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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5. <인형의 집>(187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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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5. <인형의 집>(1879)
  • 의약뉴스 이병구 기자
  • 승인 2017.05.02 11: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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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혼 8년차에 아이 셋 달린 주부 노라는 한 마디로 헤픈 여자다. 몸보다는 씀씀이가 그렇다. 그런 여자에게 남편의 은행장 승진 소식은 절로 콧노래를 불러온다.

겨울밤 난로에는 불길이 타오르고 아이들에게 줄 크리스마스 선물은 가득하다. 사랑스런 남편 헬메르는 흥얼거리는 그녀에게 우리 종달새, 내 작은 다람쥐, 귀여운 당신이라고 한없는 애정을 표현한다.

이런 상황이라면 달콤한 마카롱을 입에 물지 않았더라도 어떤 여자가 행복하지 않겠는가.

1막에 등장하는 노라의 모습은 세상을 다 가진 부인의 화신이다. 하지만 헬메르는 그런 노라가 걱정이 된다. 흥청망청 쓰는 노라 때문에 아무리 어려워도 빚을 지지 않는다는 신념이 깨질까 곤혹스럽다.

그러다가는 비싼 대가를 치러야 한다는 사실을 알려주지만 그런 잔소리는 노라에게는 들리지 않는다.

심지어 장인이 빚을 낸 사실을 언급하면서 손 큰 여자의 쇼핑 중독을 핏줄 때문이라고 몰아붙여도 노라는 들은 척 하지 않는다. 이런 소소한 사랑싸움은 10여년 만에 찾아온 노라의 친구 린데 부인의 등장으로 잠시 중단된다.

3년 전에 남편과 헤어진 가난한 친구를 앞에 두고 노라는 돈은 많고 걱정거리는 없는 여자의 행복에 대해 장광설을 늘어놓다가 헬메르가 요양하기 위해 큰돈을 빌린 사실을 이제는 옛일처럼 떠벌인다.

열심히 일한 대가로 남편은, 의사의 말에 따르면 따뜻한 남쪽 나라 이탈리아로 요양하지 않으면 위험했다. 

 

노라는 그런 남편을 위해 거금을 빚내 요양시키고 건강을 되찾은 남편은 어디서 돈이 났는지 노라의 공을 지금도 제대로 알지 못하면서 여전히 씀씀이가 큰 여자라는 생각을 버리지 못한다.

노라는 힘들었던 그 과정을 감추어 뒀다가 지금에서야 푸념하듯이 내뱉는다. 

이야기를 듣던 행복한 여자의 불행한 친구는 자신의 불행을 이겨내기 위해 이제는 은행가가 된 노라의 남편이 뭔가를 해 줄 수 있다는 생각을 하고 있다.

이때 노라는 이미 친구에게 요양에 든 거금은 친정아버지가 대 준 것이 아니고 자신이 나처럼 매력있는 여자를 쫓아다니는 어떤 사람으로부터 구했다는 사실을 털어 놓는다. 

린데 부인은 놀라움을 감추지 못하지만 노라는 자신의 힘으로 돈을 빌리고 그 돈으로 남편을 살린 비밀을 밝히는 지금 이 순간이 마냥 자랑스럽기만 하다.

노라가 들떠 있는 사이 자신에게 돈을 빌려 준 크로그스타가 등장한다. 새로운 은행의 책임자가 된 노라의 남편 헬메르에게 자신이 계속해서 은행에서 근무하게 해 달라고 청탁을 하기 위해서이다.

하지만 남편은 그의 도덕적 결함을 이유로 그 자리를 아내의 부탁을 받은 린데 부인에게 주기로 한다. 크로그스타는 노라가 빌린 차용증을 빌미로 그녀를 협박하기 시작한다. 성탄 전야를 즐겁게 보내려던 노라는 사색이 된다.

단순히 돈을 빌린 것이 아니라 보증인인 친정아버지의 사인을 노라가 위조했기 때문이다. 위조된 차용증으로 노라가 처벌받게 되는 것은 둘째 치고라도 남편이 그 사실을 알게 되면 자신을 결코 용서하지 않을 것 같아 노라는 근심이 태산이다.

절망한 노라에게 이틀 후에 벌어질 엄청난 파티는 아무런 의미가 없다. 가족처럼 지내는 랑크 박사에게 그를 향했던 여자의 마음을 털어 놓는 등 상황을 돌리기 위해 안간힘을 쓰지만 운명의 시간은 노라를 점점 더 압박해 온다.

