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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 <아큐정전>(19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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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행 2017.02.05  11:45: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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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쉰의 <아큐정전>은 가독성이 있다. 게다가 분량도 짧다. 독서가 심드렁할 때 읽기 딱 좋은 고전이다. 등장인물이 많지 않다. 한 사람이 이름을 여러 개 쓰지도 않는다.

주인공은 아큐 딱 한사람이다. 어디서 본 듯한, 들은 듯한 인물이며 이야기다. 몇 날 며칠을 읽어도 도무지 마침표가 보이지 않는 장편도 아니다. 맘먹고 읽으면 한 두 시간이면 끝이다.

어려운 내용도 아니고 줄거리가 복잡하지도 않다. 그런데 읽고 나서 흐뭇한 기분이 드는 것은 여느 위대한 고전과 다를 바 없다. 그러니 새해가 시작됐지만 아직 제대로 무언가를 해보지도 않고 지쳐있는 지금이 읽기에 딱 들어맞는다.

미장의 작은 마을에 아큐가 살고 있다. 조상이 누구이고 어디서 왔는지 행적이 수상한데 언제부터 인가 마을 사람들은 허드렛일이 생기면 아큐를 데려다 썼다.

말하자면 아큐는 바쁜 날에만 필요한 잡부로 하루살이 인생이다. 그러니 그가 사는 곳도 변변치 않다. 제사지내는 토곡사의 사당이 그의 거처다. 부모는커녕 형이나 동생도 없이 홀홀단신이다.

떠들썩한 곳을 좋아하며 대낮에 황주라도 한 잔 걸친 날이면 결혼도 하지 않은 주제에 수재인 마을 지주인 조영감의 자식보다도 ‘내 아들이라면 더 훌륭했을 텐데’ 하는 하나마나한 자존심으로 기분이 우쭐해진다.

더구나 성에 몇 번 들락날락 했던 경험을 삼아 미장 사람들을 아주 촌뜨기라고 우습게 여긴다. 말하자면 이전에는 잘 살았고 견식도 있고 못 하는게 없는 인간이다. 하지만 외모는 형편이 없고 특히 머리에는 숱이 거의 없는 대머리 신세다.

마을이라면 어디에나 있는 건달패들은 툭하면 아큐의 이런 머리를 놀려 먹는다. 아큐가 욕지기를 하거나 때리려고 덤벼들지 않는 것은 자기보다 약한 존재라고 생각했어도 언제나 얻어 맞는 쪽이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아들놈에게 맞는 것이다’ 라고 스스로 위안을 삼고 이긴 쪽은 자기라고 여겼다. 이른바 아큐식의 정신승리법이다.

아큐는 반짝반짝 하다거나 등잔이 여기 있다거나 하고 놀려도 때리려고 하기 보다는 째려보기만 하는 것으로 방법을 바꿨다.

그래도 상대가 때리면 나는 벌레다, 이래도 놓아주지 않을래? 하는데도 마구 때리면 자신을 경멸하는 첫 번째 사람이 자신이라는 사실을 깨닫고 네놈 따위가 뭐야 하고 묘한 승리감에 도취한다.

이를테면 복수를 멋지게 했으니 승리자는 건달이 아니고 자신이라는 그럴싸한 논리를 내세운다. 승리했으니 기분이 좋고 기분이 좋으니 선술집으로 달려가 술 먹고 취해서 사당으로 달려와 잠을 자는 것이 아큐의 일상이다.

한번은 투전판에서 엄청난 돈을 땄다. 하지만 곧 싸움이 벌어졌고 꽤나 얻어맞고 걷어 채여 겨우 집에 돌아오니 그 많은 은화가 하나도 없었다.

아들놈에게 얻어맞았다거나 벌레라고 쳐도 아무리 생각해도 이상했다. 그래서 오른손으로 자기 뺨을 후끈 거릴 정도로 여러 대 쳤다. 때린 사람도 자신이고 맞는 사람도 자신이니 자신은 패배자가 아니라 승리자였다. 아큐는 이런 사람이었다.

왕털보에게 쥐어 박히고 전영감의 아들에게 지팡이로 머리가 딱 하고 소리가 날 정도로 맞아도 언제나 패배를 승리로 여겼다.

