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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종편집 2024-03-29 18:51 (금)
262. 새 (196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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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62. 새 (1963)
  • 의약뉴스 이병구 기자
  • 승인 2017.09.14 16: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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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을 공격하는 새의 이야기는 공포에 앞서 수상쩍다. 다른 인간은커녕 외계인도 아니고 그렇다고 괴물이나 맹수도 아니고 날짐승이라니.

알프레드 히치콕 감독의 <새>(원제: The birds)는 새가 곤충이 아닌 사람을 죽이는 기가 막힌 영화다.

먹기 위해서라기보다는 단지 그래야만 한다는 어떤 필연적인 이유가 있는 것처럼 보인다. 그러니 괴이한 일이다.

대지진의 전조도 아닌 것이 마치 그런 것처럼 흉계를 꾸미고 있다. 온갖 잡새가 인간을 공격해 이마를 찢고 눈알을 파먹는데 인간이 할 수 있는 일이란 그저 이곳을 도망치는 것뿐이다. 고작 새를 피해서.

새와 인간의 대결은 싸우기도 전에 이미 결정 났다. 독수리도 아닌 것이 매도 아닌 것이 겨우 갈매기 주제에 인간의 숨통을 끊어 버리다니 이게 어찌 날아다니는 새란 말인가.

그러니 배를 타고 섬에 갈 때 따라오는 갈매기에게 새우깡을 줄 때는 길고 뾰족한 부리에 골수가 빠져 나가지 않도록 조심해야 한다. 새우깡을 먹기 위한 것이 아니라 인간의 살을 먹기 위한 일인지도 모르니.

각설하고 고층건물이 즐비한 샌프란시스코의 어느 골목길을 금발의 여자(티피 헤드랜)가 걷는다. (맵시있고 날렵하다. 히치콕은 여자 주인공으로 금발을 선호했다고 한다. 나중에 둘은 사랑했는지 히치콕의 일방적인 짝사랑인지 두 사람은 염문 비슷한 것을 뿌리기도 했다.)

하늘을 덮은 새들이 배경으로 깔리고 여자는 보부도 당당하게 2층 새집으로 향한다. 그 때 어떤 남자는 개 두 마리를 끌고 지나간다.( 아무런 의미 없다. 배불뚝이 히치콕 감독 자신이 카메오로 깜짝 출연했다. 그 후 그는 단 한장면에도 나오지 않는다.)

여자는 저렇게 많은 갈매기를 본적이 없고 그래서 그런 적이 있는지 지나가는 말로 말한다. 폭풍을 피해 왔나, 이런 짐작만 할 뿐이다.

여자는 주문한 잉꼬를 찾으러 왔지만 아직 오지 않았고 대신 어떤 잘 생긴 남자(로드 테일러)가 왔다. 새대신 남자라니, 닭대신 꿩이라고나 할까.

두 사람은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수작을 부리고 헤어지는데 두 사람이 다시 만날 것 같은 예감은 일기예보를 듣지 않고도 부는 바람만으로 폭풍이 올 것을 예견하는 것만큼이나 쉽다.

과연 두 사람은 남자보다 여자가 선수를 쳐서 다시 만난다.

 

남자의 여동생은 딸이라고 해도 될 만큼 남자와 나이 차가 많이 난다. 후에 등장하는 엄마라는 여자(제시카 탠디)는 남자와 부부관계라고 해도 믿을 정도로 외모 상으로는 그렇다.

그런 남자가 그런 여자에게 엄마라고 부르니 좀 괴이하다. 다만 머리는 반백이다. 여자는 한국 중견 여배우 정영숙과 얼굴 생김새와 풍기는 이미지가 거의 비슷해 놀랍다.

어쨌든 생일 선물로 줄 잉꼬를 들고 여자는 차가 아닌 작은 보트를 타고 남자가 있는 하얀 집으로 향한다.

이때 여자는 갈매기의 순간적인 '시간차 공격'으로 이마가 찢어진다. 피를 흘리는 여자를 보면서 관객들은 앞으로 다가올 어떤 거대한 공포의 징조를 느낀다. 남자의 집은 어마어마하게 크다. 도시의 변호사로 돈을 제법 번 모양이다.

여동생 꼬마는 찾아온 금발의 여자를 좋아하고 할머니라고 불러도 좋을 꼬마의 엄마인 늙은 여자는 경계하는 눈빛이 역력하다.

닭장속의 닭들은 언제나 배가 고프지만 오늘은 상하지도 않았는데 모이를 먹지 않는 이상한 행동을 한다. ( 이 역시 다가올 징조를 예상해 보지만 그렇다고 뚜렷한 인과관계는 밝혀지지 않는다.마치 잉꼬가 어떤 해결의 실마리를 줄 것 같지만 아닌 것처럼.)

여자는 준비한 선물만 주고 오는 대신 생일파티에 참석해 달라는 꼬마의 부탁( 남자도 그러기를 원했다.)에 마지못해 수락하고 또 다른 여자의 집에서 하룻밤을 잔다.

또 다른 여자는 꼬마가 다니는 학교 선생( 그녀는 죽는다. 버림 받은 것으로도 모자라 죽기까지 하니 가엽은 인생이다.) 으로 한 때 남자의 연인이었던 것으로 보이지만 지금은 그냥 친구 사이다.

