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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7.<지킬박사와 하이드씨> (188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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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7.<지킬박사와 하이드씨> (1886)
  • 의약뉴스 이병구 기자
  • 승인 2018.01.05 14: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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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버트 루이스 스티븐슨은 <보물섬>도 쓰고 <지킬박사와 하이드씨>도 썼다. 둘은 작품성과 지명도에 있어서 우열을 가릴 수 없을 정도로 많이 알려졌고 많이 읽히고 있다.

작가는 11살 연상인 미국여인과 결혼했다. 이후 남태평양의 사모아 섬에서 보냈다. 1894년 44살의 나이에 세상을 떠날 때 까지. 그는 이 기간 동안 행복하게 살았다고 한다. 비교적 일찍 죽었으니 그나마 다행이다. 그는 죽어서 다른 사람과 달리 걸작을 남겼다.

장편보다는 분량이 적고 단편보다는 긴 <지킬박사와 하이드씨>는 중편 가운데서도 고딕중편으로 불린다. 음습한 중세분위기를 풍기면서도 신비와 공포가 스며들었기 때문이다.

분량이 적고 내용도 어렵지 않아 쉽게 읽히지만 읽고 나서는 어느 책보다도 생각할 거리를 많이 준다.

변호사 어터슨이 하이드라는 괴물을 추적하는 장면은 어떤 드라마보다도 더 드라마틱하며 죽마고우인 유명한 내과의사인 래니언 박사가 등장할 때는 손안의 땀이 진득하게 배어 나온다.

전반부에 잡았던 공포심은 후반부로 갈수록 줄어들기 보다는 더욱 단단해 지고 등기우편으로 배달된 ‘헨리 지킬의 진술’이라는 편지글을 읽을 때쯤이면 설마 했던 지킬과 하이드가 동일인물이라는 것이 확연해 지면서 벌린 입을 다물 수가 없다.

한 인간이 두 인간의 삶을 살기 위해 벌이는 사투는 변신과정에서 느끼는 극심한 고통만큼이나 처절하다. 

부잣집 아들로 태어나 좋은 체격과 총명한 두뇌를 소유한 명망가인 지킬과 초라한 몸매에 거칠고 유희를 탐닉하는 하이드는 도대체 양립할 수 없는 인간이다.

명예를 중시하는 지킬이지만 하이드가 추구하는 쾌락도 버릴 수 없다. 그러니 둘은 충돌할 수밖에 없다. 점잖은 지킬이 하이드로 변신해서는 아이를 짓밟고 살인을 저지른다.

지킬일 때는 하이드를 비난하고 하이드일때는 야수의 마음으로 악이 아닌 선의 심장을 쏜다. 말리고 싶지만 그럴 수가 없다. 약물의 힘은 이처럼 한 인간을 두 마음을 가진 다른 인간으로 바꾼다.

모든 시작은 끝이 있기 마련이다. 지킬은 약물 중독이 심해짐에 따라 하이드로, 하이드에서 다시 지킬로 바꾸는 것이 갈수록 힘겹다. 

약물을 얻기 위해 하인들 몰래 실험실로 가는 것도 한계점에 다다랐다. 어터슨의 추격도 따돌리기가 힘들다. 지킬의 최후가 다가온 것이다.

그는 이 사실을 하이드보다는 지킬일 때 알리기 위해 동료에게 편지를 쓴다. 편지 내용은 이렇다. 다 알거나 대충 알고 있는 ‘헨리 지킬의 진술’의 내용을 간추려 잠깐 옮겨본다.

“나는 인간이 궁극적으로 다면적이며 이율배반적인 별개의 인자들이 모여 이루어진 구성체라는 가설을 내놓는다. 그 와중에 나는 절대적이고 근원적인 이중성을 체험한다. 도덕과 부도덕, 이율배반적인 쌍둥이가 함께 붙어 있는 것은 인류의 비극이다.”

 

이런 몽상에 빠져 있던 어느 날 지킬은 실험실 탁자에 앉아 육신의 옷을 흔들어 벗겨낼 강력한 약물을 발견하고 제 2의 형태와 외모가 만들어 지는 약을 조제해 내는데 성공했다. 

하지만 마냥 기뻐만 한 것은 아니다. 최소한의 과용이나 부적절한 투약만으로도 목숨을 내놓아야 하기 때문이다.

호기심을 억제하지 못한 지킬은 도매약국을 통해 대량 구매한 약과 소금 등을 합성하고 그것이 부글부글 끊고 연기를 뿜어내는 과정을 지켜보다 마침내 약을 입속에 털어 넣었던 것이다.

변신 과정은 이렇다.

