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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5. <백년의 고독> (196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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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행 2017.12.10  11:52: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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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언가 거대하고 어마어마한 것은 인간이 만들었다기보다는 자연이 스스로 그렇게 된 경우 받게 되는 느낌일 때가 많은데 이는 히말라야의 장엄한 풍광에 압도된 사람이 로마의 유적을 보고 여유를 가질 수 있는 것과 같은 이유 때문이기도 할 것이지만 그렇다고 단순 비교해 자연유산이 인류유산보다 압도적으로 우월하다고 말할 수는 없는바 이는 둘은 비교 대상이라기보다는 언제나 경외의 대상이기 때문이다.

가브리엘 가르시아 마르케스의 <백년의 고독>을 읽고 난 후는 더욱 그러한데 이 책은 여러모로 기왕에 나온 책들과는 다른 모습을 보이고 그 중 가장 두드러진 특색은 문장이 짧지 않고 매우 길어 호흡을 느리게 가져가야 한다는 점이다.

시작을 했으니 끝나는 지점을 찾아야 하고 마침표는 어디에 있는지 아무리 찾아도 좀처럼 나타나지 않고 복잡한 미로 속을 헤매야 하는데 그렇게 긴 문장을 읽어도 꼬이거나 이해되지 않거나 이상하지 않고 순순히 수긍하는 것은 마치 어떤 마술에 걸린 것처럼 누구나 그런 경험을 하게 된다.

그러고 보니 사람들이 마술적 리얼리즘이라고 칭하는 이유를 어렴풋이나마 알 것 같고 이는 현실과 초 현실이 뒤죽박죽으로 마구 섞여 있고 과거와 미래가 한 장면에서 자연스럽게 녹아들기 때문이고 이것은 마치 ‘팔팔 끊는 얼음’과 같이 이해할 수 없을 것 같으면서도 그럴 수도 있겠다는 의심 아닌 긍정의 기분이 드는 것은 순전히 그의 마술적 문체에 있다고 하겠다.

이런 보기 드문 스타일은 처음부터 시종일관 지속되며 중간이 아니고 끝날 때까지 끝까지 이어져 다 읽고 나서는 어떤 것을 써야 한다면 자신도 모르게 길게 가면서 처음이 아닌데도 예전에 안하던 새로운 시도를 했다는 느낌을 받지 않을 수 없다.

마지막장을 덮고 나서도 읽기는 했고 분명히 고개를 끄덕였는데도 아직 다 읽지 않은 것 같고 애매하고 알쏭달쏭한 것이 남아 있는 것 같아 끄덕였던 머리를 다시 끄덕이는 대신 왼손이 아닌 오른손으로 긁적이게 하는 것은 주인공들의 이름이 서로 비슷해 누가 누구인지 문장에서 찾아내야 하는 쉽지 않은 어려움 때문 일 것이다.

그래서 본격적으로 이야기가 시작되기 전에 있는 호세 아르까디오 부엔디아 가문의 가계도를 참고문헌이라기보다는 반드시 확인해야 하는 영수증처럼 본문보다 더 자주 들춰봐야 하는 불편함을 감수해야 비로소 다음 장면으로 이동할 수 있게 된다.

가계도는 가계도 이므로 당연히 근친 위주로 그려져 있지만 그 근친들의 이름이 아버지와 어머니 혹은 형제간에 서로 비슷해 나중에는 이름으로 기억하기 보다는 행동으로 이해하는 편이 낫겠다고 판단하는 독자도 상당수 있을 것이다.

서문이 길다보니 내용은 나비가 먼 하늘보다는 가까운 머리 위를 날듯이 훌쩍훌쩍 건너뛰어야 하겠고 그렇게 하는 것이 독자들의 이해를 돕기에 편리하고 정리하는데도 수월하겠기 때문이다.

책은 제목이 그러하듯이 부엔디아 가문의 7대에 걸친 100년간의 고독에 대한 이야기다.

말이 고독이지 실제로는 그것이 고독인지 유대인지 정말 가려내기가 쉽지 않은데 고독 속에는 삶과 죽음, 전쟁과 평화, 사랑과 증오, 희망과 좌절, 욕정과 금욕 등이 얽히고설키어 있어 무엇이 고독이고 무엇이 고독이 아닌지 구분해 내기가 단칼로 무를 잘라 내듯이 확연하지 않다.

더구나 근친 간에 이루어지는 사랑은 백년의 고독이 아닌 ‘백년의 근친상간’이라고 불러도 좋을 정도로 치열한데 이들은 가족관계를 이해하는데 필요한 부모나 형제나 자매나 조카 등의 호칭보다는 이름으로 한 번이 아닌 자주 나열되기 때문에 지금 사랑을 나누는 대상이 근친 가운데 어떤 관계에 있는 누구와 누구인지 자못 이해가 어려워 다시금 가계도를 훑어보는 곤욕을 감수해야 하고 이는 누가 시켜서라기보다는 기꺼이 그렇게 하도록 자발적으로 나서는 것은 그래야만 재미를 더 느끼기 때문이다.

부엔디아 가문의 시조라고 할 만한 호세 아르까디오 부엔디아와 우르술라는 사촌간이어서 이들의 자식은 정상적이라기보다는 돼지꼬리를 달고 나오는 괴물로 태어날 것이라는 예언 때문에 두 사람은 살던 곳을 떠나 아무도 모르는 곳으로 이주해서는 마을 이름을 마꼰도라고 지었다.

