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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64. 꼬방동네 사람들(198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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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64. 꼬방동네 사람들(1982)
  • 의약뉴스 이병구 기자
  • 승인 2017.10.09 10: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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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철용(필명 이동철)원작을 영화화한 <꼬방동네 사람들>은 배창호 감독의 입봉작품이다.

이후 나온 <고래사냥>(1984)이나 <깊고 푸른 밤>(1985)에 비하면 좀 아쉽지만(지나친 신파조 장면이 매그럽지 못하다.) 이것이 없었다면 그것이 나올 수 없을 만큼 한국 영화사에서도 중요하게 다루는 작품이다.

달동네 혹은 판잣집이 모여 있는 소위 못사는 사람들이 사는 하꼬방동네는 비인간적인 그래서 너무나 인간적인 일들이 일상으로 일어나는 장소다.

젊은 시절의 김보연이 커다란 대야를 머리에 이고 동네를 향해 가는 장면은 삶의 무게가 얼마나 큰 지 그래서 과연 그 무게를 감당할 수 있을지 가늠할 수 없게 만든다.

다행히 그녀는 과부는 아니다. 괄괄한 성격의 김희라가 남편이다. 꼬마도 하나 있다. 그런데 친아버지는 아니다. 그럼 그렇지, 갈등의 요소는 어느 정도 자리 잡았다.

남의 자식 대하듯 하는 의붓아버지와 엇나가는 아들 그리고 그 사이에 낀 여자의 애환이 바야흐로 펼쳐지고 있다.

동네는 이들 외에도 빨래를 하는 아낙들과 거기서 나오는 소문들 그리고 사소한 일로 싸움질이 벌어지고 그것을 보고 흥에 겨워 춤을 추는 여자( 공옥진이 추는 병신춤을 볼 수 있다.) 와 가져갈 것이 어디 있다고 리어카를 끌고 고물을 모으는 전직 목사, 그리고 그를 사랑하는 조금 돈 여자( 이 여자는 나중에 목사의 윽박지름과 설교로 개과 선천하는 것처럼 보인다.)가 조연으로 나와 영화의 재미를 부채질 한다.

윷놀이는 명절이 아닌데도 시도 때도 없이 벌어지는데 어느 날 그 동네로 택시 하나가 들어온다. 택시 드라이버는 안성기다. 김보연을 따라가는데 처음 본 여자에게 수작을 걸기 보다는 예전에 알고 지냈던 사이처럼 보인다.

지금은 한 물간 당시에는 유행했던 바짓단이 넓은 나팔바지를 입고 카키색의 작업복 상의를 입은 남자는 바지 호주머니에 두 손을 깊숙이 찔러 넣고 ( 이런 장면 가끔 나온다.) 여자와 마주선다.

헤어진 옛 여인 정도로 추정해 볼 수 있는데 이후 전개되는 내용을 보니 전남편이다.

김보연이 데리고 있는 아들은 그러니 희라의 아들이 아닌 성기의 아들이고 두 사람은 어찌된 영문인지 이혼은 하지 않고 그럴 수밖에 없는 어떤 사정 때문에 오랫동안 떨어져 있었던 것으로 두 사람의 표정으로 짐작해 볼 수 있다.

여자는 말한다. 너무 늦었다. 너무 늦게 찾아 왔으므로 그 사이에 다른 남자와 함께 살고 있는 현실을 에둘러 변병하고 있다. 아직 전 남편은 그녀의 다른 남자는 아직 모르고 있다.

집에 돌아온 보연은 헤어진 남편을 다시 만났으니 그 날 저녁 잠자리가 뒤숭숭할 수밖에 없다.

시간은 과거로 거슬러 올라간다. 만원 버스 안. 성기의 손에는 양쪽에 날이 달린 면도칼이 검지와 집게 손가락 사이에 끼어 있다. 그는 날렵한 솜씨로 양복 안쪽을 째고 지갑을 꺼내는 이른바 안창 따기에 성공한다. 전문 쓰리꾼( 소매치기)이 성기의 직업이다.

