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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 <호밀밭의 파수꾼> (19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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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 <호밀밭의 파수꾼> (1951)
  • 의약뉴스 이병구 기자
  • 승인 2016.08.31 09: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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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제아는 어디나 있기 마련이다. 미국의 펜실베이니아라고 해도 별수 없다. 제롬 데이비드 샐린저의 < 호밀밭의 파수꾼> 에 나오는 홀든 콜필드가 바로 그 문제아다.

그 지역에서 유명한 사립고교인 펜시에서 퇴학을 당했다. 이번 퇴학까지 합하면 무려 네 번째다. 그는 크리스마스를 앞둔 겨울, 학교에서 쫓겨난 것이다.

전혀 공부에 의욕을 보이지 않는 것에 대해 빈번한 학교 측의 경고를 무시했을 뿐만 아니라 영어문장 수업만 빼고는 모두 낙제를 받았기 때문이다.

벼룩도 낯짝이 있다면 쉽게 이 사실을 집에 이야기 하기는 어렵다. 기숙사에 남아 있을 수 있는 시간은 3일이다. 방을 비워줘야 한다. 하지만 콜필드는 그보다 앞서 기숙사를 떠난다. 하루 이틀 기숙사에서 더 생활 한들 무엇이 바뀌겠는가.

바로 이 시간 동안의 이야기가 바로 이 책의 내용이다. 말하자면 16살 소년의 성장소설쯤 되겠다. 하지만 샐린저가 스스로 밝힌 대로 따분하기 그지없는 자서전과는 거리가 멀다.

 

콜필드가 머리가 나빠서 낙제한 것은 아니다. 책의 전체를 통해 관통하는 것은 그와 그의 집안이 그가 사는 뉴욕에서도 우수한 두뇌의 집단이라는 사실이 자주 드러나기 때문이다.

아버지는 잘 나가는 변호사이고 형은 굉장한 단편집을 쓴 소설가인데 지금은 허리우드에 진출해 있다. 죽은 동생은 천재에 가까우며 여동생 피비는 어른 뺨치고 남을 똑똑한 아니다. 나 역시도 주변 사람들이 모두 하찮은 존재로 보일 만큼 대단하다고 스스로 느끼는 존재다.

호텔을 전전하며 술을 먹을 만큼 주머니에 돈도 많다. 생각은 급진적이고 행동은 과격하다. 우리로 치면 어린 강남 좌파라고나 할까.

어린 것이 아주 치기가 차고 넘친다. 콜필드가 만만하게 보이는 학부모를 무시하는 교장이나 이빨 닦는 것을 본 적이 없는 룸메이트나 언제나 훈계나 늘어놓는 학교 선생을 우습게보거나 엉터리라고 여기는 것은 이런 이유 때문이다.

그는 사기꾼이거나 나쁜 놈 혹은 젠장 같은 말을 입에 달고 산다. 그러니 어린 녀석의 영혼이 얼마나 힘들고 외롭겠는가. 비록 역사과목에서 자신에게 낙제점을 줬지만 통하는 것이 조금은 있는 스펜서 선생에게 작별인사를 가는 것은 주인공의 불안한 상태를 단적으로 말해준다.

키가 185센티미터나 되고 머리에 새치가 가득해도 애는 애다. 콜필드는 방안에 들어선 순간 선생 댁을 방문한 것을 후회한다. 일흔이 넘은 선생의 방에는 약병이 여기저기 흩어져 있고 고약한 냄새가 났으며 초라한 목욕 가운 사이로 앙상하게 드러난 가슴과 뼈만 남은 다리가 보였으니 말이다.

체육관에 내 운동 기구 같은 것은 없지만 태연하게 내 운동기구를 가지러 체육관에 가야 한다고 선생과 작별인사를 한다. 그에게 거짓말은 룸메이트의 얼굴에 덕지덕지 붙은 여드름을 짜는 것보다 쉽다.

누군가가 잡지 같은 것을 사러 가는데 어디 가느냐고 물으면 눈 하나 깜짝 안하고 오페라 보러 간다고 거짓말을 한다.

콜필드는 그런 아이다. 말장난도 수시로 한다. 좋아는 하지만 전화 거는 것을 망설이게 만드는 제인과 테크닉이 좋은 기숙사 동료가 섹스라도 한 것 같은 기분이 들 때면 상대를 아주 분노하게 만드는 말재주를 떠벌인다.

말하자면, 네 놈은 지성적인 토론 같은 것은 할 줄 모르는 어리석은 바보 자식 같다고 화를 복 돋는 식이다. 상대편의 주먹이 콜필드의 두개골을 향해 날아온다고 해도 변명의 여지가 없다.

코피까지 나는 마당에 더 이상 기숙사에서 어슬렁거리는 것은 그의 자존심이 상처를 입는 것이다. 너무 슬프고 외로워 당장 엄마가 사준 스케이틀 가방에 집어넣고 짐을 꾸려 펜시를 떠난다.

