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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1. <내가 죽어 누워 있을 때>(19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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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1. <내가 죽어 누워 있을 때>(1930)
  • 의약뉴스 이병구 기자
  • 승인 2017.02.26 14:3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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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리엄 포그너의 <내가 죽어 누워있을 때>(As Lay Dying)는 제목부터 심상치 않다. 내용도 우울하다. 하지만 웃음 코드가 곳곳에 있어 마냥 슬프지만은 않다.

앤스 번드런은 미국 남부 농촌 마을에 산다. 그에게는 죽어가는 아내 애디가 있다. 아내는 무슨 큰 병에 걸려 있다.

큰 아들 캐시는 병든 엄마가 빤히 내려다보고 있는 2층 창가의 앞마당에서 관을 만들고 있다. 톱질을 하고 망치질과 대패질에 열심이다.

노란 널판자로 만든 황금빛 나는 관이다. 손도끼로 나무 찍는 소리가 시끄럽다. 두드리고 자르고 하는 요란한 소리가 마치 내가 얼마나 훌륭한 관을 만들고 있는지 보란 듯이 말이다.

셋째 아들 주얼은 이런 캐시에게 투덜댄다. 다른 곳에서 하라고 말했건만, 엄마가 자신이 만든 관속에 누워 있는 모습을 꾀나 보고 싶어 하는 모양이라고 빈정댄다.

하지만 둘째 아들 달은 생각한다. 엄마는 더 이상 바랄게 없겠지. 죽어 있기에 캐시의 관보다 더 좋은 것은 없고 엄마를 편하게 해주고 안전하게 해줄 테니.

 

구두쇠 남편은 돈을 아끼기 위해 부르기를 주저한 의사를 데려오지만 그가 도착하기 전에 아내는 죽는다. 앓아 누운지 열흘만에 자기가 죽은지 조차 모르고 죽었다.

주얼은 3달러를 벌기위해 엄마의 임종도 지키지 못했지만 캐시는 밤낮을 가리지 않고 일해 마침내 엄마가 누울 관을 완성한다.

목사의 설교도 끝났으니 이제 매장하는 일만 남았다. 그런데 아내는 몸이 채 식기도 전에 신의 뜻을 거스르면서까지 시집 대신 친정 식구들이 있는 제퍼슨에 묻어 달라고 유언을 한다.

남편은 아내의 말을 따르기 위해 다섯 남매와 함께 40마일이나 떨어진 제퍼슨으로 향한다. 화창한 날이라면 하루 이틀 이면 도착할 텐데 때마침 큰 홍수가 난다. 비가 쏟아질 곳은 마치 이곳 밖에 없다는 듯이 세차게 내리고 있다.

다리는 물에 잠기고 장례행렬은 길고도 지루한 여행을 한다. 관을 실은 마차는 다리를 건너다 부서지고 노쇠가 죽고 일행은 난관에 빠진다.

시체는 썩고 냄새를 맡은 말똥가리는 높은 하늘에서 선회비행을 하고 캐시는 설상가상으로 다리를 다친다. 우여곡절 끝에 일행은 마침내 제퍼슨에 도착한다.

관을 묻기 위해 삽을 사기 보다는 마음씨 착한 기독교인에게서 잠시 빌려온 앤스는 수완 좋게 죽은 아내를 대신할 오리같이 생긴 정장차림의 여자를 얻고 15년간 속을 썩이던 의치를 새로 해 넣는다. 관의 흙이 채 마르기도 전에.

: 어렵고 난해하기보다는 묵직하다. 다 읽고 나서는 허탈감보다는 안도감이 앞선다. 시간이 걸렸지만 무사히 매장을 끝냈기 때문이다.

비록 시체가 썩어 고인에 대한 예를 다하지는 못했지만 남편이나 자식들이 일부러 그런 것은 아니다. 하필 그날따라 비가 억수로 내렸고 불어난 강물이 다리를 삼켰기 때문이다.

누군가는 참으로 부조리한 장례 여행이라고 하지만 남편과 자식은 아내와 엄마의 유언을 지켰다. 마지막 안식처를 친정집 근처로 정한 자신이 특별하다고 믿는 외로운 여자, 엄마의 선택은 그리 나쁘지 않았다.

장례행렬 중에 보여준 땀을 흘리면 죽는다며 노동을 회피하고 딸의 낙태약 값 10달러를 빼앗는 아버지 앤스의 파렴치함.

엄마의 관보다 잃어버린 연장에 더 애착을 보이는 큰 아들 캐시. 불을 지르고 정신병원으로 가는 달, 가족보다는 말을 더 사랑하는 주얼. 집 근처는 영원한 안식과는 거리가 멀다.

아내와 엄마의 죽음에 대한 남편과 아들들의 애도는 사려 깊지 못하다. 유일한 딸인 17살 듀이 델은 목화를 따면서 저지른 남자친구와의 은밀한 행동의 결과로 골칫거리를 해결하느라 정신이 없다.

낙태약을 구하기 위해 약국을 찾지만 56년간 마을 교회를 다닌 존경받고 약삭빠른 약사는 쉽게 약을 건네주지 않는다.

15명의 등장인물이 59개의 독백 형식으로 채워진 삶의 무의미함, 절망과 사랑, 분노와 이해가 구절구절 가득하다.

포크너는 미국 현대 문학의 가장 위대한 인물로 제임스 조이스나 버지니아 울프처럼 실험성이 강한 작품을 남겼다.

하지만 찬찬히 이 작품을 읽어 나가다 보면 난해하거나 어렵다기보다는 시처럼 아름답고 여러 날 명상에 빠질 만큼  깊은 사유를 경험하게 된다. 피할 수 없는 욕망과 역시 그럴 수밖에 없는 현실의 복잡 미묘한 세계가 그의 붓 끝에서 팔팔하게 살아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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