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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8. <권력과 영광>(19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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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8. <권력과 영광>(1940)
  • 의약뉴스 이병구 기자
  • 승인 2017.06.25 09: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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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제처럼 생긴 사제가 있다. 적당히 권위적이고 목소리도 사제와 비슷하다. 영세도 주고 고해성사도 듣고 죄지은 자를 용서할 줄 도 안다. 그런데 이름은 없다. 다만 위스키 사제로 불린다. 그 자신은 타락한 사제라고 말한다.

그레이엄 그린의 소설 <권력과 영광>(원제: The power and the glory)의 주인공 모습이다. 그는 별명이 말해주 듯 알코올 중독자이다. 거기다 용서받지 못할 간음으로 태어난 딸도 있다. 그러니 스스로 칭한 타락한 사제가 맞다.

그 사제가 쫒기고 있다. 다른 사제들은 죽거나 법이 미치지 않는 다른 주로 도망을 갔다. 마을에는 그 밖에 없다. 1920년 대 멕시코의 어느 주가 배경인 이 소설은 도망자 위스키 사제의 이야기다.

소설의 첫 머리는 뜨겁게 내리쬐는 햇볕과 모든 것을 표백하는 먼지로부터 시작한다.

이 글을 읽는 독자라면 태양이 뜨겁고 먼지가 도처에서 이는 황량한 벌판의 어느 곳에 쭈그리고 앉아 술을 애타가 기다리고 있는 거지꼴의 위스키 사제를 연상한다면 좀 이해가 쉽겠다.

당국은 성당을 파괴하고 사제를 압박한다. 결혼을 강요하고 거부하면 잡아서 죽인다. 하느님의 아들이라고 해도 도망가지 않고는 배길 재간이 없다.

 

주지사는 경찰을 닦달한다. 우기가 닥치기 전 이번 달 안으로 그를 잡아들이라고. 북쪽은 산악지대이고 남쪽은 바다인 작은 주이니 가가호호 수색하면 그를 체포하는 것은 시간문제다.

그는 용케도 잘 피한다. 아무리 타락했어도 사제인 만큼 마을 사람들은 경찰에 신고하기보다는 숨겨 주면서 박해와 고통을 함께 하는 쪽을 택한다.

영리한 경위(그도 사제처럼 이름이 없다. 그저 서장보다 낮은 직급의 계급으로 불릴 뿐이다.)는 인질을 잡고 유다처럼 밀고 하지 않으면 인질을 처형한다. 

그렇게 처형된 인질이 3명이나 된다.

자신 때문에 무고한 인질이 죽는데 아무리 타락한 사제라도 마음의 고통이 없을 수 없다. 브랜디로 혀가 굳을 때쯤 그는 체포되기를 바라는 간절한 기도를 올린다.

이런 사제에게 기도 대신 왜 제 발로 경찰을 찾아가 자수하지 않느냐고 물을 수는 없다. 그는 살기 위해 도피하는 것이 아니라 쫒으니 마지못해 그렇게 하는 것으로 보인다. 적극적인 도피의지나 생명에 대한 간절한 욕망 같은 것은 잘 보이지 않는다.

그는 바나나 공장, 노인과 소년과 쥐가 사는 농가에 숨고 강과 늪지와 숲을 지나 방향과 상관없이 경위나 군인, 붉은 셔츠단의 추격을 피해 도주를 계속한다.

그런 와중에도 마을 사람들은 그에게 미사를 부탁한다. 그 또한 부끄러워하면서 그들의 요구를 들어 준다.

사제처럼 권위를 담은 목소리로 굶주림과 인질 살해의 참상이 펼쳐지고 있는 마을에서 ‘고통이 기쁨의 일부 이듯이 이곳은 천국의 일부’라고 위로한다.

이제 경찰은 1마일 밖에서 추격전을 펼친다. 마을 사람들은 급하게 미사가 끝나면 여자가 아프거나 남자가 죽어가니 가지 말라고 잡는 대신 어서 떠나라고 등을 떠민다.

한 마디로 그는 마을의 화근 덩어리가 된 것이다.

숨겨 논 맥주나 브랜드를 얻어먹고 다시 사제는 길고 거칠고 힘든 도망을 이어간다. 한 번은 경위에게 잡히기도 한다.

사제의 얼굴을 본 적이 없는 경위는 사진 속의 수배인물인 사제가 누구인지 알지 못해 마을 사람들을 일일이 추궁하지만 누구도 그를 손가락으로 가리키지 않는다.

거액의 현상금이 걸려 있다는 사실에도 주민들은 고개 숙인 사제를 지목하지 않는다. 단 5분간의 연인이었던 마리아는 그를 남편이라고 하고 딸은 아빠라고 둘러대는 기지를 발휘한다.

또 한 번은 강을 건너자 입술의 양쪽 끝에 노란 송곳니 두 개 밖에 없는 짐승처럼 생긴 독실한 가톨릭 신자를 자처하는 메스티조(혼혈인, 그 역시 사제나 경위처럼 이름이 없다.)와 동행하는 처지에 몰린다.

사제는 육감적으로 그가 현상금을 노린 자라는 것을 눈치 챈다. 그래도 끝내 그를 용서하지 못한다.

