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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폭풍의 언덕> (18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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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폭풍의 언덕> (1847)
  • 의약뉴스 이병구 기자
  • 승인 2016.11.04 09: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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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발 달린 동물은 거둬들여도 검은 머리 짐승은 그러지 말라는 옛말이 있다.

에밀리 브론테의 <폭퐁의 언덕>의 원 제목인 <워더링 하이츠> (Wuthering Heights)의 주인 언쇼가 이 말만 새겨들었어도 대를 이은 비극은 일어나지 않았을 것이다. (워더링은 폭풍이 불 때 나는 바람 소리를 말한다.)

영국을 통틀어도 세상의 소음으로부터 완전히 동떨어져 사람을 싫어하는 자에겐 더 없는 천국인 이곳에서 언쇼가 어느 날 리버풀로 여행을 떠난다. 떠나는 것 까지는 좋았다.

그런데 그가 돌아 왔을 때 그의 옆에는 누더기를 걸친 새까만 머리의 더러운 아이가 있었다. 언쇼는 놀라는 가족에게 집도 없고 먹을 것도 없고 게다가 말도 제대로 하지 못하는 아이를 발견한 이상 데려오지 않을 수 없었다고 이해를 구한다.

그가 이 책의 주인공인 히스클리프가 되겠다. 히스클리프는 언쇼의 아들 힌들리와 딸 캐서린 등과 함께 자란다. 주워온 자식을 대하는 태도는 우리나 영국이나 다를 바 뭐 있겠나.

 

서러움과 구박은 항상 그를 따라다니고 힌들리에게 수시로 괴롭힘을 당한다. 그러면 언쇼는 아비 없어 불쌍한 히스클리프를 두둔한다. 그럴수록 힌들리는 히스클리프 때문에 자신이 손해를 보고 있다며 그에게 더욱 못살게 군다.

어떤 때는 뺨을 후려갈기고 떠돌이 집시 놈이라고 심한 욕설을 퍼붓기도 한다. 하지만 히스클리프는 그 정도는 아무것도 아니라는 듯이 좀처럼 불평을 하지 않아 외관상으로는 그가 복수심을 품고 있다는 사실을 식구들은 알 수 없다.

이런 아들과는 달리 걷잡을 수 없는 말괄량이 이지만 그 근방에서는 눈이 가장 예쁜 캐서린은 벌써 그와 친해진다. 그 무렵 언쇼 어른은 나이든 사람에게 언제나 찾아오는 죽음을 맞이했다. 대학을 다니기 위해 떠났던 힌들리는 3년 만에 아버지 장례식에 참석하기 위해 워더링 하이츠에 도착했다.

그 옆에는 어떤 사람인지 어디 태생인지 알지 못하는 여자가 있었는데 부인이라고 했다. 부인은 검은 상복을 입은 사람을 보면 죽는 것이 무섭다면서 몸을 부르르 떠는 등 좀 모자란 사람이었다.

어쨌든 힌들리는 집에 왔고 눌러 앉았다. 주인이 된 힌들리는 히스클리프에게 더욱 모질게 대하고 매질을 하고 여동생 캐서린에게도 밥을 굶기는가 하면 하인들에게도 함부로 했다.

목사 흉내를 내는 늙은 하인 조셉이나 집안 살림을 하는 넬리 등 하인들도 힌들리가 변했다고 수군거렸다. 그러거나 말거나 캐서린과 히스클리프는 아침에 벌판으로 달아나서 하루 종일 돌아오지 않는 것이 세상에서 가장 즐거운 일이 되었다.

어느 날은 워더링 하이츠에서 여러 마일이나 떨어져 있는 드러시크로스 저택을 다녀오기도 했다. 그녀는 하녀 넬리에게 그곳에서 있었던 일을 조잘댔다.

그 곳의 늙은 린튼 영감은 히스클리프에게는 동인도인이거나 아메리카인이거나 스페인인이 버리고 간 거지아이라고 경멸했으나 캐서린에게는 그래도 친절하게 대했고 발뒤꿈치가 다쳤다는 이유로 다섯 주일 동안 기거하게 하면서 치료해 주는 친절을 베풀었다.

 

치료가 돼서 조랑말을 타고 돌아온 캐서린은 예전의 모습에서 벗어나 좀 점잖아 졌고 숙녀 티가 났으나 히스클리프는 여전히 새까맣고 더러운 옷을 걸쳐 비교가 됐다.

힌드리는 하인과 같이 히스클리프를 취급하고 모욕하고 수치심과 자존심을 깔아뭉개고 심지어 가두면서 학대를 일삼았다.

하지만 그의 마음은 캐서린을 사랑하는 열정으로 불타오르고 그녀의 애정을 얻기 위해 점잖아 지고 예의 바른 청년이 되고 싶어 했다. 그러나 타고난 신분의 차이는 어쩔 수 없었다.

그럴 때면 캐서린은 마음씨가 착하면 얼굴도 선해지고 마음이 나쁘면 아무리 아름다워도 보기 싫은 얼굴이 된다고 위로했다. 네 아버지는 중국의 황제이고 너의 어머니는 인도의 여왕인데 고약한 뱃사람들에게 납치돼 영국으로 오게 된 비운의 왕자라고 다독였다. 이런 여자, 히스클리프 아니라도 세상의 어떤 남자가 싫어할까.

찌푸린 얼굴이 펴지고 썩 유쾌한 기분이 되는 것은 순식간이겠다. 마음속에 칼을 갈고 있으면서도 표정이 아니 밝을 수 없다. 그는 캐서린에게만은 자신의 진실을 가감 없이 말하는 것으로 친절에 화답했다. 힌들리에게 반드시 복수 하겠다고. 그리고 자기보다 먼저 죽지 말라고 악담을 퍼붓는다.