마꼰도에 어느 날 자석이나 망원경 등 이상한 물건을 가지고 떠돌이 집시들이 찾아오고 시장이 열리고 서커스 행렬이 벌어지고 전쟁이 일어나고 철도가 생기고 바나나 회사가 들어오고 농장에서 일하는 노동자들이 파업을 한다고 해서 무려 삼천 명이 학살되고 4년 넘게 홍수가 나고 10년 동안 가뭄이 이는 자연재해로 마을은 황폐해지고 마침내 파괴돼 마콘도는 원래 없었던 것처럼 다시 아무도 살지 않게 된다.

가문의 마지막 아이는 역시 근친상간으로 태어났는데 아울렐리아노 바빌로니아의 최후는 “세상의 개미떼들이 다 모여들어 아이의 시체를 마당에 있는 돌투성이 샛길을 통해 어렵사리 개미소굴로 끌고 가고 있었다.”는 것으로 간단하게 표현되는데 이는 ‘가문 최초의 인간은 나무에 묶여 있고 최후의 인간은 개미 밥이 되고 있다’는 양피지의 예언이 맞아 떨어 졌음을 의미하는 것이기도 하다.

이로써 백년의 고독한 운명을 타고난 부엔디아 가문의 인간 군상들은 이 세상에서 두 번째 기회를 갖지 못하고 영원히 소멸됐다. 마을은 바람에 의해 부서지고 인간의 기억으로부터 사라졌던 것이다.

: 연보에 의하면 가브리엘 가르시아 마르케스는 1927년 콜롬비아에서 태어나 부모가 아닌 외조부의 손에 의해 자랐으며 외조모로부터 마술적 이야기를 많이 듣고 자란 영향을 받았다.

그는 커서 법학을 전공했으나 카프카의 <변신>을 읽고 현실 속에서 그럴 수도 있겠다고 머리가 아닌 온몸으로 인식한 후 바로 작가의 길로 들어서야겠다고 결심했다고 한다.

이후 그는 많은 놀라운 작품을 썼는데 <백년의 고독>은 그의 작품 가운데 백미로 콜롬비아의 세르반테스라는 칭호를 얻고 금세기 최고의 작품이라는 찬사를 받으며 1982년 노벨문학상을 수상했고 수상연설의 제목은 ‘라틴 아메리카의 고독’ 이었다.

역시 노벨상 작가인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을 쓴 밀란 쿤데라는 “소설의 종말에 대해서 말하는 것은 서구 작가들의 기우에 지나지 않는다. 동유럽이나 라틴 아메리카 작가들에게 이런 말을 하는 것은 어불성설에 지나지 않는다. 책꽂이에 가르시아 마르케스 <백년의 고독>을 꽂아 놓고 어떻게 소설의 죽음을 말할 수 있는가.”라고 찬사를 보냈다.

고갈에 빠진 작가들에게 영감을 주는 책으로 정평이 나있는데 쓰다가 멈춘 작가들은 이 책을 읽고 이때다 싶은 기회를 얻어 과감하게 다시 글쓰기에 도전하게 된다고 많은 이들은 다른 사람의 입을 통해 전하고 있다.

이쯤 되면 <백년의 고독>은 자연유산에 버금가는 인류유산이라고 할 만하다.

처음 손에 잡기가 힘들지 일단 작정하고 그렇게 하면 끝까지 읽지 않고는 배길 수 없게 만드는 유머와 패러디 그리고 수천마리의 나비들이 이끄는 마법으로 가득 차 있는 세상으로 빠져들게 되는데 이는 가문의 장남인 호세 아르카디오 부엔디아 못지않은 호색한이며 실질적인 주인공인 동생 아울렐리오 부엔디아 대령이 딸과 마찬가지인 9살 난 레메디오스와 결혼해 쌍둥이 아이를 임신하게 했으나 모두 죽고 17명의 각기 다른 여자에서 17명의 아들을 낳았음에도 불구하고 고독을 이겨내기 보다는 지탱하기 위해 오랜 실험과 연구에 몰두한 나머지 연금술의 대가가 되어 작은 황금물고기를 만들고 녹이고 하는 평생의 과정이 그가 일으킨 20년간 32번의 반란과 14번의 암살과 73번의 매복공격 그리고 한 번의 총살형을 모면한 것보다 더 흥미를 끌기 때문이다.

23년간 구상하고 18개월 동안 하루도 빠짐없이 여덟 시간씩 집필에 매달려 기어코 완성한 <백년의 고독>이 35개국 이상의 나라에서 오천만부 이상의 판매를 기록하는 장면을 목도한 작가는 2014년 우루술라의 남편이 죽자 노란 꽃들이 밤새도록 눈처럼 내린것처럼 그렇게 하지는 않았지만 그런대로 평온한 가운데 87세의 나이로 사망했으나 그가 남긴 업적은 가문의 시조이면서 대령을 낳은 우루술라가 살았던 것으로 추측되는 100살 이상은 물론 그 10배에 달하는 시간이 흘러도 부엔디아 가문이 사라진 것처럼 소멸되지 않고 인간의 기억 속에서 영원히 남아 있게 될 것인바 이는 예언이라기보다는 현실에 바탕을 둔 근거 있는 예상이라고 할 수 있다.(참고로 문장이 되지 않게 긴 것은 가르시아 문장을 흉내 냈기 때문이다. 이것은 그에게 감사함을 표하기 위한 것이지 따라하고 싶어서 한 것은 아니라는 점을 밝혀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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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약뉴스 이병구 기자  |  bgusp@newsm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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