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76975 2077203
최종편집 2024-04-19 07:46 (금)
27. <델러웨이 부인>(1925)
상태바
27. <델러웨이 부인>(1925)
  • 의약뉴스 이병구 기자
  • 승인 2016.12.20 10:34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버지니아 울프라는 낯선 이름을 들은 것은 꾀 오래전의 일이다. 학창시절이니 근 30년도 훌쩍 더 지났다. 그의 작품을 통해서가 아니라 시를 외우면서 알았다.

영국 여류 작가를 한국의 시 속에서 찾았던 것이다. 박인환은 ‘목마와 숙녀’라는 시를 1955년에 발표했다. 전쟁의 상흔이 채 가시지 않은 시기였다.

살아 있는 것들이 한 순간에 사라진 허무함의 한 가운데에 그녀의 생애와 서러운 이야기기가 담겨 있었다.

뭔가 모를 처절한 인생이 있겠거니 짐작은 했지만 주머니 속에 가득 돌을 넣고 새벽 강가로 나가 죽었다는 그녀의 슬픈 이야기는 왜 시 속에서 이름이 두 번이나 호명됐는지 비로소 이해가 됐다.

버지니아 울프는 <델러웨이 부인>에서 주인공의 한 축인 30살가량의 이탈리아인 부인이 있는 젊은 청년 셈티머스가 창가에서 떨어 죽는 자살을 책의 후반부에 배치했다.

 

전쟁에 나가 싸울 만큼 용감했던 그는 겨우 1년 전에 밀라노에서 결혼했음에도 자살을 하겠다는 비겁한말을 하더니 끝내 죽었다.

그의 죽음은 시 속에 나오는 페시미즘은 아니다.

죽는 그 순간에도 산다는 것은 좋은 것이며 햇볕까지 쨍쨍했는데도 작가는 한 때는 전도유망했던 청년을 끝내 자살로 내 몰았다. 왜일까. 환자의 심리를 이해 못하는 의사의 손에 의해 정신병원으로 끌려가는 것을 막기 위해서였을까.

아니면 주인공 한 명 쯤은 죽어야 ‘의식의 흐름’이니 ‘내적독백’이니 하는 소설 형식을 취한 책의 완성도가 높아진다고 생각한 때문이었을까. 사실 죽는 것은, 누군가 꼭 죽어야 한다면 셈티머스가 아니라 작가의 분신이라고 불려도 좋은 델레웨이 부인 클라리사가 아닌가 하는 생각을 마지막 장이 끝날 때까지 추측해 봤다.

하지만 작가는 클라리사 대신 젊은 청년을 죽였다. 2차 세계 대전이 끝난 후 영국의 젊은이들은 어제까지 살아있었으나 오늘 죽을 목숨이 흔했다. 그들을 애도하기 위해서였을까. 그래서 일까.

책은 꽃을 사러 가는 델러웨이 부인의 등장으로 시작한다. 하녀도 나름대로 할 일 이 많기 때문에 부인이 직접 사러 가는 것이다. 하지만 꽃은 망자를 위한 조화가 아니라 휘황찬란한 불빛 아래 열리는 파티를 더욱 화려하게 해줄 장식용 꽃이다.

델피니움, 스위트 피, 라일락, 카네이션, 붓꽃을 가득채운 꽃집으로 향하는 거리에는 부인의 호기심어린 시선이 가득 차 있다.

생선가게를 지나고 구두와 장갑에는 도통 관심이 없는 딸을 생각하고 나중에 수상으로 밝혀진 매우 지체 높은 분의 차량을 목격하고 곡예비행을 하면서 하얀 글씨를 쓰는 비행기와 나무로 가득 찬 숲의 새들과 정치가의 술수와 트라팔가 광장의 풍경을 그려내고 빅 벤의 종소리를 전한다.

전쟁이 끝났고 때는 바야흐로 꽃들이 춤추는 유월 중순이다. 그 착한 아들이 전사하여 아끼던 정원이 사촌에게 넘어가 가슴이 미어지는 부인도, 유독 착한 아들이 죽었어도 시간은 지나갔다.

다행히도 모든 시작이 있으면 끝이 있듯 전쟁도 끝난 것이다. 책의 마지막은 파티가 무리 없이 잘 마무리 되는 것으로 그래서 절망보다는 조금 희망을 노래하는 것으로 맺어 지고 있다.

