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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6. 북북서로 진로를 돌려라(19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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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6. 북북서로 진로를 돌려라(1959)
  • 의약뉴스
  • 승인 2017.06.11 16: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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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차가 빠져나온 긴 터널의 끝은 온통 눈 천지였다.' 가와바타 야스나리의 소설 <설국>의 첫 문장은 이렇게 시작된다.

알프레드 히치콕 감독의 <북북서로 진로를 돌려라>( 원제: North by northwest) 의 마지막 장면은 기차가 터널을 막 통과할 즈음 끝난다. 과연 터널의 끝에는 무엇이 있을까.

소설과 영화는 아무런 연관이 없다. 소설이 터널을 빠져 나온 이후의 이야기라면 영화는 터널로 들어갈 무렵 앤딩이다.

터널 이후의 세상이 을씨년스러운 것이라면 터널로 진입하는 세상은 온통 6월의 장미꽃밭을 상상할 수 있을 뿐이다.

각설하고 영화는 터널로 진입하기 까지 걸리는 험난하고 거친 세계를 뚫고 마침내 스무스 한 세계로 향하는 과정까지를 리드미컬하게 그리고 있다.

<현기증> <사이코> <오명> 등 히치콕 감독의 수많은 히트작이 있지만 첫 손에 꼽아도 문제될 것이 없는 이 영화는 음모와 복선, 반전과 배신, 죽음과 공포 등 온갖 부정적인 단어들을 굴복시키고 아름다운 사랑의 결실로 끝을 맺고 있다.

 

미리 끝을 내 좀 싱겁기는 하지만 끝을 안다고 해서 과정의 치밀함까지 짜지 않은 것은 아니다. 

광고회사 중역 떠버리(쉬지 않고 떠들어 댄다.) 손 힐(케리 그랜트)은 친구들과 술자리를 갖다 영문도 모른 채 비빌 병기를 가지고 다니는 단지 심부름꾼이라고 말하는 두 명의 괴한에게 백주 대낮에 납치당한다.

대저택으로 끌려간 그는 자신이 손 힐이 아닌 캐플란 이라는 인물로 오해를 받고 있다는 사실을 안다. 하지만 끌고 간 악당들은 신분증을 제시해도 위조된 것으로 믿고 좀처럼 손 힐이 아니라 캐플란이라고 우긴다.

술 고문으로 만취한 그는 비몽사몽 가운데 운전자를 밀치고 홀로 운전하다 음주 단속에 나선 경찰에 붙잡힌다. 경찰과 함께 사건 현장을 다시 찾았으나 범인들의 완전한 연극 때문에 그만이 반미치광이 취급을 받는다.

영문도 모르고 여전히 쫒기는 손 힐은 자신이 캐플란이 된 사실을 캐다가 자신과 이야기 하던 유엔 대사가 등에 칼을 맞고 숨지자 살인범으로 몰려 더 큰 위험에 처하게 된다.

이즈음 미 국가정보국은 손 힐이 악당의 손에 죽지 않고 얼마나 버틸 수 있을 지 논의한다. 알고 보니 이 모든 계획과 작전은 정부 당국의 비밀 요원들이 꾸민 일이다.

손 힐을 구하려고 우리 요원이 위험에 빠지는 일이 있어서는 안 된다는 원칙을 세운 정보 당국은 중요한 임무를 띤 요원의 비밀이 탄로나 적에게 암살 되는 상황을 막기 위해 전전긍긍한다.

이런 사실을 알지 못하는 손 힐은 캐플란은 찾아 누명을 벗기 위해 시카고 행 열차에 올라탄다. 통로에서 미모의 여자 이브 캔달( 에바 마리 세인트)을 우연히 만난 손 힐은 길을 서로 비켜 주기 위해 부딪히다 첫 눈에 반한다.

여자 역시 그에게 호감을 보이면서 경찰을 피해 숨은 그를 다른 방향을 가리켜 지켜준다.

둘은 기차 식당 칸에서 만난다. 여자는 26살이며 이혼녀인 사실을 묻지 않아도 먼저 밝히면서 남자를 유혹한다. 그가 살인범으로 수배중이라는 사실도 안다.