벌은 하느님이 내리고 용서는 우리가 하는 것이라는 캐서린의 말은 그에게 들리지 않는다. 화창한 어느 6월 언쇼 가문의 마지막 아이 헤밀턴이 태어난다. 아이를 낳은 힌들리 부인은 사망한다.

아이는 음흉하고 영악하고 타락해 갔는데 힌들리는 그런 아들을 내버려 두는 것뿐만 아니라 오히려 부추기는 행동을 한다. 부인을 잃은 슬픔을 이겨내는 한 방법이었다. 울고불고 하는 대신 기도하지 않고 저주하고 반항하고 하느님이고 인간이고 다 미워하고 멋대로 방탕하게 지내면서 말이다.

캐서린은 그 지역에서는 대적할 만한 인물이 없을 정도로 독보적인 여왕 같은 자태를 지닌 숙녀로 자랐다.

누구나 부러워하는 그녀지만 그녀가 무시해도 될 것 같은 히스클리프에게 만은 언제나 친구로 다정하게 대한다. 그녀에게도 그 못지않은 남녀 간의 깊은 정이 자리 잡고 있었던 것이다.

이런 둘의 관계를 힌들리가 용납할 리가 없다. 캐서린은 사랑하지만 신분이 천한 히스클리프 대신 집안이 좋은 드러시크로스 집안의 에드거와 결혼한다. 사랑해서가 아니라 집안의 명예를 위해서 어쩔 수 없이 선택한 것이다.

캐서린은 히스클리프가 옆에 있다는 것도 모르고 히스클리프의 영혼과 내 영혼은 같은 거고 에드거의 영혼은 달빛과 번개, 서리와 불같이 전혀 다르다는 사실을 고백한다.

이 말을 들은 히스클리프는 폭풍이 불고 천둥이 치던 날 워더링 하이츠를 떠나 삼년 동안 소식이 없다가 야만인의 모습을 벗고 교양을 쌓고 다시 모습을 드러낸다.

히스클리프는 캐서린을 만난다. 캐서린은 그에게 가까이 간다. 둘의 관계가 좁혀지자 에드거는 괴롭다. 그는 워더링 하이츠에 왜 왔을까. 이미 결혼한 캐서린은 왜 만나고 힌들리의 초대에 왜 흔쾌히 응했을까.

이후 히스클리프는 어떤 행동을 하고 언쇼와 언쇼의 아들 헤밀턴은 어떤 운명을 선택할까. 그리고 에드거의 여동생 이사벨라는 누구와 결혼했을까.

여기까지 읽은 독자들은 이런 질문이 오면 어느 정도는 예상할 수 있는 대답을 내놓을 수 있을 것이다.

캐서린의 결혼으로 떠난 히스클리프가 야만인에서 교양인으로 거기다 돈을 좀 가지고 돌아왔을 때 그가 당했던 복수를 어떤 식으로 갚을 지 대충은 짐작하기 때문이다.

다 알다시피 그의 복수와 사랑은 지칠 줄 모르고 처절했다. 인간의 복수가 아닌 신의 복수처럼 질기고 초자연적이며 끔찍했다.

: <폭풍의 언덕>은 총 34장으로 이루어진 장편 소설이다. 책의 처음은 이미 워더링 하이츠의 주인이 된 히스클리프를 찾아가는 세입자 록우드의 등장으로 시작한다.

처음만 읽으면 록우드가 주인공이거나 아니면 핵심인물일 거로 생각하기 쉽지만 그는 이 책의 내용과는 무관한 사람이다.

다만 하녀 넬리의 입을 통해 워더링 하이츠와 드러시크로스 가문의 얽히고설킨 애정과 복수의 관계를 독자들에게 들려주는 역할을 한다.

제목이 암시하는 것처럼 워더링 하이츠는 황량한 언덕의 바람 부는 곳에 위치해 있다.

에밀리 브론테는 “집 옆으로 제대로 자라지 못한 전나무 몇 그루가 지나치게 옆으로 기울어진 것이나, 태양으로부터 자비를 갈망하듯이 모두 한 쪽으로 가지를 뻣고 늘어선 앙상한 가시나무를 보아도 등성이를 넘어 불어오는 북풍이 얼마나 거센지 짐작할 수 있다”( 민음사, 2005, 김종길 엮음) 고 워더링 하이츠를 표현했다.

등장인물 가운데 이야기를 전하는 하녀와 듣는 록우드를 제외하고는 모두 온정한 정신의 소유자는 아닌 것처럼 보인다.

다들 요크셔의 황량한 자연에 정신 이상이 왔는지 정상적인 생활을 해내지 못한다. 평자들은 이 작품이 사실주의와 낭만주의의 융합을 이뤄냈으며 선악이 공존하는 새로운 인물을 창조하는데 성공했다고 평가하고 있다.

1847년 만 30살의 나이로 요절한 에밀리 브론테가 죽은 뒤 1년 후에 나온 이 책은 처음에는 인정을 받지 못했으나 이후 걸작으로 자리 잡았다. 서머싯 몸은 <폭풍의 언덕>을 그 어느 소설과도 비교가 불가능하다며 세계 10대 소설로 칭할 만큼 격찬했다.

자유로운 영혼의 소유자로 어떤 속박도 싫어했던 에밀리 브론테는 시에도 재능을 보여 수많은 시를 남기기도 했다. <제인 에어>를 쓴 샬롯 브론테가 언니이며 <아그네스 그레이>를 쓴 앤 브론테가 동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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