해고 통지서를 받은 크로그스타는 자신의 청탁이 거절된 것을 확인하자 노라의 차용증 내용에 관한 편지를 헬메르가 볼 수 있도록 우편함에 집어넣는다.

남편은 그러지 말라는 노라의 애원에도 불구하고 편지함을 비우겠다는 이유로 우편함을 연다. 엉망진창의 기분으로 미친 듯이 춤을 췄던 노라의 무도회는 끝났다.

편지를 읽기 위해 헬메르가 방으로 들어가 문을 닫자 노라는 절망적으로 혼잣말을 한다. ‘꽁꽁 얼어붙은 검은 강, 바닥이 안 보일 정도로 깊은. 절대로 당신을, 아이들을 다시는 보지 못할 거야.’

편지를 읽은 남편은 예상대로 미친듯이 소리친다. 귀여운 종달새 대신 한심한 여자로 전락한 노라는 위선자, 거짓말쟁이, 범죄자, 장인과 똑같은 경솔한 여자로 낙인찍힌다.

은행장의 사회적 지위와 명예가 한순간에 무너져 내리는 것을 헬메르는 참을 수 없다. 노라는 그토록 자신을 사랑하고 있다고 믿었던 남편의 변심에 놀란다.

노라가 막 파국에 이르는 순간 린데 부인은 크로그스타에게 영원히 함께 하자는 사랑의 고백을 늘어놓아 위기에 처한 친구에게 도움을 준다. 마음이 놓인 그가 차용증을 반환한 것이다.

순간 지옥에서 천국으로 돌아온 헬메르는 이제 살았다면서 다시 내 귀여운 종달새를 외친다. 하지만 노라의 마음은 싸늘하게 변해있다. 바로 조금 전의 그녀가 아니다.

그가 아무리 용서와 화해와 사랑을 이야기해도 차가운 눈길은 바뀌지 않는다. 그녀는 ‘우리는 끝이다’라는 말을 남기고 남편과 아이들을 떠난다.

: 노라가 가족을 떠나는 장면을 좀 더 설명하면 이렇다. 노라는 잡는 헬메르에게 화난 표정으로 쏘아 붙인다.

‘아빠가 나를 인형취급 했듯이 당신도 나를 인형 취급했다. 나 자신과 세상을 제대로 알기 위해 완전히 독립하기로 했다. 떠나는데 당신 허락은 필요 없다. 세상 물정 모르지만 이제부터 알아 나가겠다. 아내이자 어머니의 신성한 의무만큼 똑같이 신성한 의무가 나에게 있다. 나 자신에 대한 의무, 내가 믿는 건 나는 당신과 똑같은 인간이라는 사실이다. 세상과 나 사이에 누가 옳은 지 확인하겠다.’(열린책들)

노라는 또 이런 말도 한다.

‘그 사람이 모든 걸 폭로하면 당신이 내 대신 모든 걸 뒤집어쓰고 내가 잘못한 일이라고 할 줄 알았다. 하지만 그런 기적은 일어나지 않았다.’

지금 가지 말고 내일 아침까지 기다리라는 말에는 낯선 남자의 집에서 밤을 지새우고 싶지 않다고 잘라 말한다.

‘아내가 남편을 떠나면 남자는 어떤 법적 책임도 없으니 그 의무감에서 풀어 주겠다. 둘이 변하는 기적을 나는 믿지 않는다.’

1879년 헨리크 입센은 크리스마스를 전후한 3일간의 이야기인 3막 극 <인형의 집>을 썼다. 한 세기도 훌쩍 지난 아주 오래 전의 일이지만 지금 읽어도 여성해방, 페미니즘 혹은 자아발견 같은 단어들이 혁명적인 느낌으로 연상된다.

그러니 당시 유럽이 받았을 충격은 충분히 상상할 만하다. 그가 죽었을 때 노르웨이는 국장으로 예우 할 만큼 입센은 자기나라에서는 물론 전 유럽 혹은 전 지구적으로 추앙을 받았다.

신여성의 대명사로 자리 잡은 노라는 지금도 수많은 나라의 수많은 극장에서 수많은 배우들에 의해 재연되고 있다. 노라는 여전히 못된 여자와 자아가 있는 여성, 더 나아가 인간의 진정한 행복은 무엇인가 하는 논쟁을 계속 만들고 있다. 

입센의 또 다른 대표작 <유령>은 <인형의 집> 만큼이나 유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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