이런 저런, 그저 그런 대화가 오고가고 식사도 하는데 전깃줄에는 어느새 수북이 내려앉은 까마귀 떼가 장관이다.

파란 잔디가 인상적인 학교 마당에 아이들이 뛰어 노는데 새들이 이들을 공격한다. 등에 달라붙기도 하고 얼굴을 쪼기도 하고 발톱으로 목을 휘감기도 한다. 황급히 아이들은 교실로 대피하고 생일잔치는 엉망이 된다.

경찰도 오지만 뚜렷한 해결책은 없다. 새들도 화가 나면 공격한다. 애들이 귀찮게 하지 않으면 공격하지 않는 것이 새의 본성이라는 사실을 상기시킬 뿐이다. 대책이 없으니 그들도 답답하기는 마찬가지다.

그런 사이 그 집은 물론 옆집도 그 옆의 레스토랑도 엉망진창이 된다. 새의 시체가 널브러져있고 유리창을 공격하던 새는 그 곳에 박혀 죽어 있는가 하면 죽은 사람의 뻗은 다리에는 피가 흥건하고 눈이 있던 자리는 커다란 구멍이 뚫려 있다.

여자와 남자 그리고 꼬마와 늙은 엄마는 제정신이 아니다. 창문을 틀어막고 문을 잠근다. 인간이 새의 공격을 방어하기 위해 할 수 있는 조치는 이것이 전부다. 

전기가 끊긴 깊은 밤, 새들은 조용히 집 주변을 포위하기 시작한다. 이들의 운명은 새에게 달려 있다. 죽일지 살릴지 새가 결정할 일이다.

국가: 미국

감독 : 알프레드 히치콕

출연: 티피 헤드렌, 로드 테일러

평점:

 

: 내가 여기 나오는 꼬마만한 시절 나도 새의 공격을 받은 적이 있다. 내가 먼저 공격했기 때문이다.

흔히 보는 까치의 일종으로 흰색대신 노란색을 띄는 것이 특징인 당까치로 불린 이 새는 정말 집요하게 물러나지 않고 공격을 계속했다. 

다가가면 도망가는 척 했다가 뒤돌아오면 다시 짖고 날개를 퍼덕이면서 공중의 한 자리에서 떠날 줄을 몰랐다.( 나는 이런 경험이 있기 때문에 새의 공격을 터무니 없는 허무맹랑한 것으로 보지 않았다.)

그 새가 그처럼 끈질겼던 것은 보호해야 할 새끼가 있었기 때문이다. 근처 나무의 새집에 새끼 여러 마리가 있어 내가 다가가면 나무 위에 있다가 막 나에게 날아와 쪼듯이 달려들었고 나는 그 때마다 돌멩이 공격을 해댔다. 

결론적으로 말하면 영화에서와는 달리 나는 새를 이겼다.

수없이 던진 돌 가운데 나에게는 환희를 가져다주었지만 당까치에게는 불운했던 일이 벌어졌던 것이다. 돌에 맞은 까지는 순간 정신을 잃고 땅에 떨어졌고 나는 녀석을 움켜쥐고 겨울에 연을 날리던 나일론 줄에 발을 묶어 놓았다.

그리고 하루가 지나고 나서 학교에 갔다 돌아와 별 생각 없이 어제 있었던 일이 생각나 헛간에 있는 녀석을 찾아보았다. 그런데 녀석은 없고 오래된 느티나무에 빨간 줄이 길게 내려와 있는 것이 보였다.

탈출한 녀석이 죽을힘으로 날아 높은 나무에 올랐던 것이다. 줄은 내가 아무리 뛰어 올라도 잡을 수 없을 정도의 높이에 있어 나는 무엇을 쫒던 럭키(당시 집에서 키우던 개 이름이다.) 신세가 되어 녀석을 한 참 동안 쳐다보다가 공차러 밖으로 나갔다.

그 후로 나는 어떤 알지 못하는 바쁜 일정으로 녀석의 일상을 완전히 잊어 버렸다. 훗날 나는 지금은 거의 사라진 당까치를 생각할 때 마다 돌을 던져 새를 잡았던 1970년대 초의 일을 떠올리곤 한다.

그럴때 마다 그 새에 대한 미안한 생각을 하게 됐고 <새>를 보는 내내 그 생각을 지울 수 없었다. 지금 생각하면 그 때 그 어미 새는 강력한 발과 부리로 나를 공격했던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나는 새의 단단한 부리로 쪼이거나 날카로운 발톱에 찍혀 피를 흘린 기억은 없다.)

무리를 이루지 못하고 홀로 그러 했기에 소기의 성과를 이루지는 못했지만 새의 공격은 가히 끈질겼었다. 

모성의 힘이었을 그 힘을 거리낌 없이 제압한 나는 생각 없던 시절을 그리워하지는 않는다. 아마도 새에 대한 미안한 감정 때문이리라.

영화에 나오는 조류학자의 말에 따르면 새는 인간에게 도움을 주지 해를 끼치지는 않는다고 했다.

그런 새가 새끼를 노리는 아이가 아닌 이유 없이 어른 인간을 공격할 날이 오면 그 때는 아마도 인류의 종말이 오는 시기와 맞아 떨어지리라. 

히치콕 감독은 특별한 음악 없이 새의 날개 짓과 울음소리만으로 공포를 극대화 시켰고 진짜 새와 가짜 새를 적절히 조합해 영화의 완성도를 높이는데 성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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