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76975 2077203
최종편집 2024-03-29 18:51 (금)
26. <고리오 영감> (1835)
상태바
26. <고리오 영감> (1835)
  • 의약뉴스 이병구 기자
  • 승인 2016.11.28 10:43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거절하지 못할 제의를 하겠다는 말은 프란시스 포드 코폴라 감독의 걸작 <대부>에서 주인공인 조폭 두목 말론 브란도가 써먹어 유명해졌다.

영화가 1972년에 나왔으니 1835년 발자크가 쓴 소설 <고리오 영감>에서 이 말이 언급 됐다면 소설이 영화보다 100년 이상 앞 선 것이 틀림없다.

<고리오 영감>에서 탈옥수 보트랭이 풋내기 외젠 라스티냐크에게 ‘아무도 거절 못할 제의’를 하는 장면은 책에서 가장 중요한 상황은 아니라 하더라도 매우 비중 있는 부분에 해당한다.

남부 출신의 가난한 법과대학생 외젠이 프랑스 상류사회를 움켜쥘 1인자가 되고 사교계에 발을 디디는데 없어서는 안 될 충고가 포함돼 있기 때문이다.

이제 막 20살인 외젠은 출석 체크만 한 후 바로 하숙집으로 돌아와 풍채와 언변이 좋으며 검은 가발을 쓰고 구렛나루를 염색한 40대 보트랭의 ‘무일푼인 사람이 성공하기 위해서는 손을 더럽혀야 한다’는 등의 말에 빠져든다.

 

젊고 여자에 굶주려 있고 출세욕에 들떠 있는 외젠의 속마음을 가로챈 불사신이라는 별명이 있는 보트랭은 엄청나게 큰 돈을 벌고 살롱에서 여자를 꼬드기는 기술을 전파한다.

외젠과 보트랭이 만나는 곳은 파리에서도 외곽의 라탱 지구로 가난한 사람들이 모여 사는 싸구려 하숙집이다.

파리의 모든 집을 천박하게 만드는 노란색을 칠한 ‘궁핍이 지배’하는 이 집의 주인은 50살 정도의 산전수전 다 겪은 여자처럼 보이는 과부 보케 부인으로 40여 년 간 한 우물 만 판 베테랑이다.

남녀 불문하고 돈만 내면 누구나 받는 이 집의 이름은 부인의 이름을 따 보케 하숙으로 불린다. 이 곳 에는 외젠과 보트랭 뿐만 아니라 이 책의 제목이기도 한 69살인 고리오 영감을 포함해 18명의 다양한 인간 군상들이 살고 있다.

무대가 하숙집이고 이야기는 하숙생들이 풀어내고 큰 기둥은 외젠과 보트랭 그리고 고리오 영감이 되리라는 것은 쉽게 짐작할 수 있다.

젊은 시절 제분업자로 돈을 긁어모았던 고리오 영감에게는 시집 간 두 딸이 있는데 그는 딸들을 너무나 사랑한 나머지 벌었던 그 많은 돈은 다 물려주고 자신은 어리숙한 하숙생으로 지낸다.

영감은 ‘부성애의 예수’로 불릴 만큼 두 딸을 애지중지 하는데 딸들의 효심은 아버지에 한 참 미치지 못한다.

딸들의 남편 그러니까 고리오 영감의 사위들은 부인 외에 모두 내연의 처를 두고 있고 아내에게는 관심이 없다. 관심만 없으면 다행이지만 온갖 빚까지 떠안겨 파산직전까지 몰고 간다.

두 딸 역시 집안의 살림보다는 극장의 지정석에서 연극을 보거나 살롱에서 무도회를 열거나 내연의 남자를 만나는데 공을 들인다.

영감이 사위 보다 내연남에 더 호감을 두는 것은 딸 들이 이 처럼 남편을 미워하고 내연남을 좋아하기 때문이다.

딸 가운데 둘째딸이 외젠의 정부가 되겠다. 외젠의 정부는 레스토 백작 부인으로 이미 자식이 있는 것으로 묘사되고 있어 20살인 외젠과 10년 이상의 차이가 있는 것으로 추측해 볼 수 있다.

부인을 만나기 전에 외젠은 먼 친척인 보세앙 부인을 통해 파리 사교계에 들어가는 기회를 잡는데 보세앙 부인은 고리오 영감의 두 딸과 마찬가지로 남편이 다른 여자를 찾자 한적한 시골로 낙향하는 비참한 결말을 맞는다.

그 낙향 직전 파리 세교계의 총아들은 버림받은 그녀가 어떤 태도를 취하는지 보기 위해 무려 150여대의 마차를 타고 그녀 집으로 모여드는데 이 장면은 참으로 기괴하면서도 한편의 코미디처첨 보인다.

: 고리오 영감의 죽음으로 1부 하숙집 2부 사교계 입성 3부 불사신 4부 아버지의 죽음으로 이루어진 이 책의 대단원은 막을 내린다.

책의 배경이 되는 시기는 혁명과 그에 따른 반동으로 나타난 왕정복고의 음습한 구체제의 회귀였다. 또 다른 혁명의 움직임이 움트기에는 아직 이른 시기다.

20살의 혈기 왕성한 대학생 외젠. 이런 어수선한 세상사에는 크게 관심이 없다. 돈과 여자와 출세가 우선이다.

그가 할 수 있는 일은 법전을 파기 보다는 한 몫 단단히 챙기고 자신이 출세하기 까지 후견인 노릇을 해 줄 여자를 잡는 일이다.

그러기까지의 길고 긴 여정이 <인간희극>의 시작을 알리면서 파노라마처럼 펼쳐진다. 따라서 가난한 집안의 형편은 아랑곳 않고 자신의 입신을 위해 가족의 희생은 물론 주변을 이용하고 있는 외젠의 모습은 본받을 만한 시대의 위인은 아니다.

그렇다고 출세욕에 들뜬 외젠에게 세상사를 전파하면서 허튼 수작을 부렸던 보트랭 역시 다른 사람이 보고 배울 만한 어떤 행동을 보여주지 못한다.

하숙인들의 배신으로 경찰에 잡혀가는 신세로 전락하는 실제 이름이 자크 콜랭인 보트렝은 역설적으로 이것이 정의다 라는 것을 보여준다.

다만 외젠은 보트렝이 제안한 하숙집 처녀와 결혼해 그 집의 막대한 유산을 물려받는 대신 파산한 레스토 부인을 취함으로써 고리오 영감의 아들 노릇을 하게 된다.

영감이 죽고 외젠은 신파극에서처럼 이렇게 외친다. “자, 이제 파리와 나 우리 둘의 대결이다.”(열린책들, 2008, 임희근 엮음)

<고리오 영감>은 사실주의의 지평을 연 책으로 평가 받고 있다. 금전만능주의, 귀족사회의 퇴폐와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출세의 욕망이 적나라하다.

51살에 죽은 발자크는 책의 등장인물 같이 숱한 여성편력을 자랑했으며 하루에 많게는 18시간 적게는 12시간 동안 글을 썼다고 한다.

커피를 물처럼 마시면서 ‘그가 칼로 한 일을 나는 펜으로 하겠다’며 나폴레옹 동상을 앞에 두고 맹세를 할 만큼 대단한 야심가로 일생을 살았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