 

짙은 선글라스에 번쩍이는 구두를 신은 성기는 주머니에서 빗을 꺼내 장발의 머리를 멋진 폼(전형적인 제비 스타일이다.) 으로 가지런히 빗고( 당시는 장발이 유행했다. 나도 어깨까지 오는 긴 머리를 했던 기억이 생생하다.) 긴 생머리를 한쪽으로 묶어 돌린 붉은 티를 입은 보연을 꼬드긴다.

해변이다. 보연의 사투리로 보아 남쪽 지방의 어느 바닷가에서 두 사람은 데이트로 시간가는 줄 모른다. 그리고 낡은 여관방. ( 그 당시 남녀 진척의 정해진 시나리오다.) 이후 두 사람은 흔히 그렇듯이 사진을 찍고 결혼을 한다.

결혼 후에도 성기는 전의 그 짓을 버리지 못하고 잠자다 속옷 바람으로 결국 경찰의 손에 잡힌다. 여기까지가 성기의 과거사다.

몇 년 후 출소. 그 사이 배부른 여자는 남자에게 두부를 먹인다. 성기는 마음을 다잡는다. 장어 잡이 뱃사람이다. 가진 것은 적어도 웃음 웃는 얼굴로 보아 뒤늦은 행복이 찾아 왔나 보다. 그런데 웬걸.

다시 전에 자신을 잡았던 형사에 잡힌다. 이번에는 그가 한 짓이 아니다. 하지만 형사는 자수하면 정상참작을 해주겠다고 회유하고 성기는 순간 돌아 버려 자해를 하다 취조 책상을 뒤엎는다.

그에게는 어디선가 한 번쯤 들어 봤을 법한 '공무집행방해죄 및 폭력 등 처벌에 관한 법'의 올가미가 씌워졌다. 다시 길고 긴 감옥행. 다시 장면은 바뀌어 꼬방동네의 한 음습한 구석에서 성기와 보연이 우산을 쓰고 비를 피하고 있다.

성기는 언제까지 여기 있을 거냐 는 보연의 말에 화를 내며 너 많이 변했다, 한마디 쏘아 붙인다. 기다렸다는 듯이 여자는 6년은 긴 세월이라고 매몰차게 응수한다.

그렇다. 아이 딸린 여자에게 그 기간은 홀로 살기에 길어도 너무 길다. 그녀가 희라와 산다고 해서 바람난 여자라고 욕하지 말라는 말이다.

성기는 아이를 원한다. 옥신각신 하는 장면을 공옥진이 훔쳐보다 바로 희라에게 마누라 관리 잘 하라고 일러바치고 희라는 택시 운전사가 보연의 전남편이라는 것을 눈치 챈다.

자, 이제 두 명의 남자와 한 명의 여자로 삼각관계는 확실히 그려졌다.

둘 중의 하나는 떨어져야 한다. 과연 누가 떨어질 것인가. 관객들은 안다. 성기가 잘 생기고 비록 전과가 있어도 점잖을 떨고 희라는 건달패처럼 행동하니 보연이 전 남편과 합쳐질 것을.

하지만 결과도 그런지는 더 봐야 한다. 영화는 끝날 때까지는 끝난 것이 아니므로.

성기는 아들을 데리고 동물원에도 가고 남대문 시장에도 가서 즐겁게 논다. (아이는 그 때까지도 소매치기 아버지를 알아보지 못하고 자기 아버지는 불 끄다가 죽은 소방관으로 기억하고 있다. 보연이 그렇게 말해줬기 때문이다.)

보연이 두 남자 사이에서 갈팡질팡하고 있는데 아이는 뜨거운 물에 빠질 위기에 처한다. 겨우 구해내고 대신 자신의 손을 크게 데인 보연은 손을 감추기 위해 검은 장갑을 낀다. (이후부터 보연은 검은 장갑이라는 희라의 비아냥을 듣는다.)

술 집에서 두 남자는 한 여자를 어떻게 할지를 놓고 고민한다. 불콰해진 그들이 서로 주먹질하고 삽을 들고 싸운다. 그런데 무슨 영문인지 갑자기 희라가 구멍가게를 팔고 이 동네를 뜨려 한다. 희라의 정체가 서서히 드러난다.

시골에서 올라와 마장동에서 터를 잡고 살 때 그 동네 건달을 죽였는데 죽은 건달의 여자를 만난 것이다. 그는 주절댄다. 공소시효가 며칠 안 남았는데 이 무슨 얄궂은 운명의 장난이란 말인가. 한 눈에 남편의 살인자를 알아본 여자에게는 여러 명의 아이들이 딸려 있다.

