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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60. 레베카(19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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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60. 레베카(1940)
  • 의약뉴스 이병구 기자
  • 승인 2017.08.12 11: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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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처의 망령에 시달리는 공포 영화의 시조는 알프레드 히치콕 감독의 <레베카>(원제: Rebecca)가 되겠다. ‘겠다’라고 단언하는 것은 이 영화처럼 엇나간 사랑의 비극을 일찍이 이처럼 잘 보여준 예는 없었기 때문이다.

전처라고 했으니 현재는 처가 아니고 망령이라고 했으니 이승이 아닌 저승의 일이고 시달린다고 했으니 그 영혼은 온전히 쉬지 못하고 구천을 떠돌고 있을 것이다.

그렇다면 왜 전처는 죽은 후에도 안식 없이 저쪽이 아닌 이쪽의 세계를 그리워하면서 전남편 주변을 떠돌고 있을까.

영화는 전처 레베카의 음산한 분위기가 감도는 안개 짙은 해변의 궁전 같은 저택을 중심으로 펼쳐진다.

소심하고 근본도 부실한 후처인 젊은 부인( 이 부인의 이름은 없다. 영화가 끝날 때까지 한 번도 거론되지 않는다. 다만 부모가 일찍 죽어 돈 많은 귀부인의 말동무로 생활하고 있다.)은 몬테카를로에서 영국의 돈 많은 귀족 맥심( 로렌스 올리비에)을 만나 사랑에 빠진다.

두 사람은 하객도 없이 조촐한 결혼식을 서둘러 올리고 출입문을 통과한 후에도 구불구불한 길을 한 참 동안 자동차로 가야하는 영국에서 가장 큰 거대한 저택에서 신혼살림을 한다.

수많은 하인들은 후처에게 깍듯하나 집안 살림을 담당하는 올린머리가 아름답지 않은 댄버스 부인 (주디스 앤더슨)만은 싸늘한 태도로 대한다. (댄버스 부인은 죽은 마님 레베카를 존경한다. 뒤돌아보면 언제나 가볍고 빠른 걸음을 걷고 있는 부인의 환상 속에 살고 있다.)

누가 안주인이고 누가 하인인지 헷갈릴 정도로 두 사람은 서로를 경계하는데 사망한지 1년이 넘은 전처 레베카의 흔적은 집안 곳곳에 아직도 남아 있다.

 

레베카를 상징하는 이니셜 R은 그녀를 공포 속으로 몰아넣는다. ( 스스로 약해서 그런지 아니면 초자연적인 힘을 가진 유령 때문인지 그도 아니면 상상 때문인지 이유는 잘 나와 있지 않다.)

이런 와중에 하녀는 부인은 절대로 미모,재치, 지성에서 레베카를 따라 갈 수 없다며 자살하라고 부추긴다. (영화에서는 레베카보다 후처가 훨씬 더 낫다.레베카도 잠시 등장하는데 확인해 보면 안다.)

후처는 분위기를 반전시키기 위해 전처가 그랬던 것처럼 저택에서 성대한 파티를 계획한다.

그리고 하녀가 고른 조상 복장으로 변장을 하는데 이를 본 맥심은 기겁을 한다. 치장한 부인의 모습이 레베카와 흡사했던 것이다.

하녀의 음모로 더욱 기가 죽은 후처는 레베카의 죽음의 진실에 한 발 씩 앞으로 다가간다.

그것은 감추려고 했는데 그녀 스스로 알아 낸 것이 아니라 맥심과의 대화를 통해 드러난다. 수영과 보트에 능숙했던 전처 레베카는 보트 사고로 사망했다. 맥심은 그녀를 가족 납골당에 안치했다.

어느 날 달도 없는 밤마다에 깊은 파도가 치고 잠수부는 가라앉은 요트에서 레베카의 시신을 발견한다.

보트는 안에서 밖으로 구멍이 뚫려 있는데 이것은 사고 때문이 아니라 누군가 고의로 그렇게 했다는 것을 말해준다.

경찰국장은 즉각 조사에 착수하고 맥심은 유력한 살인 용의자로 떠오른다. 맥심은 그 상황을 후처에게 설명한다. (그는 레베카와는 사랑이 아닌 증오로 살았다고 고백하기도 한다.)

바람난 레베카는 자신의 아기가 아닌 사촌의 아기를 임신한 사실을 맥심에게 알린다. (그리고 죽은 후 그 아이가 저택의 주인이 될 것을 상상하면 피가 끊어 오르겠지? 하면서 약을 올린다.)