“ 극도의 고통이 이어졌다. 뼈가 뒤틀리고 미치도록 토악질을 해댔지만, 무엇보다 영혼의 공포는 생사의 순간조차 초월할 정도였다. 다행히 격통은 금세 가라앉았다. 나는 중병을 털고 일어나듯 의식을 회복했다. 느낌이 이상했다. 뭔가 새로웠으며 그 새로움 때문인지 믿을 수 없을 정도로 상쾌했다. 몸이 더 젊고 더 가볍고 더 행복해진 느낌이었다. 그 안에 통제할 수 없는 무모한 내가 있었다. 감각적인 이미지들이 마구 얽힌 채 머릿속을 급류처럼 흘러갔다. 의무감은 녹아내렸으며 영혼은 낯설고 순수하지 않은 자유를 갈구했다. 새로운 생명을 처음 호흡하는 순간 나는 더욱 그것도 수십 배나 더 사악해졌음을 깨달았다. 나는 두 손을 뻗어 이 신선한 감각을 만끽했다.” (열린책들, 조영학 옮김, 2011)

이것이 악마로 변신한 하이드의 실체였다. 하이드였을 때 그의 체구는 왜소해졌다. 도장 찍듯이 복제해낸 에드워드 하이드가 헨리 지킬보다 작고 가볍고 젊었고 선의 용모보다는 악의 특성이 선명하게 드러났던 것이다.

거울에 비친 그런 모습을 본 지킬은 반감보다는 반가움이 앞섰다. 그 역시 나 자신이었고 영혼이 있다면 지킬보다 더 생생하게 영상화했기 때문이다. 지킬은 성급히 서재로 돌아와 원래의 지킬로 돌아가기 위해 악하지도 신성하지도 않은 약을 한 번 더 조제해 마셨다.

동이 트기 전 더 이상 내 집일 수 없는 내 집에서 달아나야 하는 번거로움을 피하기 위해서 였다. 처음처럼 극심한 고통이 따랐으나 잠시 후 그는 지킬의 성격과 체격과 용모를 지닌 원래의 모습으로 돌아 올 수 있었다.

변신과 재변신은 성공적이었다. 약을 털어 넣기만 하면 그는 명망가의 교수에서 벗어나 즐기기 시작하는 하이드가 됐다. 자, 몰래 즐기는 삶, 거리에서 어린이를 짓밟고 살인을 하는 하이드의 생은 얼마나 지속될까.

그리고 지킬로 돌아왔을 때, 하이드가 벌였던 쾌락의 죄 값은 얼마나 고통스러울까. 악행을 만회하기 위해 최선을 다하는 과정이 되풀이 되면서 그의 양심은 마비됐고 눈감아 준 추행에 대한 다가오는 징벌은 피할 수 없다는 것을 안다.

아무리 죄가 있는 건 하이드 이고 지킬이 타락한 것은 아니라고 자위해도 결국 지킬과 하이드는 한 몸이 아닌가.

점점 득세해지는 하이드, 체격도 더 커지고 피도 더 빠르게 움직인다. 약효는 떨어지고 변신의 자율적 조절 능력이 파괴되고 약효를 세 배까지 늘여야 하는 형국에 다다랐다.

원래의 좀 더 나은 자아는 점차 소멸되고 유해한 자아는 늘어난다. 둘 중 하나를 선택해야 하는 절대 순간이 다가온 것이다. 과연 지킬은 지킬을 선택하고 하이드와 작별하는 부당한 거래를 성공적으로 마칠 수 있을까.

: 하이드와 함께 한 지킬의 삶을 한 마디로 정의하기는 어렵다. 좋기도 했고 나쁘기도 했을 것이다. 오랫동안 함께 해 온 은밀한 욕구, 자유와 젊음, 가벼운 발걸음, 거침없는 쾌락. 그리고 그에 따른 양심.

자유를 갈망하는 하이드의 고통과 단호한 단절. 어느 청명한 정월에 살아난 내안에 잠든 야수의 본능. 그러다 문득 나를 나라고 부르지 못하고 그라고 부를 때 하이드의 죄상은 드러나고 나는 그의 교수대형이나 그에 앞서 하게 될 지도 모를 자살을 걱정하지 않는다.

그보다는 지킬이 그러해야 하기 때문에. 털 복숭이 손을 가진 하이드가 우세해 편지를 갈갈이 찢기 전에 후회의 눈물을 흘리면서 무릎 꿇고 신께 용서를 빌어야 한다.

이것으로 지킬과 하이드의 대결은 끝났다. 하지만 오늘 날에도 여전히 지킬과 하이드는 서로를 증오하고 미워하면서 죽기 전까지는 함께 살아가고 있다. 그것이 인간이고 인간의 삶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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