먹던 송어고기가 튀어 나올 만한데 남자는 여자의 다음 말에 안도한다. 잘 생겼으니까 신고 안한다고. 그가 담배에 불을 붙여 주고 끄기 위해 거둬들이던 손을 그녀가 잡아당기는 장면은 대단히 노골적이다.

기차는 계속 달린다.

호텔에 들어서 둘은 키스를 하는데 세기의 키스라고 할 수 는 없어도 명장면이다. 길고 오래하는데 질리지 않는다. 수시로 변하는 카메라 각도가 두 사람의 표정과 분위기를 제대로 포착한다.

이 순간 둘은 누명을 벗기 위해 발버둥 치는 ‘누명쓴 사나이’도 비밀 임무를 띤 정부의 요원도 아니고 그저 사랑하는 남녀일 뿐이다.

기차역에서 남녀는 기약 없이 헤어진다. 언제, 어디서 만날 약속도 하지 않는다. 하지만 관객들은 다시 두 사람이 만날 것을 의심하지 않는다. 둘의 사랑이 가식 없는 진짜 사랑이라는 것을 눈치 챘기 때문이다.

장면은 바뀌어 허허 벌판에 남자가 누군가를 기다리기 위해 서 있다. 캐플란과 접선 장소를 알아낸 여자의 기지로 남자는 버스에서 내려 인적 없는 곳을 서성인다. 

그리고 농작물도 없는데 비료를 뿌리는 경비행기의 기총사격을 받는다. (이 장면 볼 만하다.) 구사일생으로 살아난 손 힐은 호텔방에서 여자를 다시 만난다.

이번에는 다가서는 여자를 몸으로 껴안지 못한다. 죽음에서 겨우 탈출했는데 여자가 만날 장소를 정확히 알려 주지 않고 자신을 위험에 빠트렸다고 오해했기 때문이다.

여자의 유혹을 물리치고 호텔방을 빠져 나온 그는 미술품 경매장에서 다른 남자와 함께 있는 여자를 발견한다.

죽음의 순간에 그는 엉뚱한 낙찰가를 부르면서 경찰에 끌려 나가 위기를 모면한다. ( 이 장면은 캐리 그랜트의 연기가 돋보인다. 눈물 나는 코미디를 능청스럽게 해낸 연기가 볼 만하다.)

국가: 미국

감독: 알프레드 히치콕

출연: 케리 그랜트. 에바 마리 세인트

평점:

 

: 이후 장면은 두 사람이 오해를 풀어가는 과정이다. 상공에서 떠밀어 죽이기 위해 경비행기로 여자를 데리고 떠나려는 악당의 계획을 알게 된 캐리 그랜트가 에바 마리 세인트에게 위기의 상황을 2층에서 1층으로 쪽지를 날려 알리고 둘이 도망치는데 손에 땀이 절로 난다.

미국의 역대 대통령의 얼굴이 새겨진 러시모어 산을 배경으로 가히 곡예를 벌이면서 탈출하는 두 사람의 연기는 ‘007의 제임스 본드’와 ‘본드 걸’이 울고 갈 정도로 정교하다.( 이 영화는 여러모로 후에 나오는 007 시리즈와 닮았다. 세인트의 압도적인 미모는 본드 걸과 비교될 만하고 살기 위해 남은 시간을 재는 캐리 그랜트의 음모와 술수, 죽을 수 있는 장면에서 기어이 살아남아 마침내 걸과 행복을 즐기는 장면까지.)

다시 처음으로 돌아가 보면 <설국>은 희극도 비극도 아닌 허무주의가 작품 전반을 감싸고 돈다. 터널을 지나서 세상은 하얘지고 신호소에 기차는 멈추어 섰지만 희망은 아니다. 한 남자와 두 여자의 그저 그런 인생 이야기 일 뿐이다.

영화는 어둠의 긴 터널을 막 통과하려는 찰라 끝난다. 터널의 끝에는 흰 눈 대신 6월의 장미꽃이 만발했을 터다. 영화의 남녀는 침대칸 짐칸에서 전에 하지 못한 것을 막 시작 하려고 한다. 

책과 영화는 이처럼 전혀 연관이 없다. 다만 기차가 등장하는 것만 같은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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