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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8. <주홍글자> (18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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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8. <주홍글자> (1850)
  • 의약뉴스 이병구 기자
  • 승인 2017.01.05 16: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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엔젤(Angel)이나 에이블(Able)은 알파벳 에이(A)로 시작하는 단어 중에서, 저절로 기분 좋은 느낌을 떠올린다. 하지만 아닌 경우도 있다. 어덜터리(Adultery)가 여기에 해당한다.

어떤 사람은 로맨스라고 해서 이보다 더 좋을 수 없다고 말하기도 한다. 불륜이나 간통과는 질적으로 다르다면서. 그러나 이 단어가 주는 느낌은 비록 로맨스라고 해도 산뜻하지는 않다.

지금이야 법으로 재단할 수 없다고 법으로 정해졌지만 불과 얼마 전까지만 해도 간통은 처벌의 대상이 됐다. 개인의 사적 영역을 침범하는 대담하고 교묘한 법이 우리에게도 불과 2년 전까지 있었다.

없어지고 나니 이 것이 얼마나 보잘 것 없었는지, 인간의 기본권인 행복추구권을 그토록 무참히 침해해 왔는지 여실히 드러났지만 말이다.

1850년대 식민지 미국의 상황은 더 말해 무엇하랴. 영국에서 건너온 청교도들은 보스턴에 본부를 두고 야만인인 이방인들을 설교하고 교육했다. 인간의 자유는 크게 억압됐고 법을 집행하는 자들의 위세는 그들이 숭배하는 하늘을 찌르고도 남았다.

그래서 간통을 저지른 여인의 가슴에 그것을 상징하는 A라는 주홍글자를 평생 지니고 다니게 하는 형벌을 내리는 것은 아무것도 아니었다.

영국에서 식민지로 건너온 헤스터 프린은 밀회의 황홀한 즐거움으로 태어난 어린 펄과 함께 주홍글자를 가슴에 새기고 동네사람들의 멸시와 조소와 온갖 경멸을 받으며 살아가고 있다.

혼자 일 수 없는 죄의 상대는 근엄한 딤스데일 목사다. 가장 존경받고 가장 깨끗하고 가장 신성한 목사가 헤스터 프린의 상대였고 펄을 태어나게 한 장본인이었다.

 

하지만 사람들은 남자가 누구인지는 크게 관심을 갖지 않았다. 오로지 부정한 여자에게만 낙인을 찍고 저주하고 피했으며 저런 여자를 본받아서는 안 된다고 손가락질 했다.

헤스터에게는 결혼한 남편이 있었다. 그는 죽었는지 아니면 어떤 이유에서인지 오랫동안 그녀와 연락이 되지 않았다.

남편 없는 긴 세월동안 외로움 때문에 헤스터가 젊은 목사와 그 짓을 했다는 사실은 동정이나 선처의 이유로 용서될 수 없었다. 그녀는 감옥에서 끌려나와 처형대에 섰다.

그 때 야유하던 군중 사이로 어떤 남자를 보았고 그 남자도 헤스터와 눈이 마주쳤다. 서로는 놀랐고 놀라움은 그가 전 남편 칠링워스였으며 아내 헤스터였다는 사실을 한 눈에 알아본데서 나왔다.

작품 초반인데도 주인공들은 다 등장했다. 비교적 단순한 이야기가 이들 세 명 아니 펄까지 네 명의 입을 통해 독자들에게 한 걸음씩 다가간다. 단순한 사건은 그러나 각자의 심리 묘사에 이르면 대단히 복잡하고 종교적이며 교훈적이고 도덕적인 세계로 빠져든다.

모든 사건이 그렇듯이 이 사건도 시간이 지나면서 그러니까 7년이라는 긴 시간이 흘러가면서 세간의 관심에서 조금씩 벗어나기 시작한다.

헤스터는 이웃에게 봉사하고 헌신하고 어려운 사람을 솔선수범해 돕는다. 사람들은 이제 헤스터를 그저 그런 여자나 쾌락에 빠진 여자로 보는 대신 신성한 여인으로 까지 확대해서 생각한다.

그 사이 펄은 커서 조잘대고 엄마를 그림자처럼 따라 다니면서 헤스터에게 ‘네 죄를 잊지 말라’고 상기 시킨다. 한편 전 남편 칠링워스는 인디언들에게서 배운 약초 지식과 애초의 의학지식으로 의사 행세를 하면서 마을로 숨어 들어온다.

