는 사람은 네가 아니라 브론스키라고 직접 털어 놓았을 때 일어났다.

여기서 알렉세이가 취할 수 있는 행동은 몇 가지가 될 것이다. 정부와 결투를 해서 죽이던지, 아니면 죽던지 하는 것이 있고 두 번째로는 이혼을 하는 것이고 아예 모른 척 하는 것은 마지막 수단이 될 것이다.

남편은 남자라면 당연히 해야 할 결투를 신청하지 않는다. 이혼도 피한다. 그렇다면 남은 방법은 눈을 뜨지 않고 감는 것이다. 가장 소극적인 방법을 그가 택한 것은 '쇼셜 포지션' 즉, 사회적 위치나 체면 때문이라고 해두자.

안나는 처음에는 이혼에 겁을 먹는다. 아들과 떨어져야 하는 모성애가 가슴을 아리게 한다. 그럴 줄 알았으면서도 막상 그렇게 되자 아들이 걸린 것이다.

그러나 나중에는 적극 원하는데 그것은 아들보다 브론스키가 더 중하다고 여겼기 때문이다. 브론스키는 결투를 원하면 좋으련만 그런 것을 하지 않으니 답답하다.

세간의 눈에는 사랑을 쟁취한 승리자의 부러움이 있는 반면 남의 부인을 빼앗은 파렴치한 놈으로 비치기도 한다. 그는 이런 고통을 당하느니 차라리 죽었으면 하는 마음에 권총 자살을 시도하지만 미수에 그친다. 총알이 가슴 한 복판을 뚫지 못하고 스쳤기 때문이다.

한 바탕 소란을 겪었지만 안나와 브론스키는 찢어지기 보다는 더욱 더 밀착됐다. 두 사람은 유럽으로 사랑의 도피행각을 벌이고 그 사이에 딸을 낳는다.

한편 브론스키에 버림받은 키티는 죽을 것 같은 마음의 상처를 온천여행으로 회복하고 레빈의 청혼을 첫 번째는 거절했으나 두 번째는 받아들인다. 브론스키가 안나에게 가버린 이상 다시 보니 레빈도 괜찮게 보였을 것이다. (여자의 마음은 이런 것이다.) 두 사람은 축복 속에 결혼한다.

레빈은 시골에서 농사를 지으면서 자신의 내적 만족은 물론 농부들을 이해하는 것처럼 행동하기도하고 생산성을 높이기 위해 이런저런 일을 하면서 한 때는 거짓이라고 여겼던 신앙에 관심을 기울인다.

자, 다시 안나에게로 가자. 안나가 주인공 아닌가. 잠시라도 우리의 안나가 빠지면 <안나카레리나>가 아니다.

안나는 유럽에서 돌아왔다. 하지만 모스크바 사교계는 그녀를 받아들이지 않는다. 천성이 요부인 그녀가 집안에서만 생활만 한다면 그녀가 아니라 누구라도 답답해 할 것이라는 것을 짐작할 수 있다.

과연 그녀는 뭇 사람들이 우러러 쳐다보는 클럽에 나가지 못하는 날이 계속되자 견딜 수 없는 상황에 이른다. 잠을 자기 위해 아편을 먹는 것도, 오직 브론스키만을 바라보는 것도 한계에 다다른다. 하지만 브론스키는 다르다. 그는 크게 행동의 제약을 받지 않는다.

안나는 의심한다. 그가 젊은 여자 때문에 자신을 버릴 것이라는 질투심이 온몸을 감싼다. 생각하면 생각할수록 의부 증은 심해지고 이제는 하루 종일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정신이 혼미한 상태에 이른다.

그는 브론스키를 벌주고 싶어 한다. 방법은 하나. 죽는 것이다. 죽으면 그가 슬퍼할 것이고 멋지게 복수한 셈이 된다. 그녀는 처음에는 누구나 그렇듯이 조금 망설였지만 나중에는 달려오는 기차를 두려워하지 않는다.

그녀가 죽었다. 주인공이 죽었으니 길고 긴 이 책은 끝나야 한다. 하지만 작가는 못 다한 할 말이 아직 많이 남아 있는지 안나가 죽은 지 두 달 후의 상황을 친절하게 설명하는 것을 잊지 않는다.

브론스키는 자비를 들여 기병 중대를 모집해 터키와 전쟁을 치르는 세르비아를 돕기 위해 의용군으로 참전한다. 사람들은 그의 정직함을 칭송하는데 주저함이 없다.

이제는 거의 신의 경지에 올라 신앙심 그 자체로 무장한 레빈은 삶에서 중요한 것은 무엇인지 고민에 고민을 거듭한다. 레빈은 작가가 하고자 하는 말을 대신하고 있다.

: 사람들은 안나를 불행하다고 대못을 박고 있다. 그럴 수 있다. 그러나 과연 안나는 불행한 여자일까. 그녀는 한 때 행복했다.

자신의 의지에 따라 사랑을 택했고 의지에 따라 죽었다. 이것을 불행이라고 말해야 할까. 삶은 행복이고 죽음은 불행이라는 이분법적 논리가 안나에게도 그대로 적용될까. 안나를 그렇게 하찮게 봐서는 안 된다.

안나 같은 여자에게 이런 말은 모욕이다. 안나는 자신의 삶에 충실했다. 원하는 삶을 살았고 원하던 사랑을 마음껏 받았다. 그리고 구차하게 사랑을 구걸하지 않았다. 사랑이 왔을 때 행복했고 그것이 떠났다고 생각했을 때 미련 없이 생을 버렸다.

그래서 나는 안나는 불행한 여자다 라는 말에 쉽게 수긍하지 않는다. 뭐, 그렇다고 끝까지 행복한 여자였다고 주장하고 싶지도 않다.

러시아의 1870년대 가정생활의 한 단편이라고 할까, 아니면 그 당시 사회의 모습을 사실대로 그렸으니 그러려니 하면 될까.

어쨌든 <안나카레리나>는 한 두 마디 말로 쉽게 정의되는 책은 아니다. 그런 책이 세권으로 나누어 출판될 만큼 두꺼울 리가 없다. ( 읽는데 고생했다. 내용이 어려워서라기보다는 한 없이 길었기 때문에 그것을 독파하는 절대시간의 투자가 필요했다.)

톨스토이의 사상과 철학과 이념이 집약된 총체적 지식의 산물이기 때문이다.

문학적 성취에서 그와 대등하게 비교되는 도스토엡스키는 "<안나카레리나>는 영혼의 넓고 깊은 심리 분석, 그리고 러시아에서 전례 없는 예술적이고 사실적인 묘사를 통해 인간의 죄와 악행에 대한 하나의 관념을 구현했다"고 표현했다.

토마스 만은 "<안나카레리나는>는 세계 문학 사상 가장 위대한 사회소설"이라고 극찬했으며 <롤리타> 의 작가 나보코프는 "<안나카레리나>는 세계 문학 사상 가장 위대한 연애소설의 하나이지만 단순한 사랑의 모험 소설은 아니다. 이 작품에서 톨스토이는 창조적 원숙의 정점에 이르렀다"고 상찬했다.

독자들은 대가들의 이런 평을 염두에 두고 자신에게도 이런 느낌이 오는지, 안 오는지 오려다 말았는지 살펴보면서 독서를 하는 재미를 곁들여도 좋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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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약뉴스 이병구 기자  |  bgusp@newsm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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