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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7. <보물섬>(188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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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7. <보물섬>(1883)
  • 의약뉴스 이병구 기자
  • 승인 2017.06.06 22: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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섬 근처에 살아본 사람들은 안다. 섬에는 뱀과 염소와 꿩이 있다. 해당화가 지천에 널려있고 심하게 휘어진 소나무가 절벽에 겨우 버티고 있는데 그 모습이 무척 아름답다는 사실을.

그리고 잘 하면 보석 비스 무리한 것도 볼 수 있다. 어린 시절 나는 곧잘 섬에 놀러가곤 했다. 어느 날 그 곳에서 태양에 반짝이는 주먹보다 조금 큰 돌을 발견했다.

돌에는 두꺼운 유리조각 같은 것이 박혀 있었는데 누가 일부러 박아 놓은 것이 아니라 자연히 그렇게 된 것이었다. 그 아래는 훨씬 더 큰 돌에 빛나는 많은 보석들이 있는 것을 보았다. 나는 들 수 있을 정도의 돌을 한 두어 개 가져온 기억이 있다.

수년이 지난 후 그것이 수정이나 크리스털로 불리는 석영의 일종이라는 것을 알았다. 고등학생이 된 후 불현 듯 생각나 대문 근처에 두었던 그것을 찾았으나 어디로 갔는지 행방을 아는 사람이 아무도 없었다.

방학 때 작심을 하고 섬에 들어간 나는 하루 종일 섬을 뒤졌으나 석영은커녕 모양 나는 돌조차 찾을 수 없었다. 석영은 누군가에 의해 섬에서 완전히 자취를 감추고 말았다.

석영도 찾지 못하고 언덕에서 굴러 떨어져 팔뚝과 무릎만 까지고 돌아왔던 쓰라린 기억은 추억으로 남아있다.

 

로버트 루이스 스티븐슨의 소설 <보물섬>( 원제: Treasure island)을 읽으면서 나는 어린 시절 섬에서 가져왔던 석영을 생각했다. ( 책이 아니라 술집이나 음식점간판 혹은 회사 이름이 보일 때도 내 손위에서 반짝이던 수정이 생생하다. 지금 그 섬은 개발로 사라지고 없다.)

작은 석영에 대한 기억도 이처럼 여전한데 해적과 싸워 마침내 엄청난 보물을 획득한 소년 짐 호킨스가 가졌을 보물섬에 대한 기억은 말해 무엇 하랴.

포구의 목 좋은 곳에서 여관업을 하는 부모와 함께 살던 짐은 구릿빛 얼굴에 칼자국이 선명한, 궤짝하나를 들고 온 늙은 뱃사람 빌리 본즈를 투숙객으로 맞으면서 모험의 세계로 여행을 떠난다.

한 눈에 봐도 거칠게 살아온 티가 역력한 그는 외다리 뱃사람을 기다리는 동안 언제나 럼에 취해 있었는데 알코올 중독으로 움직이지 못해 위협을 할 수 없을 때는 ‘내 손가락이 떨리잖니, 가만히 있지를 못해’ 하고 애원하거나 금화로 짐을 유혹하면서 럼을 먹었다.

해적중의 해적 ,해적의 왕으로 불리는 플린트 선장의 일등 항해사 였던 그는 결국 기다리던 외다리를 만나지 못하고 술병으로 죽는다.

짐은 빌리 본즈의 밀린 여관비를 대신할 물건을 찾기 위해 시체를 뒤지고 위층에 있던 그가 남긴 궤짝에 손을 댄다. 그리고 거기서 종이 한 장을 손에 쥔다.

그것은 보물이 숨겨진 섬의 위치를 알려주는 보물섬 지도였다. 짐은 의사 리지브와 대지주 트로렐리와 함께 지도를 바탕으로 보물을 찾아 떠난다.

항해에 모집된 선원들 가운데는 외다리 존 실버도 끼어 있다. 빌리 본즈가 기다리던 바로 그 사람이다.

순조로운 항해가 이어지던 어느 날. ( 사건은 항상 어느 날에 벌어진다.) 짐은 갑판위의 사과상자 속에서 조리사이며 항해사로 함께 탐험에 참여한 키다리 존 실버가 다른 선원과 작당해 반란을 모의한다는 사실을 엿듣게 된다.

목발에 의지해야 하는 외다리 임에도 존 실버는 다른 선원들보다 체격이 좋고 움직임이 빠르며 통솔력이 있어 요리사라기보다는 선장이라고 불러도 좋을 만큼 선원들의 지지를 받고 있다.

의사나 대지주는 물론 짐에게도 호의적으로 대하는 데 그 태도는 무척 신사다워 아무 생각 없이 행동하는 다른 선원들과는 질적으로 차이를 보인다.

항해에 반드시 필요한 든든한 원군에게 뒤통수를 맞은 짐의 기분은 한마디로 엉망이다.