사촌과 밀회의 장소로 이용됐던 별장에서 두 사람은 말다툼을 벌이고 레베카는 뒤로 넘어져 무거운 연장에 부딪친다. 미소 짓고 있지만 레베카를 죽었다.

죽기 직전 그녀는 집안의 주치의 대신 런던의 의사를 자주 만났다. 그런데 의사는 증언을 통해 레베카가 임신하지 않았고 말기 암 말기 환자였다는 사실을 밝힌다.

맥심의 설명은 계속된다. 죽은 시체를 보트로 옮긴 뒤 구멍을 뚫어 수장 시켰다는 것. 그러니 맥심은 살인자가 아니라 시체 유기자다. 의사의 증언에 따라 경찰은 레베카가 살해당하지 않고 자살한 것으로 판정한다.

용의자에서 풀려난 맥심은 후처와 함께 거대한 저택으로 돌아오는데 저택 주변은 오로라가 없는데도 밝다. 집은 불에 타고 있다. 집의 유리창 너머로 촛불을 들고 여기 저기 옮겨 다니며 불을 지르는 댄버스 부인의 모습이 보인다.

그녀는 무너져 내리는 집과 함께 죽는다. 레베카의 R도 사라진다. 이것으로 레베카의 망령은 사라졌을까. 이후 맥심과 후처는 행복하게 잘 살았을까. 밤바다의 깊은 신음 소리는 더 이상 들려오지 않을까.

영화는 그런 것 까지는 보여 주지 않고 막을 내린다. 이 영화를 제작한 셀즈닉은 그 전해 엄청난 돈을 투자해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 의약뉴스 ‘백채기의 내 생애 최고의 영화’ 215번째 참조) 를 제작해 흥행 대박을 터트렸다.

그는 알프레드 히치콕 감독에게 이 영화를 맡기면서 또 한 번의 흥행을 노렸고 예측은 맞아 떨어졌다.

히치콕 감독은 명성과 작품성과에 걸맞지 않게 아카데미 감독상은 한 번 밖에 수상하지 못했는데 바로 이 작품이다.

주인공 역을 맡은 조앤 폰테인은 예쁜 얼굴에 공포를 가득 담아 관객들의 혼을 울렸고 이후 스타 배우로 명성을 날렸다.

처음엔 느리게 진행됐던 영화는 나중에는 빠르게 나가 서스펜스의 극적인 묘미를 배가시킨다.

국가: 미국

감독: 알프레드 히치콕

출연:조낸 폰테인, 로렌스 올리비에, 주디스 앤더슨

평점:

 

: 이 영화를 배경으로 뮤지컬 ‘레베카’가 탄생했다. 우리나라에서도 인기가 대단한데 댄버스 부인 역에 과거 핑클의 멤버가 등장한다.

이효리와 함께 시대를 풍미했던 바로 옥주현인데 옥주현은 이 뮤지컬로 제 2의 인생을 화려하게 수놓고 있다. 

이름만으로도 대단한 티켓 파워를 자랑하는 그녀는 단지 이름 때문이 아니라 실력으로 값어치를 톡톡히 해내고 있다.

옥주현은 영화 속의 댄버스 부인과는 사뭇 다르다. (비교 자체가 무의미하다. 훨씬 더 젊고 키가 크고 미모는 말 안 해도 알 것이다 노래 솜씨는 가히 폭발적이다.) 

검은 긴 생머리를 태극기처럼 휘날리며 검은 숄을 걸치고 커다란 제스처를 쓰면서 부르는 노래는 레베카의 저주가 결코 장난이 아니라는 것을 입증한다.

입을 최대한 크게 벌리고 “밤바다의 깊은 신음 소리가 저주를 부르고 검은 그림자들이 창문 틈으로...”로 시작하는 노래를 듣다 보면 이제 그만 저주는 끝내고 행복은 시작하자는 다짐을 하게 된다.

옥주현은 복수의 신이 아닌 행복의 신을 연기하는 것만 같다.

시간 이든 그 밖의 다른 이유 때문에 옥주현의 뮤지컬을 직접 보지 못하는 독자들은 인터넷에 떠 있는 맛보기 영상만으로도 그녀의 위력을 실감할 수 있으니 아무리 바빠도 꼭 찾아보기를 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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