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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파우스트> (1770~18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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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파우스트> (1770~1832)
  • 의약뉴스 이병구 기자
  • 승인 2016.10.17 10: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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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하면 맥주가 떠오르는 사람이 있고 통일이나 축구를 생각하기도 한다. 괴테를 손꼽는 사람은 <파우스트>를 먼저 기억한다.

맥주만큼이나 쉬운 이름이 괴테이고 <파우스트>다. 워낙 유명하니 그 이름 한 번쯤 안 들어 본 사람이 없을 것이고 유령이니 악마니 사탄이니 계약이니 영혼이니 하는 따위의 단어들을 연상할 것이다.

괴테가 <파우스트>를 처음 쓴 것은 1770 년경으로 알려졌으며 1832년 죽기 직전까지 원고를 고친 것으로 기록된다. 무려 60여년의 세월이다.

1749년에 태어났으니 처음 쓴 해는 21살이 되겠고 대학에서 법학공부를 할 때다. 우리에게 익히 알려진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이라는 소설은 25살 때 썼다.

그러니 괴테와 <파우스트>는 한 몸이라고 해야겠다. 그의 사상과 철학과 가치관과 세계관이 오롯이 담겨 있지 않다면 이상한 일이다. 독일 문학의 정수를 넘어 세계 문학의 줄기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겠다. 하지만 읽는 데는 끈기와 인내가 필요하다. 쉽지 않은 책이라는 말이다.

누구나 읽어야겠다고 한 번쯤 들었다가 몇 장 읽다가 다시 내려놓기를 반복할 수밖에 없다. 작정하고 책상에 앉아도 곧 심드렁해지는 것은 소설 체라기보다는 희곡 형식을 취하는 태도도 있지만 내용 자체가 생각을 해야 이해할 수 있기 때문이다.

책을 펴면 헌사라는 부분이 나오는데 첫 문장 부터가 숨통을 턱하고 막아 버린다. “다시 가까이 다가오는 구나, 일찍이 내 흐릿한 눈에 나타났었던 흐릿한 영상들아.”(열린책들, 2009, 김인순 옮김) 이 한 문장만을 놓고도 심호흡을 하지 않을 수 없다.

그런데 이런 문장들이 ‘무대에서의 서막’을 거쳐 메피스토펠레스가 본격적으로 등장하는 ‘천상의 서곡’ 그리고 ‘비극 1부’와 ‘비극 2부’의 대단원이 막을 내릴 때 까지 빈틈없이 이어진다. 몇 구절 되지 않는 헌사와 무대에서의 서막이지만 사탄이나 하느님 등 일부 주인공들은 이미 등장하고 있다.

파우스트는 비극 1부 첫 문장에서 비로소 등장한다. 천장이 높고 둥근 비좁은 고딕식 방의 책상 앞 의자에 불안한 모습으로 나타난 파우스트. 그도 헌사의 첫 장면처럼 엄청난 말을 내뱉는다.

 

“아아! 철학, 법학과 의학 게다가 유감스럽게 신학까지도 온갖 노력을 기울여 깊이 파고들었거늘 이 가련한 바보가 조금도 지혜로워지지 않았다니! 석사라 불리고 박사라 불리며, 벌써 10년 동안이나 위로, 아래로 사방 천지로 학생들의 코를 꿰어 끌고 다녔지만 결국 우리가 아무것도 알 수 없다는 사실을 깨닫다니!”

파우스트는 이처럼 등장하자마자 고뇌에 휩싸인다. 노력해도 깨달을 수 없는 것, 그러니 그의 번민은 하늘을 찌른다. 그렇다고 돈이나 재산을 움켜쥔 것도 아니고 세상의 부귀영화를 누리는 것도 아니다. 세상에서 도망치고 싶다. 개라도 이런 세상에서는 살고 싶지 않을 것이다.

감옥에 비유될 만한 숨 막히는 골방에서 불안, 고통을 떠나 드넓은 바깥 세계로 탈출하고 싶다. 온갖 학문의 자욱한 연기에서 과감하게 벗어나야 한다. 그래서 인간의 마음과 정신을 지배하는 인식에 도달해야 한다.

예술은 길고 인생은 짧지 않은가. 작가의 정신인 시대를 넣어 이미 많이 알고 있지만 모든 것을 알고 싶다. 영원한 진실의 거울 가까이에 다가갔다고 생각했으나 수심은 끊임없이 새로운 가면을 쓰고 나타난다. 말하자면 파우스트의 가슴에는 두 개의 영혼이 살고 있는 셈이다.

