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TX개통으로 좀 더 가까워진 강릉은 아무때나 가도 좋다.
엄청나게 추운 이 겨울에도 볼 거리가 있다는 말이다.
특히 파도가 넘실대는 경포해변은 여름이 아니라도 둘러보기에 안성마춤이다.
인적이 드문 모래사장을 걸으면 서걱서걱 씹히는 소리가 갓 잡은 해삼을 먹는 기분이다.
무려 6킬로 미터에 달하는 해변 뒤로는 노송이 병풍처럼 기립하고 나, 여기있다고 소리친다.
길 따라 가노라면 정철의 '관동별곡' 한 대목이 절로 떠오른다.
“강호(江湖)에 병이 깁퍼 죽림(竹林)의 누엇더니, 관동(關東) 팔백리에 방면(方面)을 맛디시니, 어와 성은(聖恩)이야 가디록 망극하다."
자연을 사랑하는 송강의 마음과 800리나 되는 강원도 관찰사 자리를 준 선조 임금에 대한 은혜에 대한 고마움이 절절하다.
정치 잘 하라고 보냈는데 유람에만 신경을 썼나.
그렇게 정철 흉내를 내면서 잠시 천석고황에 빠져 있다 근처 안목해변으로 자리를 옮겨 김이 물안개처럼 피어오르는 커피잔을 바라본다.
언 손은 저절로 녹아 내리고 임금이 아니어도 이 순간 만큼은 지상에서 최고로 행복한 사람이 된다.
설악산의 장엄한 풍광과 경포호의 아름다움과 신사임당과 율곡의 자취가 어린 오죽헌과 오래된 옛집 선교장을 둘러 보는 것은 시간과의 싸움이다.
이 모든 것을 당일치기로 맛보려면 새벽부터 서둘러도 모자란다.
어느 새 노을이 진다.
떠날 시간이다.
1580년 당시 45세 였던 송강 정철.
다른 건 몰라도 그는 '운 존' 사람이었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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