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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5. 아라비아의 로렌스( 196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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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행 2017.05.30  09:41: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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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지 루커스, 스티븐 스필버그, 마틴 스코세지 감독이 데이비드 린 감독의 <아라비아의 로렌스>( 원제: lawrence of arabia)의 열성적인 팬 이었다는 사실은 제법 알려져 있다.

자기만의 세상이 있는 유명 감독이 다른 감독의 작품을 칭찬하는 일이 드물지 않지만 이들이 <아라비아의 로렌스>에 바치는 찬사는 차원이 다르다.

그냥 인사치레로 하는 말이 아니다. 거기에는 존경과 감사의 뜻이 담겨 있다. 영향을 크게 받았다는 말이다. 사람들이 이 작품을 역사상 가장 위대한 대서사시라고 하는 평가는 과장된 말이 아니다.

장대한 사막에서 펼쳐지는 황홀하도록 아름다운 장면들은 영화의 얼개를 정확이 파악하지 못해도 보는 것만으로도 감탄을 자아내기에 충분하다. 특히 낙타를 동원한 거침없는 질주 신은 전쟁의 참상을 미처 생각하기도 전에 손에 땀이 절로 나게 만든다.

내용은 단순하다면 단순하다. 아라비아의 전통 부족 언어를 구사하고 아라비아에 깊은 애정을 가진 영국군 중위 로렌스(피터 오톨)가 아라비아를 위해 전쟁에 참여해 벌인 활약상에 대한 기록이기 때문이다.

장군 앞에서도 시건 방을 떠는 겁 없는 그에게 아라비아 파견 근무 명령이 떨어진다. 카이로에서는 별 볼일 없지만 아라비아에서는 요긴하게 사용될 수 있다는 믿음이 지휘부에 있었다.

그곳에는 이미 대령이 들어가 있다. 하지만 영국 정부는 로렌스를 추가파견하고 그에게서 대령이 하지 못하는 무언가 색다른 임무가 완성되기를 기대한다.

그는 가이드 한 명과 함께 전쟁을 지휘하고 있는 파이잘 왕자( 알렉 기네스)를 만나기 위해 사막 깊숙한 곳으로 들어간다.

그 과정은 순탄치 않다. 모래 폭풍이 불어오고 태양은 뜨겁고 바람한 점 없고 물은 말라가고 몸은 염기로 수축되는 고난의 연속이다. 하지만 그는 동행한 베두인이 정말로 영국 군인이냐고 물을 정도로 잘 견뎌내고 있다.

둘은 마침내 우물 앞에 섰다. 멀리서 희미한 실루엣이 다가온다. 그것은 하나의 점이었다가 점점 커지면서 마침내 모습을 나타낸다.

서서히 드러나는 존재는 빠른 화면보다는 아주 느리게 촬영됐다. (이 장면은 일렬횡대로 늘어선 수 십 마리의 낙타 질주 장면이나 폭약으로 고꾸라진 기차에 가하는 기관총 사격보다 더 볼 만하다.)

신기루의 환상이 거칠 때쯤 말 탄 사나이는 가이드를 쏴 죽인다. 자기의 우물을 먹었다는 이유로 그랬다는 족장 알리(오마 샤리프)는 살인에 대한 후회 같은 것을 찾을 수 없다. 알리는 그에게 파이잘 왕자가 있는 곳을 안내 하겠다고 하지만 로렌스는 무시한다.

죽을 수도 있다는 그의 경고를 무시하고 로렌스는 무사히 군용 나침반을 이용해 왕자를 만난다. 왕자는 대령보다는 중위에게 호감을 보인다. 로렌스는 대령과는 다른 작전 계획을 왕자에게 말한다.

왕자의 신임을 산 로렌스는 터기 군에 점령당한 다마스쿠스를 차지하기 위해 50마리의 낙타 부대를 이끌고 다시 더 깊은 사막으로 진군한다.

가다가 부족이 다른 아우다( 안소니 퀸)를 만난다. 부족장인 아우다는 처음에는 로렌스를 믿지 못하지만 속임수 대신 정면 돌파를 택하는 그를 신뢰하게 된다.

로렌스는 더러운 놈들, 잔인한 야만인 이라며 아랍인들이 부족끼리 서로 싸우는 한 힘없는 집단, 어리석은 집단에 불과하다고 설득한다.

끔찍한 혼란을 종식시키는 것은 협력이라는 점을 강조한다. 그는 아우다 부대와 합류해 목적지를 향해 앞으로, 앞으로 나아간다.

머리위의 태양은 가차 없다. 낙오한 병사가 생긴다. 그는 죽게 내버려 두라는 족장의 말을 무시하고 왔던 길을 되돌아간다. 그의 등 뒤로 자살행위라거나 죽는 것이 그의 운명이라거나 그것이 신의 뜻이라는 말은 들리지 않는다.

또 한 번의 신기루가 펼쳐진다. 멀리서 그가 낙오병을 데려 온다. 병사들은 함성을 지른다.