하나는 현세에 매달려 방탕으로 사랑과 환락에 취하려 하고 다른 하나는 티끌 같은 세상에서 벗어나 숭고한 선인들의 세계로 나아가려는 마음이다. 이런 상황이니 아무리 애를 써도 가슴에서 만족감이 우러나올 수 없다.

악이라 불리는 모든 영역에서 활동하는 메피스토펠레스가 파우스트의 영혼에 파고들 수밖에 없다. 그는 떠돌이 대학생 차림으로 파우스트 앞에 나타나 항상 악을 원하면서도 항상 선을 만들어 내는 힘의 일부, 항상 부정하는 영이라고 자신을 소개한다.

다시 말해 악마라 불러도 좋고 사탄이라고 칭해도 옳다. 그런데 이런 유령들에게도 계율이 있다. 그러니 파우스트는 계약을 맺어도 좋겠다고 생각한다.

그저 놀고먹기에는 너무 늙었고 희망 없이 살기에는 너무 젊은 파우스트. 사탄은 그에게 삶을 두루 섭렵하자고 제의한다. 심지어 하인이 돼서 섬기기까지 하겠다고 다짐한다. 이 세상에서 섬기지만 저 세상에서는 파우스트가 메피스토를 섬겨야 한다. 피한방울로 서명하면서 계약은 성립된다.

사탄의 재주를 통해 파우스트는 누구도 아직껏 눈으로 보지 못한 것을 누리게 된다. 관능과 쾌락 그리고 마음만 들면 뭐든 덥석 움켜쥘 수 있다. 파우스트는 메피스토펠레스와 함께 인생의 즐거움이 사라지기 전에 더 넓은 세계로 나가자는 유혹에 빨려든다. 여기까지가 책의 서두 부분이라 하겠다.

말하자면 1/10 쯤 온 것이다. 그러나 어느 정도 윤곽은 나왔다. 이 후 파우스트와 메피스토펠레스의 상상을 초월하는 활략상이 시어 가득한 언어로 환상 가득 펼쳐진다.

: 둘은 파우스트가 원하는 곳으로, 먼저 작은 세상을 보고 나중에 더 큰 세상을 보자고 의기투합한다. 마치 해리포터처럼 둘은 외투를 걸치고 공중으로 떠오른다. 새로운 인생항로가 시작된 것이다.

떠들썩한 패거리들을 만나고 마녀와 부딪치고 기독교를 비꼬고 성직자를 조롱하기도 한다. 어느 날 파우스트는 신부에게 막 고해성사를 마치고 나온 14살 된 그레트헨을 보고 단박에 사랑에 빠지기도 한다. 달려가 집까지 에스코를 원하지만 거절당하자 파우스트는 깊은 한 숨을 쉰다.

붉은 입술, 반짝이는 볼 거기다 퉁길 줄도 아는 그레트헨을 오늘 밤 안으로 품지 못하면 자정을 기해 각자 제 갈 길로 가자. 그는 메피스토펠레스를 위협한다. 보물로 유혹하자고 사탄이 화답한다. 파우스트는 생각한다. 피할 수 없는 운명이라면 차라리 빨리 일어나는 것이 낫다고.

바위투성이의 산중을 헤매고 허허벌판과 경관이 수려한 곳이나 황야는 물론 왕궁까지 둘의 발길은 닿지 않는 곳이 없다. 숱한 여행과 방황과 기행 끝에 마침내 파우스트는 죽는다. 지상에서 보낸 삶의 아름다운 흔적을 회상하면서.

파우스트가 죽자 메피스토펠레스는 기분이 영 아니다. 다름 아닌 피로 쓴 증서가 있는데 불멸의 영혼은 자신의 것이 되기도 전에 천사들의 합창에 맞춰 하늘로 날아갔기 때문이다.

어떤 쾌감에도 만족하지 못하고 어떤 행복도 흡족하지 못하고 나한테 완강하게 반항하더니 시간 앞에 무릎을 꿇었다. 백발의 몸뚱이는 모래사장에 나자빠져 있는데 정신이 도망치려 한다.

메피스토펠레스는 화를 낸다. 내 유일한 커다란 보물을 가로채가고 담보로 잡아 두었던 고매한 영혼을 교활하게 빼돌렸기 때문이다.

파우스트가 죽자 한 때 그가 사랑했던 그레트헨은 파우스트에게 자비를 베풀어 달라고 갈구한다.

비극 <파우스트>는 한 편의 거대한 시집이다. 세상에 이처럼 두껍고 긴 시도 없을 것이다. 어떤 부분을 펼쳐 읽어도 완벽한 시로 가득 차 있다.

숱한 명문장들은 오늘날도 여전히 사람들의 입에 오르내린다. 정말로 인생은 짧고 예술은 길다. 이 말도 이 책안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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