‘너니까 질해준다’는 친근한 말로 짐의 환심을 샀으니 호킨스가 느꼈을 배신감은 더 컸다. ( 나중에 짐은 자신에게 한 똑같은 말을 다른 선원에게도 하고 다니는 존 실버에 미움의 감정이 커져 가지만 그의 선악을 넘나드는 교활한 행동에 묘한 존경심마저 느낀다. )

짐은 기회를 틈타 선상 반란음모를 의사와 지주에게 알리고 수적으로 열세인 세 사람은 스몰렛 선장과 함께 반란을 잠재울 기회를 노린다. (다 알다시피 반란의 성패는 정보를 먼저 얻는 자들의 손에 달려 있다.)

사전에 반란음모가 탄로 난 이상 역적모의가 실패로 끝날 것은 자명한 일이다. 하지만 작심하고 달려드는 상대편을 제압하는 것은 쉽지 않다. 많은 희생자가 난 후 히스파니올라 호는 원래 주인에게 돌아온다.

영국기 대신 해적기를 돛대에 달고 기세를 올리던 해적 들은 하나 둘 죽고 살아서 돌아오는 길에는 해적 플린트의 밑에서 일하던 벤 건( 3년 간이나 홀로 버려졌던 그는 탐험대가 오기 전에 보물을 파서 안전한 곳에 숨겨 두었다.)과 존 실버 그리고 의사와 지주, 당연히 기록자인 나 짐 호킨스 정도만 남았다.

존 실버가 살아서 황금의 일부를 차지했다는 사실은 권선징악의 관점에서 보면 매우 이례적이다.

역적을 모의하고 실제 실행에 옮긴 존 실버는 금괴 한 상자를 들고 부상당한 선장의 안정을 위해 잠시 정박한 중남미에서 가장 가까운 항구에서 일행을 따돌리고 사라졌다. 일행은 그의 행방에 관심을 보이거나 수배령을 내리지도 않았다.

짐은 물론 생존한 그 누구도 실버가 해적 재판을 통해 교수형에 처해져 목을 매단 채 햇볕에 말라비틀어진 시체로 전시되는 것을 원치 않았다.

헤어진 늙은 흑인 아내를 만나 어디선가 행복한 말년을 보내고 있을 실버를 애정 어린 눈으로 짐 일행이 바라보는 것은 누구도 범접할 수 없는 카리스마 넘치는 그가 순 악당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여덟냥 은화, 여덟냥 은화'를 외치는 '플린트 선장'이라는 이름의 앵무새를 어깨위에 달고 다니는 그는 안전한 곳에서 이런 노래를 부르면서 럼주를 들이킬 것이다.

“ 죽은 자의 궤짝 위엔 열다섯 사람,

얼씨구나 좋다, 럼 주가 한 병.

나머지는 술과 악마가 이미 해치웠네.

얼씨구나 좋다, 럼주가 한 병.”

: 섬에는 두 얼굴이 있다. 평화와 전쟁. 보물섬에도 평화가 있고 전쟁이 있다. 섬에 상륙하기 전에도 전쟁을 했던 짐 일행과 해적들은 섬에 도착해서도 피비린내 나는 전쟁을 벌였다. 

죽고 죽이는 살벌한 전쟁이었다. 단검, 권총, 장총, 대포 등 온갖 무기가 동원됐다. 전쟁이 끝나자 비로소 섬에는 평화가 찾아왔다. 거친 썰물 대신 부드러운 밀물이 모래사장을 적셨다.

섬에 남겨진 세 명의 해적은 서로 죽을 때 까지 전쟁을 하거나 살기 위해 평화를 하겠지만 독자들은 그들의 전쟁과 평화에 대해 아무도 관심을 기울이지 않는다. 

그들의 생사 여부는 <보물섬>의 얼개와는 큰 연관이 없기 때문이다. 전쟁과 평화라는 섬의 두 얼굴은 외다리 존 실버에게 그대로 투영된다. 악당과 그에 반하는 선한 마음의 양다리를 마음에 품고 있는 실버는 포로로 잡힌 짐을 살려준다.

마음만 먹었으면 협상을 빌미로 의사와 지주는 물론 선장도 죽일 수 있었는데 그러지 않았다. 배신과 음모, 계략과 무자비한 살육, 협상과 무력이라는 양날의 칼을 들고 최후까지 살아남아 보물을 차지하고 떠나는 실버 선장.

섬에는 그것이 보물섬이 됐든 해골섬이 됐든 제주도가 됐든 그 어떤 섬이 됐든 평화가 올 수도 전쟁이 벌어질 수 있음을, 결코 미워하거나 죽일 수 없는 실버 선장을 통해 다시금 생각하게 한다.

<보물섬>은 해양, 모험 소설의 고전으로 오늘날에도 여전히 인기도서 목록에 올라있다. 보물을 향한 인간 욕망은 빅토리아 시대나 지금이나 변함이 없기 때문이다.

해적왕 플린트가 숨겨둔 보물( 그가 누군가에게서 강탈한)을 강탈하고도 전혀 문제의식을 느끼지 못하는 제국주의 냄새가 물씬 풍기는 청소년을 위한 해적이야기( <보물섬>은 1881년 청소년 잡지 ‘Young folks' 에 2년간 연재됐다. 이후 1883년 단행본으로 묶었다.)가 100년이 넘도록 인기를 끄는 것은 그것이 일방적인 교훈의 주입이 아니라 흥미위주로 스토리가 빈틈없이 짜졌기 때문이다.

어른을 위한 동화라고 해도 손색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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