파티를 준비하고 끝내는 하루 정도 시간에 모든 사건이 벌어지고 봉합된다. 단 하루 동안의 이야기이지만 내용은 퍽이나 다양하고 등장하는 인간 군상들의 모습도 천양지차다.

우선 주인공의 남자 친구 피터 월시가 등장한다. 주머니칼을 언제나 가지고 다니는 한 때 사랑해 결혼 할 뻔 했던 남자.

헤어진지가 수 백 년이 된 것처럼 까마득히 잊어버린 남자가 50살이 막 넘은 나이에 오늘밤 그녀의 파티에 참석한다.

첫 부인과 이혼하고 애가 둘 달린 인도 주둔군 소령의 아내와 사랑에 빠졌다고 고백하는 피터 월시.

그와 결혼하지 않은 것이 천만다행이라는 부인은 그와 있었던 일들을 회상한다.

모든 것을 공유하고 모든 것이 설명되는 그런 관계의 남자. 하루 종일 한 지붕 아래 사는 남녀는 서로 간 약간의 방임이나 독립이 이뤄져야 하는데(열린책들, 2007, 최애리 옮김) 피터 월시와는 아니다.

그러니 절교한 것은 잘 한 일이다. 후에 인도로 떠나는 배안에서 만난 여자와 결혼했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도 별 감흥이 없었던 것은 파멸을 피했다는 안도감 때문일 것이다. (피터월시는 오랜 시간과 오랜 방황과 오랜 시행착오를 거친 끝에 그가 꿈꿔왔던 이상들을 제대로 실천하지 못하고 슬그머니 그녀 곁으로 돌아온다.)

여자와의 사랑이라고도 해도 좋을 말 끝 마다 프랑스인의 파가 섞여 있다고 하는 샐리 시튼은 자유분방하다. 게다가 검은 머리카락에 커다란 눈이 매력적인 대단한 미인이다.

인생과 세상을 개혁하기를 희망했고 사유재산을 폐지하기 위해 협회 설립을 주장하기도 했다.

플라톤이나 모리스나 셸리를 읽었고 신사들 중에 누가 보기라도 하면 어쩌려고 하는 구시렁거리는 늙은 하녀의 소리도 외면하고 복도를 나체로 돌아다니기도 했던 진짜 예술가처럼 보였던 샐리 시튼.

어느 날은 꽃을 들고 그녀에게 키스까지 했다. 그런 그녀의 훗날 모습은? 커다란 단춧구멍만큼 머리가 벗겨진 지주로 불릴만한 맨체스터의 방직공장 주인과 결혼해 아들을 다섯이나 낳았다.

뭐 이것이 잘 못됐다는 것은 아니지만 젊은 적 그녀의 행동거지에 비교하면 실망스러운 모습이 분명하다.

그리고 저 예쁜 아가씨는 누구지? 분홍 드레스를 입어 너무나 예쁜 자기 딸을 알아보지 못한 클라리사의 남편 리처드가 있다. 파티의 끝 무렵에 등장하는 두 사람은 삶과 죽음 그리고 사는 인생에 대한 완결판이라고 해도 좋겠다.

: 델러웨이 부인은 제임스 조이스의 <율리시스> T,S 엘리엇의 <황무지>( 이 책은 버지니아 울프가 직접 설립한 호가스 출판사에서 나왔다.) 등과 함께 모더니즘을 개척한 작품으로 칭송받고 있다.

앞서 이야기한 의식의 흐름이나 내적 고백이니 하는 기존의 소설형식과는 다른 방법을 취하고 있어 읽기가 조금 어려운 것은 사실이나 정신 바짝 차리고 띄엄띄엄 읽지 않고 몰아서 읽으면 작품을 이해하는데 큰 어려움은 없다.

여류 작가가 되기 위해서는 연 수입 500만 파운드의 돈과 ‘자기만의 방’이 있어야 한다는 인문 에세이로 페미니즘의 선구자로 알려져 있으며 <델러웨이 부인>과 그 뒤로 나온 <등대로>(1927)의 발표로 작가의 위치를 확고히 했다.

정신분열증, 돋보이는 미모, 거기다 자살 뒤 2주 만에 시체로 발견 된 그녀의 일생은 전설로 남을 여러 조건들을 충분히 만족하고 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