윗입술 안쪽은 얻어 터져 아프고 밖은 엄청나게 춥고 눈 때문에 걷기가 힘들어도 걸어서 기차역까지 간다.
기차에서 우연히 만난 마흔 다섯 살 정도 먹은 친구 엄마에게 흑심을 품고 담배를 권하고 식당 칸에 가서 술 한잔 하자고 꼬드긴다.

콜필드가 아닌 기숙사 수위 이름인 루돌프라고 이름을 거짓말로 하고 머리에 뇌종양이 생겨 수술을 해야 한다고 하고 그녀의 멍청한 아들이 만장일치로 반장을 하기로 했다는 등의 거짓말을 해댄다.

콜필드가 이렇게 주절대는 것은 그녀와 즐기고 싶어 하기 때문이고 마침내 그녀가 자신의 집으로 초대를 하자 집밖으로는 거의 나가지 않는 할머니와 남미에 가야 한다고 둘러댄다. 그리고 속으로 세상의 모든 돈을 다 준다고 해도 그 녀석이 있는 집에는 절대 가지 않겠다고 다짐하는 이중성을 보인다.

집근처의 역에 내려서는 집에 가지 않고 서성인다. 택시를 타고 운전수에게 실없는 농담을 던지기도 한다. 센트럴 파크의 연못에 얼음이 얼면 그 곳에 사는 오리들은 어디로 가느냐고, 알면 알려 달라고 지껄인다.

집에 가는 대신 호텔에 투숙해서는 줄 담배를 피고 토할 때까지 술을 먹고 호텔 나이트클럽에 가고 13살인 여동생 피비에게 전화를 걸고 웨이터의 소개를 받아 창녀를 불러들이고 나이를 의심하는 여자에게 22살이라고 태연하게 속인다.

옆 테이블의 여자들을 꼬셔 춤을 추고 그가 보기에 온통 얼간이 들 뿐인 다른 호텔에 들러 또다시 줄담배를 피고 술을 먹고 형의 애인을 만나 잡담을 나눈다.

좋아하지 않는 여자를 만나 연극을 보지만 주변은 다 싫은 인간들뿐이고 하는 일은 짜증만 나고 컬럼비아 대학에 다니는 친구 녀석을 만나 되지 않는 말을 쏘아붙여도 기분이 영 아니다.

여자 가수의 노래 실력은 다른 사람이 환호를 질러도 내 귀에는 형편없고 곤드레만드레 취한 다음에는 엄마뻘 되는 여자에게 데이트 신청을 하고 거절하자 새치를 보이면서 42살이라고 화를 버럭 낸다.

돈도 다 떨어지고 어디로 갈지 정하지도 못하는데 수녀를 만나서는 남은 돈을 헌금하고 정처 없이 헤매다 메드슨가의 공원에서 피비에게 줄 레코드판을 떨어 뜨려 박살을 낸다.

: 콜필드는 어린 동생 피비에게 다른 사람에게는 하지 못했던 자신의 진심을 말한다. 내가 선택이라는 것을 할 수 있다면 뭐가 되고 싶은지 허심탄회하게 속마음을 드러낸다.

“나는 늘 넓은 호밀밭에서 꼬마들이 재미있게 놀고 있는 모습을 상상하곤 했어. 어린 애들만 수천 명이 있을 뿐 주위에 어른이라고는 나 밖에 없는 거야. 그리고 난 아득한 절벽 옆에 서 있어. 내가 할 일은 아이들이 절벽으로 떨어질 것 같으면 ,재빨리 붙잡아 주는 거야. 애들이란 앞 뒤 생각 없이 마구 달리는 법이니까 말이야. 그럴 때 어딘 가에서 내가 나타나서는 꼬마가 떨어지지 않도록 붙잡아 주는 거지. 온 종일 그 일만 하는 거야. 말하자면 호밀밭의 파수꾼이 되고 싶다고나 할까.”

그런 후 그는 다시 영어를 가르쳐 주던 또다른 선생을 찾아 간다. 선생은 말한다. 담배를 피우고 술을 먹으며 콜필드는 경청한다.

“세상을 살아가다 보면, 인생의 어느 순간에 자신이 가지고 있는 환경이 줄 수 없는 어떤 것을 찾는 사람들이 있기 마련이다.”, “...좌절한 인간이 네가 첫 번째는 아니라는 사실을 알게 될 거야. 그런 점에서 보면 넌 혼자가 아닌 거지.”( 민음사, 2001, 공경희 옮김)

그런데 이런 훌륭한 말을 해주는 선생이 콜필드가 자는 사이 바닥에 앉아 머리를 만지며 변태 짓을 한다. 공포 그 자체다.

물론 사랑스러워 그랬을 수도 있지만. 막 새벽이 밝아올 때 미친 듯이 선생 집을 뛰쳐나온 콜필드.

그가 큰 맘 먹고 착실한 사람이 되겠다고 다짐하면서 집으로 돌아갔는지 아니면 햇볕이 따사로운 서부의 어느 곳에 오두막집을 짓고 사람들을 만나지 않고 곰을 만나면서 숲속에서 은둔의 삶 을 선택했는지는 독자 여러분의 상상에 맡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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