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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63. 요리사 도둑 그의 아내 ...(198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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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63. 요리사 도둑 그의 아내 ...(1989)
  • 의약뉴스 이병구 기자
  • 승인 2017.09.26 15:58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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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터 그리너웨이 감독의 <요리사 도둑 그의 아내 그리고 그녀의 정부>(원제: The cook The thief His Wife and Her Lover)는 제목이 길다.

이 긴 제목 안에 줄거리를 짐작할만한 내용이 들어 있다. 요리사가 있으니 음식이 나오고 도둑은 뭔가를 훔칠 것이며 그의 아내와 그녀의 정부가 등장하는 음란한 이야기 말이다.

맞는 말이다. 영화는 주로 먹으면서 진행된다. 정욕을 일으킬 만한 붉은 식탁의 화려한 식당에 식재료가 가득하다. 주빈은 식당 주인이다.

그녀의 남편역인 도둑 마이클 감본은 한마디로 눈에 뵈는 게 없는 절대 군주다. 하고 싶은 말은 아무 말이나 뱉고 원하는 행동은 말리는 사람도 없지만 다 하고 먹고 싶은 것은 포크나 나이프만 들면 코앞에 대령해 있다.

갑 질을 넘어 노예 질이 일상인데 주로 대상인 아내역의 헬렌 미렌은 곤욕이 이만저만이 아니다.

그녀는 비록 침대에서는 창녀처럼 굴지언정 많은 사람들 앞에서 남편이 그렇게 대하는 것은 참아내기 어렵다. 아무리 식욕과 성욕이 함께 간다고 하지만 먹으면서 가슴을 만지고 쌍스런 성적 표현을 서슴없이 하는 남편이라는 작자가 한심스러울밖에.

그런데 어느 날 그 식당에 잘 생긴 남자가 들어온다. 서류 가방 속에서 책을 꺼내 읽는 폼이 제법 근사하다. 그녀의 애인 역을 하는 앨런 하워드다. 두 사람은 눈짓 한 번으로 섹스를 하기로 마음이 통했다.

그들은 여자 화장실에서 다짜고짜 한다. 남편은 처음에는 눈치 채지 못했지만 나중에는 안다. 분노가 치민다. 그러나 현장은 잡기가 쉽지 않다. 요리사는 주방에 ‘욕정남녀’를 숨겨 주고 그들이 마음 놓고 섹스를 할 수 있도록 거든다.

 

아침을 먹으면 점심이 기다리고 있듯이 이들은 한 번 섹스를 하고나서 또 그 다음 섹스를 한다. 나 점점 잘하고 있죠? 여자는 남자에게 당연히 그렇다는 대답을 듣고 싶어 할 정도로 대담하다.

남자 역시 마찬가지. 불륜에 따른 죄책감으로 이번 한 번만 하고 말아야지 하는 심경의 변화를 가져올 법한 이른바 '현자의 시간'이라는 것이 없다.

그 여자에 그 남자. 들켰을 때 올 어떤 충격에 대한 아무런 대비도 없이 치마를 걷어 올리기에 바쁘다. 아이를 낳을 수 없다는 사실을 남자가 알도록 해 섹스의 부담을 덜어주는 센스는 덤이다.

남자는 책 가득한 분위기 넘치는 서재로 여자를 이끈다. 여기 서라면 좁고 냄새라는 화장실보다는 좀 더 시간을 오래 끌 수 있다. 들킬 염려 때문에 서둘러야 하는 주방과도 비교할 수 없다.

비싼 포도주를 먹으며 그들은 근사한 섹스를 한다. 영화가 끝날 때까지 이런 상황 계속 될까. 연인들은 그런 것을 따지지 않는다.

긴 꼬리는 결국 밟히고 아내의 정부는 그가 아끼던 책을 입에 한가득 먹고 죽는다. 죽은 남자 옆에서 하룻밤을 보낸 여자는 요리사를 찾는다.

그리고 그에게 요리를 부탁한다. 설마 하는 생각도 잠시 요리의 대상이 죽은 남자라는 것을 알기 까지 그리 긴 시간이 필요치 않다.

처음에는 거절하던 요리사는 결국 그녀의 말대로 그녀의 애인을 통째로 바비큐로 만든다. 엽기적이기 보다는 역겹다. 시체처럼 흰 천으로 가려진 요리된 남자가 남편의 식탁에 오른다. 식탁에 있는 것은 무엇이든 먹는 남편이 사람의 요리도 과연 그렇게 할까.

천이 벗겨지자 남자는 경악한다. 제 아무리 강심장이라 해도 잘 구워진 인육 앞에서 이성을 차리기는 쉽지 않다. 달변가인 그가 더듬거린다. 기회를 잡은 아내는 빼앗은 권총을 들이대고 식인을 강요한다. 금요일의 메뉴는 통째로 구운 인육이다.

식사 예절은 어디 갔는지 포크와 나이프를 든 남자의 손이 사시나무처럼 떨린다. 그는 늘 쌍스럽게 내뱉던 ‘초원의 굴’ 대신 뱃살 한 점을 입에 넣는다. 어떤 말로 맛을 표현할까.

남자는 입맛을 다시지만 맛있다는 흔한 말조차 뱉지 못한다. 가격을 정할 때 가장 비싸게 매기는 검은 색의 음식을 먹었어도 먹은 것을 바로 토해낸다.

국가: 프랑스

감독: 피터 그리너웨이

출연: 마이클 감본, 앨렌 하워드

평점:

 

: 식탐이 있는 자는 색탐도 강하다. 그런 자는 남의 것을 뺏고도 죄책감이 없지만 자신이 그렇게 되면 질투에 눈이 먼다. 사랑하지도 않는 아내의 정욕을 눈감지 못하고 찌질한 복수극을 펼칱다.

그 결과는 식탐도 색탐도 더 이상 누리지 못하는 것으로 끝난다. 그가 복수한 자의 정부 다시 말해 아내 손에 죽기 때문이다.

권력과 탐욕 그리고 사악한 음욕의 끝은 이미 정해져 있다. 과도한 폭력과 무자비한 노출 그리고 천박한 대사도 끝났다. 색채가 강렬하다. 감독은 7가지 무지개 색깔을 넣어 위험, 정욕, 유혹, 사악함을 성공적으로 완성했다.

화려한 음식과 강렬한 섹스가 진행될 때 나오는 경쾌한 음악은 식욕과 성욕이 따로 있지 않고 한군데 엉켜 있음을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감독은 뭐든 소비하는 것의 아름다움을 찬양하는 현대사회에 따끔한 경종을 울려주고 싶었는지도 모른다.

먹고 마시고 즐기는 것이 인생의 전부가 아니다 라고, 그런 것을 미화하는 사회가 바람직한 것이 아니다 라고 그래서 그런 것은 본능이 해소되는 선에서 적당히 하고 넘어가자고 말하고 싶었는지 모른다.

영화가 나온 당시 영국은 철의 여왕이라고 불렸던 마거릿 대처가 극 보수적 정책을 펴던 시기였다. 감독은 영화라는 장치를 통해 그 때의 정치를 의도적으로 비판하고 싶었는지도 모른다.

부패한 음식이 가득한 트럭 속의 나체 남녀, 자비를 베풀라고 노래 부르는 소년의 입에 쑤셔 넣는 단추, 얼굴에 박힌 포크, 음식을 먹다 꾸역꾸역 토하는 장면 등은 끔찍하다.

공간은 한정돼 있다. 주차장과 주방과 식당이 거의 전부다. 시간은 아마도 당시도 그렇지만 지금 영국의 현대 정도라고 보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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