고물 장수는 여자를 도와주고 보연을 만난 여자는 이 많은 아이 중 죽은 남편의 아이는 하나 밖에 없고 나머지는 다 아버지가 다르다고 쓴웃음을 짓는다. 보연 역시 그런 표정으로 동병상린의 아픔을 나눈다.

다시 장면이 바뀐다. 희라는 철길을 달린다. 두 명의 경찰이 따라 붙는다. 필사적으로 도망치는 희라. 그는 의붓아들에게 너의 아버지는 소매치기가 아니다 라는 편지와 보연 앞으로 나 같은 놈과 살 팔자 아니니 잘 있으라는 메모를 남기고 떠난다. ( 떠날 때는 미련 없이 떠나는 멋진 놈이다.)

보연도 수레에 짐을 싣고 꼬방동네를 빠져 나온다. 성기의 택시가 뒤따른다. 아들은 아빠를 부르며 달려간다. 보연도 왔다. 검은 장갑은 벗겨졌다. 예쁠 것도 없는 그 손을 뺨에 부비는 성기. 잠시 후 짐은 수레에서 택시로 옮겨진다.

국가: 한국

감독: 배창호

출연: 김보연, 안성기, 김희라

평점:

 

: 희라는 비록 건달이고 살인자였지만 인정사정없는 무지막지한 패거리들과는 달랐다. 보연을 사랑했으며 의붓자식이라도 잘 되기를 바랐다. ( 그가 떠날 때 남긴 편지 내용을 보라. 

비록 술김에 네 아버지는 소방관이 아니고 소매치기로 감옥에 있다고 고함을 쳤지만 실상은 여린 마음의 소유자였다.) 성기의 입장을 이해했으며 환경이 그랬기 때문에 그런 삶을 살았을 뿐이다.

성기 역시 마찬가지다. 그는 타고난 성품까지 착한 인간처럼 보인다. 첫 번째 감옥살이는 죄에 따른 벌이니 어쩔 수 없다고 쳐도 두 번째는 아쉬움이 많은 대목이다. 하지도 않는 범죄를 전과 때문에 뒤집어 쓸 위기에서 그가 취할 행동은 많지 않았다. ( 그는 누명을 벗기 위해 취조 책상을 뒤엎고 앞서 말한대로 한 번쯤 들어 봤음직한 죄명을 달고 또다시 옥살이를 한다.)

두 번의 감옥 생활에도 성기는 무너지지 않았다. 보연은 또 어떤가. 희라를 사랑한 것은 분명해 보인다. 하지만 그 보다 성기를 더 사랑했다. 어린 아들을 키우기 위해 어쩔 수 없는 선택을 을 했을 뿐이다.

보연이 검은 장갑을 벗고 그 손을 성기가 뺨에 가져갈 때 관객들은 마지막으로 한 번 더 눈가의 이슬을 훔쳤다.

신파의 요소를 기술적으로 처리하기 보다는 노골적으로 드러내는 어색함이 있지만 어쨌든 영화는 그 시대의 시대상을 적나라하게 그려냈다.

독재자의 시퍼런 칼날 앞에서 다른 어떤 것을 영화화하는 것은 불가능한 시기에 배창호 감독은 그런 것 대신 당시 서민들의 현실을 있는 그대로 날 것으로 보여주는데 성공했다. 하지만 감시의 눈초리는 그런 것에 까지 치고 들어왔다. 다행히 시나리오는 무사히 통과됐고( 꼬방동네라는 제목을 쓰지 말라는 조건으로) 영화도 검열에서 살아났다.

최근 이 영화의 블루레이가 제작됐다. ( 사족으로 원작자 이철용을 90년대 초반 만나 ‘꼬방동네 사람들’과 ‘어둠의 자식들’에 대해 설명을 들은 기억이 있다. 국회의원도 지내고 사회활동도 활발히 했던 그는 지금은 역술인으로 변신해 사람들의 미래 점을 봐주는 일을 하고 있다고 한다. 꼬방동네 사람들의 인생역정 만큼이나 그의 인생도 드라마틱하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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