자신보다 약한 정수함의 여승을 골려 ‘씨도 못 받을 아큐 놈’이라는 욕을 들어도 영원히 승리의 기쁨을 느끼며 기분 좋게 코를 골았다. (루쉰은 이 대목에서 어쩌면 중국의 정신문명이 전 세계에서 가장 우수 할지 모른다고 했다.)

아큐는 또 조영감의 하녀에게 집적댔다가 머리통이 불이 날 정도로 얻어맞고 그 집 아들에게 개새끼라는 욕설을 듣고 굴욕적인 5개항의 조항에 서약까지 했다. 이제 마을에서는 일감도 주지 않아 아큐는 굶주렸다.

가난뱅이로 말라빠진데다가 일도 못했고 아큐가 보기에 왕털보다도 못한 소디놈에게 일감이 돌아가고 있었기 때문이다.

산들바람이 부는 꽤 따스한 날이 돌아왔어도 아큐에게 삯일을 부탁하는 마을 사람들은 없었다. 정수암에서 검은개에게 쫒기면서 무 세 개를 훔쳐 먹은 아큐는 드디어 미장을 떠나 성으로 들어간다.

성에서 나온 아큐는 보따리 장사로 큰 돈을 모은 것처럼 으스댔다. 하지만 그는 좀도둑에 불과했다.

은전과 동전을 한 움큼 계산대에 뿌리면서 ‘현금이다 술 가져와’ 라고 호기를 부리고 마을 사람들의 존경의 눈초리를 잠시 받았으나 근본이 어디 가겠는가.

그 무렵 그러니까 선통 3년 9월 14일( 무창에서 신해혁명이 일어 난지 23일이 지난 서기 1911년 11월 4일) 커다란 배한척이 어둠을 타고 조씨댁 나루터에 닿았다. 흰옷에 흰 투구를 쓰고 숭정황제(명대 마지막 황제 사종의 연호)의 상복을 입은 혁명당이 입성한 것이다.

변발을 틀어 올리는 등 미장의 어중이떠중이들이 어쩔줄 몰라 하자 아큐는 언제나처럼 기회를 놓치지 않았다. 혁명에 뛰어든 것이다. 그는 큰 소리로 ‘반역이다, 반역’ 하고 떠들어 댔다. 마을 사람들의 놀란 눈과 여지껏 본 적이 없는 처량한 눈초리를 보자 아큐는 오뉴월에 빙수를 먹은 것처럼 속이 시원했다.

그가 걸어가면서 좋았어, 내가 가지고 싶은 것은 모두 내 것이다 라고 외친 것은 당연했다. 얼씨구 절씨구 좋구나, 내 손에 쇠채찍을 들고 네 놈을 치겠다.

아큐는 혁명을 바로 자신과 동일시했다. 아큐의 이름 뒤에 자신을 조롱했던 사람들이 군이나 형이라는 호칭을 붙이기도 했다. 아큐는 말할 수 없이 상쾌하고 기분이 좋았다.

: 아큐는 늘 그렇듯이 혁명으로 이득을 보기보다는 혁명당에 의해 조리돌림을 당한 후 총살당했다. 미장 사람들은 아큐를 나쁜 놈이라고 말했다.

총살당한 것은 그가 나쁜 증거라는 것이었다. 나쁘지 않다면 왜 총살을 당하겠는가. 미장 사람들이 불만을 품은 것은 총살은 목을 자르는 것만큼 볼만한 것이 못되기 때문이었다.

모택동은 루쉰을 가장 위대한 문학가로 추앙했으며 이 작품을 극찬했다. 수 천 년 간 전통이라는 이름으로 이어온 중국 사회에 아큐 같은 모자란 인물을 상징으로 내세웠는데도 말이다.

그것은 역설적으로 아큐를 통해 좀 현명하고 사명감 혹은 목적의식으로 무장해 노예근성을 탈피해 당당한 세계의 주인이 되어 보자는 다짐은 아니었을까. 근대사회로 넘어가기를 주저하면서 봉건사회의 마지막 끈을 잡고 몸부림치는 침체된 청조말기의 상황을 적극적으로 타개해 보자는 또다른 외침은 아니었을까.

눈을 우리한테로 돌려보면 자기만족에 젖어 정신 승리법에 도취된 아큐는 과연 있을까, 없을까. 있다면 얼마나 많을까. 그러고 보니 이 책의 가독성은 우리 주변에 흔하게 볼 수 있는 아큐 때문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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