정해진 운명은 없다, 스스로 운명을 써나가야 한다, 이것이 나의 운명이다, 라고 로렌스는 생각한다. ( 하지만 이 병사는 살인에 가담해 부족 간 일촉즉발의 위기를 몰고 온다. 그 때 로렌스는 자기 손으로 그를 쏴 죽인다. 살렸으니 죽인 것도 운명일까. 그는 숱하게 죽이지만 그를 따랐던 꼬마가 사막의 늪에 빠져 죽는 것을 구하지 못했고 부상당한 나머지 꼬마를 스스로 죽였다. 꼬마를 죽일 때 그는 비로소 사람을 죽인다는 작은 죄책감을 가진 것으로 보인다. )

그의 이런 진심들이 통했을까.

아우다는 그를 도와 터키 군을 공격하는데 동행한다. 신이 창조한 최악의 장소라는 거친 사막도 무사히 건넌다. 승리가 목전에 왔다. 방심한 탓일까. 그는 알리 족장과 거리를 배회하다 터키 군에 잡힌다.

푸른 눈을 가졌다는 이유로 그는 터키 대장의 심문을 받는다. 아마도 동성애자였을 대장은 그의 흰 피부를 희롱한다. 반항하던 로렌스는 태형과 성적 고문을 당한 후 자괴감에 빠진다.

잔인한 살육전에도 끄떡없던 그의 강심장이 심하게 흔들리고 못 말리는 자아도취증에 빠졌던 자존심도 허물어진다.

전쟁의 환멸이 스멀스멀 몸속으로 파고 들 즈음 전쟁은 아랍의 승리로 끝난다. 바다로 고정된 터키군의 대포는 사막에서 낙타를 타고 공격하는 로렌스 부대를 감당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아라비아 인들은 그를 전쟁영웅으로 추켜세우고 그가 해내기 전에는 불가능했기 때문에 영국군은 대령으로 승진시키고 훈장을 준다.

하지만 로렌스는 더는 군대에 머무르지 않는다. 영국과 프랑스가 벌이는 전후 협상에 대한 실망감도 크다. 아라비아 의회도 제구실을 하지 못한다. 쉽게 살겠다, 평범하고 행복하게 살겠다는 결심은 굳어진다.

영국군에서도 아라비아에서도 양쪽 모두에서 이제 그는 쓸모없는 존재로 인식된다.

집으로 돌아가는 길, 오토바이를 타고 가는 그 길은 초록으로 가득 차 있다. 속력을 내던 로렌스는 마주 오던 행인을 피하다 그가 장착한 폭약 때문에 고꾸라지던 터키군의 기차처럼 크게 고꾸라진다.

그를 기리는 동상이 영국 의회에 새겨지고 기자는 그가 여기에 있을 만큼 위대한 인물이었는지 그를 아는 사람들을 만나 행적을 기록한다.

국가: 영국

감독: 데이비드 린

출연: 피터 오툴, 안소니 퀸, 오마 샤리프

평점:

: 전쟁은 사람에게도 고난이지만 동물도 희생양이 된다. 불타는 사막에서 낙타는 온 몸으로 전쟁의 화마를 입는다.

물 한 모금 제 때 마시지 못하고 무거운 인간을 태우고 사막을 가로 지를 때 낙타의 눈에는 뵈는 게 없어 몰아치는 모래도 전속력의 질주를 막을 수 없다. 꾀병을 부릴 여유도 없다.

하지만 인간은 낙타가 조금만 힘들어 하면 가차 없이 매질을 한다. 긴 목의 양쪽을 회초리로 빠르고 세게 내리칠 때면 내 종아리가 따끔 거린다. 불쌍한 낙타라는 생각이 영화가 끝나도 좀처럼 사라지지 않는다.

한 때 메르스의 원흉으로 낙인찍혔던 그 낙타. 고기나 젖을 먹어 본 적도 없고 더구나 한 번도 제대로 본 적이 없는 낙타가 왜 그리 안돼 보이던지. (동물원에 가면 자세히 봐야지. 그리고 미안한 감정을 가져보고 싶다.)

70밀리미터 대화면의 웅장한 사막의 아름다운 장관도, 밤하늘의 무수한 별들도, 느리게 떠올랐다 순식간에 이글거리는 태양도, 층층이 쌓인 기암괴석도, 봄의 아지랑이처럼 피어오르는 신기루도, 부서진 기차에서 내달리는 목줄 없는 말들의 울부짖음도 낙타의 수난 앞에서 다 부질없어 보인다.

등에 올라탄 인간의 리드미컬한 움직임, 크게 웨이브를 그리는 낭만 가득한 장면은 낙타의 무심한 발걸음 앞에서 아주 하찮은 존재로 보인다.

그랬다. 나에게 이 영화는 사막의 압도적인 풍광이 자랑하는 대서사시보다는 ‘낙타의 수난’으로 기록될 것이다. 무려 216분 분량으로 중간에 휴식시간이 있고 우리나라는 1998년에서야 개봉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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