어느 날은 술을 먹다 잡혀 양동이의 오물 썪는 냄새가 진동하는 깜깜한 감옥에 갇히는 신세가 되기도 하고 어느 날은 미국인 남매의 도움으로 핍박이 없는 주 경계를 넘을 수 있는 행운을 얻기도 한다. 

이제 그에게는 정상적인 생활이 가능한 것으로 보인다. 뒤 돌아 보지 말고 앞으로 가기만 하면 사제의 품위와 인간다움이 그를 기다리고 있는 하느님의 세계로 들어선다.

그런데 왜, 그는 다시 뒤돌아서 갔을까. 두 명의 정부 요인을 죽이고 1만 달러를 탈취한 죽어가는 살인자 그링고의 마지막 고해성사가 그에게 안락한 삶보다 더 중요했을까.

부상당한 개가 물고 있는 뼈다귀를 뺏고 죽은 아이의 입에 있는 설탕까지 도둑질해 먹으면서 생명을 연장했던 그가 죽음 직전에 몰린 살인자의 고해를 듣기 위해 생명을 버린다니, 의문은 여전히 남는다.

철두철미한 사제가 아닌 것은 이미 밝혀졌다. 무시해도 그 누구도 비난하지 않는다. 심지어 주교나 하느님도 위스키 사제의 안전을 고해보다 더 높게 쳤을 것이다.

그런데 그는 총살당해 순교의 길을 갔다. 타락했어도 사제는 사제였기 때문이라는 것. 이해가 가지 않아도 할 수 없고 이해 할 수 없어도 할 수 없지만 그는 사제라는 직업과 그 직업인이 가진 행동은 직업 수행에서 지장을 주지 않는다고 생각한 것이다.

종교의 길은 어렵고 불가해하며 세속의 정의로는 설명되지 않는 그 무엇이 있다해도 어리둥절 하기는 마찬가지다.

수없이 신을 조롱하면서도 사제라는 직업이 갖는 무게를 가늠할 수 없는 것은 예나 지금이나 마찬가지다.

: 사제는 딸을 그리워한다. 신에 의지한 사람이 혈육의 정에 마음이 흔들리는 것을 보니 그는 신의 심부름꾼 이전에 작은 바람에도 나부끼는 생각하는 갈대임이 분명하다.

포도주 한 잔 먹기 위해 온갖 굴욕을 감수하고 순간의 욕정을 참지 못하고 잘못에 대한 구원을 얻기 보다는 동물과 먹이 다툼을 하고 의심의 마음을 거두지 못한다. 

이 세상에 살았던 적이 없을 만큼 뭐 하나 제대로 한 게 없는 구제불능의 쓸모없는 인간일 뿐인데 사제라는 직책 하나 때문에 그는 마지막에 죽음의 중심부로 걸어간 것이다. 

그는 박해 받은 사제인가. 순교 했기에 성인의 반열에 오른 사제인가. 정해진 결론대로 쓰여 졌다 해도 참으로 부조리한 결말이다.

성인과 죄인은 한 끗 차이라지만 그의 죽음은 100% 자신의 의지였다고 믿을 수 없어 그리 안타까워 보이지 않는다. 

확고한 신앙심으로 뚜렷한 신념아래 목숨을 초개와 같이 버린 한 위대한 사제의 휴먼 드라마는 아니다 라는 이야기다. 살았다면 오히려 더 구차했을 것이고 결국 알코올 중독으로 죽었을 목숨이다.

그러니 한 일이년 먼저 죽은 들 그 목숨이 그리 중요할까. 살았다고 해서 아내나 딸에게 충실할 것도 아니고 사제의 직을 완벽하게 수행하는 몸과 행동이 하나 된 행동을 할 것도 아니다. 

그렇다고 그 죽음을 개죽음이라고 함부로 폄하할 수도 없다.

정해진 죽음의 길로 가는 것은 결코 아무나 할 수 있는 행동이 아니다. 겉으로는 사제이지만 속은 사제가 아닌 사제들이 많은 세상에서 위스키 사제는 사제가 어떠해야 하는지를 보여준 전형은 아니더라도 하나의 모델은 아닐까하는 생각을 해보게 된다.

신의 참뜻은 과연 무엇이었을까.

그레이엄 그린은 우리에게도 익숙한 영화 <제 3의 사나이>,<애수>의 원작자이기도 하다. 

이 책을 번역한 김연수 작가에 따르면 그가 <권력과 영광>을 쓴 것은 순전히 1938년 멕시코 여행의 덕 때문이었다. 그런데 지금까지 알려진 여행의 동기는 ‘엘리자베스 1세 때 가장 혹독한 종교적 박해를 취재하기 위해서’ 였다. 

하지만 셜리 템플 소송의 영향이 더 컸다는 것.

존 포드가 연출한 영화 ‘Wee willie winkie'에 출연한 당시 8살의 소녀 셜리를’ 수상쩍은 교태, 육감적인 작은 몸‘ 등의 성적 비하 표현을 써서 잡지에 기고했고 영화 제작사인 21세기 폭스 사는 그를 고소했다.

기고문을 실은 잡지는 폐간됐고 그린은 구속을 피하기 위해 범죄인 인도 조약이 체결되지 않은 멕시코로 도피했다는 것. 어쨌든 당시 5주간의 멕시코 여행은 20세기 최고의 영문학 작품을 탄생하게 한 일등 공신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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