딤스데일 목사가 자신의 죄를 고백하지 못하는 심적 괴로움으로 몸이 망가지자 의사는 그를 치료한다는 구실로 함께 살면서 목사를 더욱 깊은 파멸로 이끌고 가는 천사 아닌 악마의 역할을 제대로 해 낸다.

헤스터는 어느 날 숲속에서 정부인 목사에게 늙은 칠링워스의 정체, 즉 그가 자신의 남편이었다는 사실을 고백하고 펄과 함께 멀리 떠나 살자고 말한다. 진작 했어야 할 이 말을 7년이란 긴 세월이 지나서야 했는지는 시비 거리가 안 된다.

비로소 세 사람은 그동안 숨죽여 왔던 공포와 고독에서 벗어나 하느님의 영광 대신 마침내 인간만이 누릴 수 있는 가족 행복의 시대로 접어들고 있다. 향내를 풍기는 나무로 가득한 숲에는 찬란한 빛이 가득하고 세 사람의 앞날에는 희망의 장미꽃이 가득 펼쳐지기 시작한다.

하지만 작가는 그럴 생각이 전혀 없는 듯하다. 세 사람이 마침 정박해 있던 배를 타고 영국이나 아니면 다른 유럽 어느 나라로 가서 아무도 그들을 아는 사람이 없는 곳에 정착하도록 내버려 두지 않는다.

인생이라는 것이 어디 마음먹은 대로 쉽게 써내려 가는 연애편지와 같지는 않다하더라도 독자들은 헤스터와 딤스데일의 행복한 결말을 끝내 보지는 못한다. 되레 딤스데일 목사는 새로운 총독의 축하 설교를 끝내고 죽음의 길을 택한다.

양심에 걸렸던 죄를 스스로 고백함으로써 영혼의 굴레를 벗어났지만 육신은 이승을 떠난 것이다. 칠링워스는 목사의 죽음을 기뻐하지 않는다. 공범자에게 해야 할 더 많은 복수의 기회를 날려 버렸기 때문이다. 상심에 빠진 칠링워스는 그러나 펄에게 자신의 재산을 남긴다.

시간은 또 흘러 영국으로 갔던 헤스터는 다시 바닷가 오두막으로 돌아오고 그녀도 누구도 피할 수 없는 죽음을 맞는다. 목사와 헤스터는 같은 묘지에 묻히지는 못했지만 나란히 옆에 있으면서 하나의 묘지석으로 둘이 서로 연결된다. 죽어서야 둘은 하나가 됐다.

: 위대한 작가 너 대니얼 호손은 <주홍글자>로 일약 그 시대 미국을 대표하는 작가로 우뚝섰다.

<백경>의 작가 허먼 멜빌은 “나를 사로잡은 것은 호손의 어둠이다. 그의 천재성을 기리는 표시로 <모비 딕>을 호손에게 헌정한다” 고 했고 <차타레이 부인의 사랑>의 작가 D.H 로런스는 “어떤 책도 이 소설만큼 심오하지도 않고 이중적이지도, 완전하지도 않다”고 했으며 헨리 제임스는 “주홍글자는 이제까지 미국에서 나온 적 없는 가장 훌륭하고 상상력 넘치는 작품” 이라고 상찬했다.

간통 남녀를 평생 죄의식 속에 살게 했던 호손은 간음의 과정을 상세하게 그리지 않는 대신 그 이후의 결과만을 집중적으로 따진다. 따라서 로맨스 소설과는 거리가 멀다.

두 사람이 즐기려고 했으면 수시로 그럴 수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서로 만나지 아니하고 떨어져 살면서 죽음 직전에서야 도망을 계획한 것은 주인공들로 하여금 충분히 죄에 대한 벌을 받게 하려는 의도로 보인다.

그들이 얼마나 자주 밀회를 즐겼는지 아니면 단 한 번의 결과물로 펄이 태어났는지도 언급하지 않는 것도 같은 이유로 볼 수 있다.

죄와 벌과 그리고 용서. 

늙은 의사와 젊은 목사 그리고 예쁜 유부녀와 천방지축의 어린 딸이 펼치는 향연은 청교도 시대의 어둡고 찍찍하고 경직된 인류의 낡은 유물도 그리 나쁘지만은 않았다는 사실을 160여년이 지난 오늘날 우리에게 교훈적으로 전해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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